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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Nov 25. 2024

피어나고 질 때 세상의 총량은.

윤하 <포인트 니모> 감상문.

https://www.youtube.com/watch?v=GCKSrC6XVOk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GCKSrC6XVOk


윤하는 나와 같은 대학 출신이라고 근거 없는 소속감 같은 걸 느끼고 있는 가수였다. 들어본 곡은 손에 꼽는다. <비밀번호 486>, <혜성>, <My song and...> 정도. 그러다 작년 역주행한 <사건의 지평선>을 감명 깊게 듣게 되었다. 애초에 수박 겉핥기식이었지만 천문학과 물리학 교양서를 읽으며 관심을 가졌었는데. 빛까지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어딘가 존재하는 사건의 지평선을 되돌릴 수 없는 이별을 맞이한 연인의 이야기로 이입한 곡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듣게 된 <포인트 니모>는 기어이 '글쓰기' 탭을 누르게 만들었다. 너무나도 멋진 소리와 그에 걸맞은 가사와 위로가 내 마음에 와닿았다. 그래서 어쭙잖지만 정성을 담은 곡 해석 글을 한번 써보고자 한다.


정확히 윤하가 작업한 곡과 앨범을 알지는 못하지만, 코로나 이후에 발매한 <End Theory>에 담긴 곡들은 우주에 대한 이야기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이번 <Growth Theory>에도 바다와 우주, 과학의 이야기가 뒤섞여 있는 듯했다. 90년대 우리나라 가요는 사랑 노래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직유와 은유가 있었다. <포인트 니모>에도 90년대의 향기가 은은히 묻어있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이런 문학적 기제에 대한 하나의 실험으로 이 곡은 과학과 인생이 뒤얽힌 DNA의 이중나선 같기도 하다. 혹시 다음 앨범에는 진화에 대한 곡을 쓰지는 않을까.


'포인트 니모'는 지구상 육지 중 어느 곳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바다로 국제 우주정거장이 그 포인트를 지나갈 때는 육지에 있는 누구보다도 하늘(우주)에 떠 있는 사람과 가까워진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곳으로,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이 떨어지는 무덤 같은 곳으로 유명하다. 곡은 이 포인트 니모라는 고요한 바닷속에 쓰임이 끝난 인공위성들을 만난 소녀의 이야기라 한다.


이 곡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피어나고 진다. 기타 하모닉스가 예쁘게 긁히자마자 풀밴드에다 현악까지 가세한 거대한 사운드로 채워지며 노래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 사운드는 곡의 끝까지 계속되다가 마지막에 "확신하기를"이라 읊조릴 때 함께 사그라든다. 전반적으로 느리지만 정직하고 탄탄한 8비트 리듬 안에서 청량한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기타가 배킹으로 뒤얽혀 들려온다. 그 바깥으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스트링과 기타 솔로는 깊은 바닷속의 거대한 해류를 연상케 한다.


Verse 1
마음을 좀 편히 먹어도 될걸
지금 아무도 없잖아
너의 나와 하늘과 바다 그뿐인걸
수많은 사람들 속
어쩌면 지쳐 왔던 걸지 몰라
수고했다 참

고요한 일상도
나쁘지는 않아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으니


1절에서는 화자(아마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소녀)가 포인트 니모에 떨어진 인공위성에게 하는 말로 시작한다. 우주의 고요함과 비슷한 바닷속의 적막함. 그러나 사실 이 곡은 리스너인 우리와 화자 둘 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너의 나와 하늘과 바다."


우리는 때론 혼자이길 바랄 때가 있지만, 막상 혼자가 되면 다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모순적인 존재다. 그리고 행여나 자신이 쏙 빠진 세상이 이전처럼 잘 굴러가는 모습에 나란 존재의 가치에 회의를 품기도 한다. 남자들은 입대할 때 혹시나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은퇴한 노인들도 이런 감정을 가지지 않을까. 이는 상실이다. 잃어버린 시간이 될 수도, 헤어진 누군가가 될 수도, 빼앗긴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이 상실이 크나큰 고통일 수도 있을 테지만, 소녀는 인공위성에게 "어쩌면 지쳐 왔던 걸지 몰라, 수고했다 참"이라며 가볍게 위로한다. 도리어 고요한 일상에서도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다 무던하게 긍정회로(요즘은 원영적 사고라고 한다더라)를 돌려주기까지 한다.


아. 코러스가 시작되기 전에 아련하게 쿠웅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마 인공위성이 바다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아닐까 한다.


Chorus 1
세상의 기쁨을 죄다 누린 것 같은 기분이었지
한켠에 피어나던 불안함과 싸워 이기면서도
어디까지 멀리 날아오르고 싶었던 걸까
그땐 그게 정답이었어


꿈을 좇고, 그 꿈을 이루려고 분투하던 시절, 그리고 마침내 바라던 무언가를 쟁취했을 때 샘솟는 고양감에 세상의 기쁨을 죄다 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다가도 때로는 혹시 실패하는 건 아닐까, 내가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떠오르던 젊은 날. 하루하루가 치열했으며 열정이 넘쳤고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던 철없는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이 된 윤하가 썼다기에는 다소 의아할 수도 있지만, 그가 10대 때부터 가수 활동을 한 20년 차 가수라고 본다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땐 그게 정답이었어"라는 가사로 1절은 마무리된다.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도 동시에 때로 우리는 그땐 왜 그랬을까, 그 시간은 왜 허투루 보냈을까, 그땐 왜 그걸 알지 못했을까라며 후회하기도 한다. 소녀는 그렇지 않다고 담담하게 선언해 준다.


Verse 2
무슨 말이 좋을진 모르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서로 그만한 사정이 있잖아
내 삶 1 회찬 나고
네 삶 1회 차는 너일 이유가
있을 테니까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는 AT필드라는 방어막(?) 같은 것이 존재한다. 적의 공격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이 AT필드는 사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어, 결국 인간을 함께 있지만 외로운 존재로 만드는 장치로도 작동한다. 인간은 타인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서로에게 상처 입히고, 상처 입고, 질투하고, 질투받고, 오해하고, 오해받게 된다. 그러나 화자는 서로가 그만한 사정과 이유가 있을 테니 꼭 이 모든 것을 이해하려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으려는 헛된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 위로한다.


이 부분에서 삶의 1 회차라는 표현은 요즘 웹소설 중에 회귀물 장르에서 자주 보이는 말이다. 윤하의 덕력이 드러나는 재미는 가사가 아닌가 싶다.


피어나고 질 때 세상의 총량은
어쨌거나 우릴 포함할 테니


콩알보다 작은 것에 담겨 있던 에너지는 빅뱅과 함께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원시 우주를 만들게 되었다. 열기가 식고 별이 탄생했다 부서지고, 서로를 밀고 당기며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했다. 단순한 원자들은 복잡한 물질을 이루기 시작하고, 엄청나게 거대한 우연에 우연이 겹쳐 태양계 세 번째 행성의 바닷속에서 생명이 탄생했다. 생명은 수없이 피어나고 지며 진화했으며 마침내 우리 현생인류가 나타났다. 그래서 사실 우리 하나하나는 빅뱅 이후 우주가 시작할 때 퍼져나간 태초의 에너지를 그대로 담고 있는 특별한 존재다-인간우월주의, 인간중심주의 뭐 이런 건 아니다-. 이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엔트로피는 끊임없이 커지고 있지만, 그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가 상실했다 여기는 것들은 사실 상실된 것이 아니다. 다른 모습 다른 형태로 이 우주의 어딘가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슬퍼하거나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Chorus 2
석양이 지는 하늘에 물들어
밤을 기다리는 낮
다시 태어나도 종착할 여기 포인트 니모에서
멀어져 가는 그때의 나와 그 곁에 너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


석양이 지는 밤은 아마 죽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쓰임이 끝나 포인트 니모로 온 인공위성. 하나의 회차가 끝나가는 판타지 웹소설의 주인공. 소설 <드래곤 라자>에서 약속된 휴식이 있어 인간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한 생을 태울 수 있는 불꽃이라 표현하였다. 아주 얄팍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종교는 삶의 후회나 죽음의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생겨난 게 아닐까 한다. 불교의 윤회라는 개념도 이번 생의 후회, 죽음의 공포를 너무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다음 생이 있으니, 아 물론 다음 생에도 우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래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테지만 그래도 어쨌건 이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고 위로하는 건 아닐까. 꺼져가는 생명 앞에서 화자는 사랑한다 말하고 싶다는 희망을 말해준다.


Bridge
손에 쥐고 싶은 것
이뤄내고 싶은 것
그게 전부는 아냐
잊지 말아야 할 건
소중히 여겨야 할 건
사라지는 모든 것들과 사랑


이 브리지 부분이 노래의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성취하고 싶은 것, 소유하고 싶은 것, 그런 것을 삶의 중심에 두고 앞만 보고 달리는 삶도 필요하겠지만, 그게 삶의 전부는 아니라고 화자는 강조한다. 앞서서 그땐 그게 정답이었다고, 세상의 총량은 바뀌지 않는다고 위로하고 있지만, 사실은 소중히 여겨야 할 것, 즉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젠가는 사라질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라지기 전까지 끊임없이 겪는 상실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물건을 안타깝게 잃을 수도 있고, 어떤 감정을 잃을 수도 있다. 가족과 친구와 연인을 잃을 수도 있고, 우리가 쫓던 꿈을 잃을 수도 있다. 스스로 사라지기 전에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추억하고 소중히 여기는 게 화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인 듯하다.


Chorus 3
세상의 기쁨을 이젠 모조리 다 알아봤으면 해
지나는 길목을 샅샅이 살피며 걸어갔으면 해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 어느 날엔
소중했다 여겨주기를
사랑했다 확신하기를


최근 인공지능에 대해 공부하면서 기술의 발달이 우리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다. 하필 퇴근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운전 중이어서 그런지 자동차의 발달을 생각하게 되었다. 좀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게 해 준다. 시간이나 다른 비용을 절감해 준다.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기술 발달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에 따라 우리는 본래 누리던 기쁨을 상실하게 된다. 목적지까지 빠르게 달리느라 순식간에 지나치는 풍경을 즐길 수 없다. 걷다가 잠깐 멈춰 서서 볼 수 있었던 허름한 골목의 주택 벽과 구석에 핀 들꽃을 놓친다. 브리지의 메시지와 함께 보다 편리해진 세상보다는 세상의 기쁨을 하나하나 알아보고, 지나는 길목을 샅샅이 살피며 작은 것에 기뻐하는 일이 소중하지 않을까 화자는 조심스레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렇다 단정한다. 이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말이었을 것이다. 곡에는 전체적으로 가정과 추측의 말들이 많다. "어쩌면," "~ 같은," "싶었던 걸까," "무슨 말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유가 있을 테니까," "어쨌거나." 같은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마지막 이 가사에서는 "사랑했다 확신하기를"이라며 용기를 냈다. 이 노래는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장소에 버려진 인공위성에 빗대어 자신의 꿈을 좇았던 기억을 가진 채 타인과 어울리고 싶지만 결코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우리에 대한 위로이다. 마지막까지 용기를 내어 노래를 만들고 불러준 윤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한 인터뷰에서 윤하는 곡의 가사를 쓸 때 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서 가지치기를 하며 운율에 맞는 문구들을 뽑아낸다고 하였다. 그 상실된 나머지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하면 실제 앨범 패킷에 하드커버로 된 책까지 실었을까. 어쩌면 이 곡은 그렇게 소거된 이야기 조각들에 대한 위로일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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