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서글픈 눈동자의 두 코미디 배우.
짐캐리를 처음 만났을 때는 대략 국민학교 5, 6학년 때였다. 첫째 삼촌은 당시 집 근처에서 작은 비디오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니. 확실하진 않다. 10평 정도의 영업공간과 안쪽으로 작은 골방이 있었지만, 정확히 삼촌이 그곳을 운영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간혹 나와 동생, 혹은 기억나지 않는 동네 친구들은 삼촌의 그 골방에서 비디오를 보았다. 그때 연초록의 질감 나쁜 마스크를 쓴 짐캐리를 처음 만났다.
당시 찰흙 같은 느낌의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한 영화 <마스크>의 여러 기괴한 연출은 아직 어린 나를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수십 개의 총구가 달린 총을 양손에 꺼내고 방아쇠를 당기자 깃발이 동시에 튀어나온다거나. 무대 위 아름다운 여가수를 보며 눈이 튀어나고 혓바닥이 길게 나와 테이블까지 덮고 늑대의 얼굴로 휘파람을 부는 장면 등이 웃겼다. 그래도 단연 최고는 하늘 높이 치솟는 광대와 조커 같은 웃음의 짐캐리 본인의 얼굴이었다.
보통 사람의 얼굴과 다른 성분으로 되어 있는 건지 그의 안면근육은 남들보다 훨씬 자유롭게 사방팔방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어떤 표정을 지어도 그 감정이 두드러져 위화감이 들기도 했고 흥미롭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릴 때부터 개그맨이 되고 싶었던 그는 거울 앞에서 수많은 표정을 연습하곤 했단다. 여하튼 그 후 보게 된 <에이스벤츄라>와 <베트맨 3-포에버>에서도 그의 두드러진 표정과 행동은 내게 큰 재미를 주었다.
주성치를 처음 보게 된 건 그보다 훨씬 이후인 2000년대 초반 <소림축구>에서였다. 당시 모두에게 신선했던 인터넷은 엄청난 표현의 자유를 부여했고, 수많은 이들이 병맛 코드를 즐겼다. 그런 B급 병맛코드와 비슷한 결을 가진 영화는 쿵후가 외면받는 세상에서 지질하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그렸다. 술집에서 무대 오디션으로 차력을 하다 쫓겨나고, 회사원으로 살다 큰 실수를 하여 해고당하고, 음식점에서 설거지를 하다 굴욕을 당하고, 백수로 낡고 구멍 난 신발을 신는 등 쿵후인들의 애환을 코믹하고, 그래서 더 슬프게 보여주었다.
특히, 꽤나 미인 배우인 조미를 완전히 망가뜨리는데, 처음 그녀는 흉측한 얼굴로 분장을 하고 머리는 헝클어진 채 태극권으로 밀가루반죽을 빚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머리로 나타난 조미는 최종 경기의 골키퍼, 조커 역할을 하며 소림축구팀을 승리로 이끌며 큰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 외에도 막문위와 장백지에게 코털을 붙이거나 초반 연습경기를 하는 팀의 품속에서 몽키스페너 같은 무기를 떨어뜨리는 등 이해하기 힘들지만 재미있는 장난 같은 연출은 사람을 맥없이 피식 웃게 만들었다.
그 후, 주성치는 <쿵푸허슬>이란 또 다른 전설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무협지에 최강의 꽃미남, 꽃미녀 커플인 양과와 소용녀의 중년 모습을 충격적인 비주얼로 그렸다. 동시에 그보다 더 충격적인 화려한 무술 연출은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특히나 악한 양아치 주인공이 고치를 깨고 숨겨진 선한 본성과 절대 무공으로 진정한 악을 쳐부수는 권선징악의 통쾌하고 단순한 플롯은 나같이 얕은 사람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짐캐리가 주연한 영화 중에 가장 흥미롭고 놀라웠던 작품은 단연 <트루먼쇼>였다. 트루먼 버뱅크(짐캐리)는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스튜디오에서 태어났으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카메라에 담겨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리얼버라이어티의 주인공이다. 중요한 점은 자신이 꾸며진 쇼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10,000일을 살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를 제외한 모든 이가 배우이며, 수천 대의 숨겨진 카메라가 그의 24시간을 촬영한다.
그 모둠 것이 가짜인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진짜인 트루먼은 어린 시절부터 밖으로 나가 세상을 보기를 꿈꾼다. 그러나 방송의 제작자와 스태프들, 배우들 모두는 그를 시헤이븐(주인공이 사는 도시)에 가두기 위해 물리적 제제부터 무의식을 건드려 PTSD를 심는 방식까지 모든 수단을 이용한다. 영화의 첫 시작은 말 그대로 트루먼쇼 방송의 오프닝 화면이다. 영화는 시헤이븐에서 트루먼이 생활하는 모습과 그 밖에서 그 쇼를 보는 일반인(실제로는 이들도 배우이지만)의 모습, 트루먼 쇼를 통해 하는 PPL 광고 장면 등을 계속해서 교차하여 보여주는 이상한 방식의 액자 속 액자 속 액자의 구조를 띤다. 때로는 숨겨진 카메라의 장면임을 보여주기 위해 화면 주위로 둥글게 검은 음영이 테두리를 친 경우도 있었다. 트루먼의 생활공간 곳곳에 카메라가 어떻게 숨겨져 있는지 찾는 것도 영화를 보는 깨알 재미였다.
자신의 생각이 남들에게 들리는 이가 주인공인 만화 <사토라레>*와 미묘하게 비슷한 면이 있었다. 세상 모두가 알지만 정직 본인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모든 것이 노출된 유명한 배우(?). 그리고 그러한 현실에 조금씩 위화감을 느끼며 어느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이 가짜였음을 깨닫는 주인공을 짐캐리는 깊고 서글픈 눈동자와 씁쓸한 웃음으로 연기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자신을 옥죄는 배우로서의 삶을 벗어나고 진짜 세상에 던져지기 위해 하늘의 계단을 천천히, 그러나 신중히 오른다.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면서 동시에 거부하는 이중성에 고통받는 나 같은 사람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얼마나 무서울지. 얼마나 억울할지. 그러나 그는 담담히 웃으며 특유의 인사말을 건넨다.
In case I don’t see ye.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위 OST의 제목은 <It’s a life>이다. 영화이자 그 영화 속 방송인 <트루먼 쇼>의 오프닝이며, 그래서 첫 부분 크레디트의 주인공 이름은 starring: Truman Burbank “as himself”로 나온다. 그러나 영화에서 짐캐리의 첫 대사는 “난 해내지 못할 거야. 넌 나 없이 계속 나아가야 해.(I’m not gonna make it. You’re gonna have to go on without me)”라고 말한다. 정말 그의 삶이 삶이라고(It’s a life) 말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주성치가 만든 영화 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희극지왕>이다. 이 영화는 무명의 코미디언인 사우(주성치)가 집도 없이 서럽게 단역을 전전하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어떤 범죄자를 소탕(?)하는 이야기이다. 주성치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 있는 듯했다. 특히 초반부에 그는 단역에서 잘리고 도시락도 받지 못한 채 본인이 살고 있는 마을회관(?)에 돌아온다. 좁은 방에서 혼자 밥을 먹고, 단역 캐스팅 스탭에게 전화하고, 거울을 보고 유명 배우의 포즈와 표정을 연습하는 장면은 서글픈 음악과 당시 특유의 흐릿한 필름 분위기와 겹쳐 깊은 여운을 남긴다.
또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피우피우(장백지)와의 서글픈, 그러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로맨스 역시 소박하고 가난하지만 따뜻함을 지녔다. 특히, 두 사람이 함께 밤을 보내고 피우피우를 책임져야 하는 가난한 사우가 바닥까지 긁은 용기로 내뱉는 고백 장면은 나에게 있어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다. 그 장면에서 깔리는 OST는 사우의 끌어모은 용기와 피우피우의 거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러면서도 그 고백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같은 절실하고 촉촉한 감정을 잘 드러내준다-Cagnet이라는 뮤지션의 Silent Open이란 제목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반전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이야기의 선회라고도 볼 수 있는데, 마지막 즈음에 영화는 갑자기 홍콩 누아르로 바뀐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깎아낸다고 볼 수도 있다 생각하는 반전이긴 하지만, 괜찮았다. 사우는 어떤 범죄조직을 쫓는 경찰(오맹달)에게 캐스팅되어 큰 임무를 수행하다 우연히 총격에 휘말리고 범죄자를 소탕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에게 범죄자 소탕, 혹은 연기보다 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살아서 사랑하는 피우피우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어두운 해변가에서 파도 소리 속에 그는 긴 안도와 함께 사랑한다 말하며 피우피우를 안는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무대가 되는 홍콩의 섹오비치를 가고 싶었다. 신혼여행지 후보로도 넣었으나 안타깝게도 아직 연이 닿지 않아 가보지는 못했다. 피우피우가 사우의 입술에 립글로스를 발라주는 해변이나 지역의 어설픈 조직폭력배들이 어울리는 장소, 사우가 머물던 마을회관, 사우가 피우피우에게 연기를 가르쳐주다 반하게 되는 나무 아래. 언젠간 꼭 한번 가리라.
미셸 공드리 감독의 SF 로맨스 영화-난 이렇게 정의한다-<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내게 연기자로서 짐캐리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연인인 조엘(짐캐리)과 클레멘타인(케이트윈슬릿)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다 결국 서로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치료(?)를 받게 된다. 클레멘타인이 먼저 기억 제거 시술을 받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조엘도 역시 시술을 받는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조엘의 머리에 신기한 헬멧이 씌인다. 화면은 사라지는 클레멘타인과 함께 한 조엘의 뇌 속 기억을 비춘다. 특히, 조엘의 무의식이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지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 다른 기억 속으로 자꾸 숨는 위트 있는 연출은 내 탄성을 자아냈다. 기억 삭제 작업의 마지막에 체념 한 듯한 그의 옆모습과 함께 서점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이 하나씩 지워지며 하얗게 변하는 장면은 과학적이면서도 예술적이었다.
마지막 장면은 영화를 두 번을 보고 겨우 이해했고, 그래서 더욱 슬프고 행복한 장면이었다. 결국 기억을 지운 두 사람은 서로가 없는 삶을 살지만, 어쨌든 다시 만날 운명이었을까. 그들은 알지 못하는 무의식의 명령에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기억 삭제를 하는 병원(?)에서는 다른 큰 사건으로 인해 지금까지 기억을 지운 이들의 진료기록이 각자에게 배달된다. 서로가 서로의 연인이었고 서로의 결점으로 인해 헤어지고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Okay”라 말하고 허탈한 듯 웃음을 쏟아내며, 다시 사랑하자 결정한다.
이 영화의 OST에는 소개하고 싶은 음악이 너무 많다. <Theme>이란 오프닝 곡은 흐릿한 회색과 푸른빛이 교차하는 이른 아침 현대인의 출근길과 그 무표정 속에서 꿈꾸는 탈출이 어렴풋이 스며든 곡이다. Electric Light Orchestra의 <Mr. Blue Sky>는 우리나라 광고에도 나온 유명한 곡인데, 영화 내에서는 어디서 나오는지 찾지 못했다. 흥겨운 비트와 반대되는 서글픈 가사가 일품인데, 어둠이 어깨에 내려앉는 중에도 푸른 하늘 아저씨를 기억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 영상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나오는 Beck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이다. 앙상한 드럼리듬과 그만큼 단순한 신시사이저의 코드 연주, 황량한 보컬의 읊는 듯한 멜로디. 코러스에서 위 제목이 세 번 돌다가 허망하게 멈추듯 끝나고 흠흠흠~ 허밍으로 마무리한다. 곡의 후반에는 끓어오르는 현의 멜로디가 밀고 나가다 이상한 잡음으로 끝난다. 여운이 큰 영화의 엔딩만큼이나 큰 여백을 통해 앙상한 우리의 기억 속에 숨은 풍성하고 복잡한 무의식을 보여주는 듯하다. 혹은 파멸을 알지만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고야 마는 우리네 인생이라던가 사랑 같은 걸 말하는 건 아닐까.
일명 <서유쌍기>라 불리는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유기의 이야기에 비틀어진 사랑 이야기를 담아낸 주성치 전성기를 이끈 영화였다. <월광보합>은 손오공(주성치)이 벌을 받고 환생한 지존보(주성치)가 과거로 돌아가 다시 손오공임을 알게 되는 정말 무지막지하게 B급으로 웃기는 코미디 영화다.
그리고 그 후속 편-촬영은 먼저 되었다고 한다-인 <선리기연>은 과거로 돌아간 지존보가 결국 손오공으로 각성하여 현재로 돌아와 삼장법사, 사오정, 저팔계와 함께 다시 서역으로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 과정에서 지존보는 신선인 자하(주인)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검 자청보검을 뽑는다. 자하는 자청보검을 뽑는 남자가 자신의 낭군이 된다는 예언을 들었고 지존보에게 구애한다. 이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지존보-<월광보합>에서 백정정(막문위)과의 사랑을 약속했기 때문에-는 결국 죽는 순간 자신의 심장에 자하가 남긴 눈물을 보게 되고 자신도 자하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다시 손오공으로 각성한다는 것은 속세와의 연을 끊음을 뜻하였다.
진정한 사랑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난 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그리고 그걸 잃고 나서야 크게 후회했소.
인간사 가장 큰 고통은 바로 후회요.
만약 하늘에서 다시 기회를 준다면, 사랑한다 말하겠소.
기한을 정하라 한다면, 만 년으로 하겠소.
지존보가 긴고아를 쓰며 위 대사를 말할 때, 흑백으로 된 자하의 모습을 교차로 보여주며 과거의 연을 끊어야 하는 고통을 감수하겠다 다짐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위 대사는 <중경삼림>을 패러디한 것이고, <선리기연>에서 두 번 나오는데, 처음에는 지존보가 목숨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두 번째는 진심으로 자하를 그리워하며 한다.
마지막 우마왕과의 전투를 벌일 때에도 자신을 그리는 자하를 매몰차게 거부한다. 그러나 결국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죽어가는 자하를 보며 손오공이 된 지존보는 슬픈 사랑과, 속세의 연을 그림에 따라 머리를 조이는 긴고아로 고통스러워한다. 이때 <동사서독>의 OST에서 빌린 음악인 <A Lonely Shadow>가 깔리며 전투의 급박함과 손오공과 자하의 두근거리는 심장, 자하의 죽음이 가져다준 고통을 극대화해준다. 결국 월광보합을 타고 미래로 돌아온 손오공은 자신과 자하의 환생인 두 남녀가 다투는 장면을 목격한다-두 남녀 역시 주성치와 주인이 연기하였다-. 그가 정말 바랐던 것, 자하와의 사랑을 위해 남자의 몸속으로 들어가 두 남녀를 이어준다. 그리고 그는 바나나를 먹으며 저 멀리 성벽 위에 안고 있는 연인을 한번 힐끗 보고 삼장법사를 따라 서역으로 떠난다.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둘 다 1949년 생이다.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두 코미디 배우 짐캐리와 주성치도 둘 다 1962년 생이다. 뭐. 이런 걸로 공통점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나의 헛된 짓이지만 여하튼 신기하다. 두 배우는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배우이다. 짐캐리는 특유의 과장된 표정과 행동으로, 주성치는 피식거리게 만드는 어이없는 개그와 자학으로. 그러나 두 사람은 똑같이 깊고 슬픈 눈을 지니고 있다. <트루먼쇼>에서 아침에 거울을 바라보며 비누로 장난을 치다 구해달라고 말하는 짐캐리의 눈빛. <선리기연>에서 죽기 직전 춘삼십랑(남결영)에게 자신의 가슴을 베어 심장을 꺼내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주성치의 눈빛. 나는 이 눈빛에 매료된 것 같다.
어느 순간 두 배우에게로의 관심이 멀어졌다. 40대가 되며 20대의 감성을 잃은 것인지, 육아와 일에 치여 여유가 없어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짐캐리가 어떤 영화에 출연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주성치가 최근에 만든 영화는 손이 가지 않는다. 그저 과거에 그들을 보며 감성에 젖은 내 모습이 그리운 건가. 조금 여유가 생기면 다시 그 두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알아봐야겠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주성치와 함께라면>이다. 좋은 노래다. RIP 오맹달.
*사토라레: 일본 만화가 원작이며 영화화된 것으로 기억한다. 생각하는 것이 주변에 들리는 신기한 병(?)이 있는 주인공과 주인공에게 이를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배경 출처: https://ko.m.wikipedia.org/wiki/트루먼_쇼#/media/파일%3A트루먼_쇼_포스터.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