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Darius Rucker.
좋아하는 곡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씁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있을 수도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출근길에 좋아하던 곡이 나와 따라 불렀다. 꽤나 리드미컬한 곡으로 빠른 가사가 따라 부르기에 재미있었다. 가사를 음미하다 순간 울컥했다. Darius Rucker라는 흑인 포크가수의 <This>라는 곡인데, 예전에 친구로부터 추천받았던 노래였다. 아내와 만나고 아이가 태어나 자라고 있는 지금, 이곳까지 도달한 나 스스로에게 ‘잘했다’며 격려하는 곡이어서 그랬을까. 앞으로도 여전히 많을 날을 살아가며 수많은 고통과 즐거움을 겪겠으나, 나 혼자만을 바라보던 삶의 한 패이즈를 마무리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을 사는 지금, 딱 어울리는 노래다.
아이는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아이의 엄마는 내 팔에 안겨 웃고 있었다.
지붕에선 빗소리가 들리고
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Got a baby girl sleepin' in my bedroom
And her momma laughing in my arms
There's a sound of rain on the rooftop
And the game's about to start
나른한 주말 오후 베란다 밖에선 가벼운 비가 내린다. 다 함께 점심을 먹었다. 때로는 아내가 잘하는 간장불고기나 집코바, 때로는 분식점 김밥이나 배달음식, 혹은 카페에서 산 빵을 먹었다. 아이는 그림퍼즐을 맞추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인형들과 놀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아내와 나는 각자 거실과 작은 방에서 유튜브를 보거나 글을 쓰거나 빈둥거리고 있다. 한가로운 풍경이다.
내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정말 모르겠지만
다행이라 생각한다
조그만 일 하나가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I don't really know how I got here
But I'm so glad that I did
And it's crazy to think that one little thing
Could have changed all of this
아내와 아이가 재잘거리고 웃는 소리를 방 건너에서 들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제대로 자기 앞가림을 할지도 의문이었던 남루하고 퉁퉁하고 지저분한 놈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착하고 이쁜 여자를 만나고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었는지. 초현실적인 현실이라 때로는 납득이 안 갈 때도 있다. 도대체 내 삶의 궤적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계기로 이렇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마 내가 계획한 대로 일이 이루어지진 않았다
아마 그래서 내가 정말, 그렇게 운 좋은 남자일지 모른다
Maybe it didn't turn out like I planned
Maybe that's why I'm such, such a lucky man
맞다. 나는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인생의 크고 원대한 계획이나 비전이 있지도 않았다. 혹은 이루고 싶은 구체적인 꿈도 꾸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눈앞에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는데 급급했다. 내게 던져진 일 하나하나에 희비가 엇갈리고 고뇌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어떻게든 되겠지 근거 없는 희망을 품고 살아왔다. 그래도 녀석. 운은 꽤나 좋았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멍청한 첫째가 생존과 돈과 가족에 대한 걱정을 크게 안 하게 해 준 부모님과 동생이 있었다. 꾸준히 노력하지 않았지만 시험을 볼 때엔 적절한 운이 내 등을 받쳐주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상당한 빌런을 만난 적은 있지만 인생을 나락으로 치닫게 할 만한 이들은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적절히 사람구실을 하고 있다. 내게 주어진 남편, 아빠, 아들, 형, 가족, 담임, 동료, 친구 등의 역할에 때론 버겁긴 하지만.
나를 멈춰 세웠던 모든 신호등
내가 얻었거나 그러지 못했던 모든 기회들
너무 멀리까지 가버렸던 모든 밤들
내 마음을 부셨던 모든 소녀들
내가 닫아야 했던 모든 문들
내가 안다 여겼으나 알지 못했던 모든 것들
내가 놓친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그게 나를 여기 이곳으로 이끌었으니
For every stoplight I didn't make
Every chance I did or I didn't take
All the nights I went too far
All the girls that broke my heart
All the doors that I had to close
All the things I knew but I didn't know
Thank God for all I missed
'Cause it led me here to this
삶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은 동전의 양면, 혹은 주사위의 육면,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면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누구나 보기에 그럴 때도 있고, 오직 나 혼자만의 마음이 그렇게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을 다채롭다 여긴다. 중고등학교 때 만난 과외 선생님 덕분에 영어를 가르치는 직업을 택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사람구실을 하게 되기도 했지만, 내가 욕망하는 또 다른 일들을 하지 못하는 족쇄가 되기도 하였다. 대학 때 짝사랑 했던 동기나 선후배들 중에 제대로 고백이란 것을 해 본 적이 없을 만큼 숫기가 없었다. 연애를 하며 청춘을 즐기지 못하여 천추의 한이기도 하였지만 그 덕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 같다. 카츄사와 공군을 탈락한 덕에 군악대에서 근무하였고 그 때문에 군생활이 고통스러웠으나, 또 그 덕분에 기타와 드럼, 음악에 더 빠져들 수 있었다. 대학 때 휴학하고 탱자탱자 놀았건 그 시기가 정말 아깝기도 하지만, 그런 시간이 있어 수많은 소설과 음악과 영화를 탐닉하고 즐길 수 있었다.
더 잘할 수 있다 말했던
내가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그 소녀처럼
내가 그 편지를 받을 때까지
가고 싶었던 그 대학처럼
Like the girl that I loved in high school
Who said she could do better
Or the college I wanted to go to
Till I got that letter
내가 이겨내지 못할 거라 여긴
모든 다툼과 눈물과 마음의 아픔들
내가 거의 포기했던 그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너에게 이끌었다
All the fights and the tears and the heartache
I thought I'd never get through
And the moment I almost gave up
All led me here to you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여기 앉아보니
모든 게 완전히 이해가 된다
I didn't understand it way back when
But sittin' here right now
It all makes perfect sense
내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얼마나 울었던가
지금은 나를 바라봐주는
천사를 가졌다
그러니 그 무엇이 실수라 할 수 있을까
Oh I cried when my momma passed away
And now I got an angel
Looking out for me today
So nothing's a mistake
그렇게 좋아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애플의 스티브잡스가 생전에 한 스탠퍼드 졸업 축사는 의미가 있는 듯하다. 걸어온 삶을 뒤돌아 봤을 때가 되어서야 삶의 어떤 지점들이 무슨 의미를 지녔는지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 하였다. 나의 실패와 오만과 상처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의미 있는 일이었다. 아. 오해는 말자.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은 아파야 한다 따위의 말은 아니니. 혹은 단순히 당시의 고통과 상처를 위로하고자 하는 입에 발린 말도 아니다. 분명히 내 삶의 다양한 그 지점들은 당시에는 내게 큰 고통이었다. 때로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후회하는 마음에 여러 번 곱씹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무덤덤하게라도 하고 싶은 말은, 그런 실패, 포기, 잘못된 선택, 놓친 기회, 오만과 질투가 지금, 여기 나를 있게 만든 중요한 지점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너무나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