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야기
며칠 전부터 아이가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란 노래를 들려달라고 했다. 지난가을 근처 공원에서 있었던 축제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구성된 합창팀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 + 네 꿈을 펼쳐라’를 불렀는데, 그때 아이가 인상 깊게 들었나 보다. 유튜브에 있는 합창도, 김광석 님이 직접 부른 라이브도, 다른 가수들의 리메이크도 많이 찾아들었다. 오늘 저녁에는 가사를 조금 외운 것인지 마이크를 잡고 인형을 끼고 부르기도 하였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그 길 그 길에 서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햇살이 눈부신 곳 그곳으로 가네
바람에 내 몸 맡기고 그곳으로 가네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도 수평선을 바라보며
햇살이 웃고 있는 곳 그곳으로 가네
나뭇잎이 손짓하는 곳 그곳으로 가네
휘파람 불며 걷다가 너를 생각해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뒤돌아 볼 수는 없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문뜩 김광석이 노래를 만들면서 그렸던 ‘그곳’이 어디일지 궁금해졌다. 가사에서 노래 부르는 이는 기차를 타고, 때로는 배를 타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그 혹은 그녀가 그리는 ‘그대’ 또는 ‘너’에게 그리움의 편지를 쓴다고 하니 더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인지. 그곳은 ‘설레임과 두려움,‘ ’힘겨운 날들,‘ ’새로운 꿈들’이 있는 장소인 듯하다. 현실을 벗어난 이상향일까. 아니면 이루어져 가고 있는 꿈일까. 바람이 불고, 햇살이 눈부시고, 나뭇잎이 손짓하는 그곳은 어쨌든 지금 현재 노래 부르는 이가 있는 이곳과는 다른 어딘가 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서도 이상향을 노래하거나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곡들이 몇 개 있었다.
시원한 파도소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넥스트 5집 전체의 마지막 곡이다. ‘매연에 끈적이는’ 현실에서 벗어나 지하철을 타고 종착역인 ‘0호선 남태평양역‘에 다다른다. 앨범 전체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밝은 노래로 위트 있는 가사, ‘아헤야 꾼다꾼다, 되거나 말거나 꾼다꾼다’가 코러스로 좌악 깔려있는데 무슨 태평양의 폴리네시안 말 같다. 마지막엔 신해철의 이상야릇한 스캣에 다른 멤버들이 구박하는 콩트도 집어넣었다. 이 곡의 대미는 하이라이트의 가사, ‘그곳에서 나 그곳에서 엽서를 보낼게 나는 아주 잘 있다고 모든 게 다 완벽하다고 그리고 당분간은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이다. 그렇다. 남태평양에 다다른 나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 당분간은. 힘겹고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어떻게 도착한 곳인데. 아참, 청량한 기타 아르페지오 연주도 일품이다.
축구를 좋아한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곡이다. 중학생이던 시절 티브이에서 우연히 위 뮤직비디오를 보고 너무 좋아하게 된 곡이었다. 원곡은 ‘YMCA’로 유명한 Village People의 곡인데 나는 펫샵보이즈 버전을 훨씬 좋아한다. 뮤직비디오를 가만히 보면 붉은 자유의 여신상이나 붉은 별, 소련 문양 같은 것들이 보여 미국 기준으로 서쪽인 소련으로 가자!로 오해 할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냉전이 종식된 시기에 구소련에서 서쪽인 유럽으로 가자는 화합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원래는 Go West라는 말은 아메리카 초기 서북 개척 시기에 “젊은이야 서부로 가라!”라는 호레이스 그릴리라는 뉴스 편집자의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무슨 “Boys, be ambitious!” 같은 느낌의 거칠고 투박한 메시지다. 하지만 펫샵보이즈 버전은 좀 더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보컬로 평화와 따뜻함이 공존하는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느낌을 전한다. 특히, 파헬벨의 캐논과 같은 코드의 곡은 익숙하지만 언제나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이 곡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고등학생 시절 어느 날, 김동률이 솔로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해가 질 무렴 열심히 시내 레코드점으로 뛰어가 이 앨범을 산 기억이 있다. 피아노의 깊은 울림과 서정적인 가사를 갖고 있는 수록곡 중에서도 특히 이 곡은 그곳에 닿고자 하는 힘겨운 과정을 담고 있는 곡이었다. 친구들도 사라지고, 고향도 묻어둔 채, ‘난 또 홀로 외로이 키를 잡고 바다의 노랠 부르며 끝없이 멀어지는 수평선 그 언젠가는 닿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바다를 건너는 고통, 외로움을 노래한다. 대입 준비로 힘겨웠던 그 시절에도, 방황하던 군 입대 전에도 내게 많은 위로를 주었던 곡이다. 패닉의 ‘달팽이’도 결이 비슷한 곡이나 나는 이 노래를 더 좋아한다. 아, 이 노래가 끝나고 나오는 마지막 곡 ‘동반자’에도 주옥같은 가사로 심금을 울린다. “가슴에 물들었던 그 멍들은 푸른 젊음이었소, 이제 남은 또 다른 삶은 내겐 덤이라오.”
역시나 모르는 이가 거의 없는 곡이다. 최초의 칼라 화면을 사용한 1939년 작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가 부른 ‘Somewhere Over the Rainbow.’ 그 이전에도 티브이에서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알게 된 건 한창 기타를 연습할 때였다. 임펠리테리라는 엄청난 속도의 기타리스트가 연주한 곡을 들었는데, 연주를 보고 악보를 보고 좌절을 한 곡이었다. 무슨 드릴 같이 위잉~ 하면서 손가락을 엄청 빠르게 움직여 연주를 하니, 본인 말고는 아무도 치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인 듯했다. 자기 혼자만 기타리스트의 이상에 도착하고자 하려고 그렇게 연주한 것일까. 여하튼, 워낙 사랑스럽고 귀에 꽂히는 멜로디와 목소리로 아이가 그리는 환상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들려준다. 아, 여담으로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당시 열악한 영화 촬영 환경과 특히, 주인공에게 가혹했던 감독의 일화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 곡이 그곳을 그리워하는 노래인지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스물다섯, 스물하나’ 였던 ‘그때’를 그리워한다. 그곳은 단순히 어떤 장소만을 뜻하지 않는다. 지나온 추억, 그 추억이 담긴 시절 역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곳’ 일 것이다. 예전에 어쭙잖게 왜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인 사람들이 늘어가는지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이것저것 책이나 인터넷을 찾아보았지만 이론이나 깊이 있는 사상 같은 이야기는 너무 어려워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되었다. 조악하지만 내 나름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지금 그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을 질투하기 때문”이라 결론지었다. 아님 말고. 어쨌든 이 곡은 김윤아가 아이를 유치원인가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봄길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떠올렸다고 하였다. 크으. 작곡 일화 역시 노래만큼이나 멋지다.
식상한 이야기일 테지만, 이런 노래를 만들고 듣는 이유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상향, 그곳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게 과거 어느 시점일 수도 있고, 꿈 일 수도 있고, 혹은 혼자만 그리는 환상의 세계일 수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을 둘러싼 현재 이곳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거나 고통스러워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빗어 나오는 욕망일 것이다. 나에게는 그게 2002년의 시간이었다-언니네 이발관의 ‘2002년의 시간들’도 좋아하는구나-. 많은 이들이 입시라는 바늘구멍을 비집고 통과한다 비유하지만, 사실 그냥 문 하나를 열고 대학생이 된 것뿐이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혼자가 되었다는 자유로움에 막 취해 대책 없이 빈둥거리고 좋아 날뛰고 시간을 마음대로 막 썼던 시절이었다. 아사카 코타로라는 작가의 ‘사막’이란 소설에서는 황량한 현실이 사막이라면 대학생 시절은 ‘오아시스’라 비유하였다. 아마 그래서 내게도 특히 대학교 1학년 시절이 더 그리운 지도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스러운 이곳을 벗어나 꿈꾸는 그곳으로 가기 위해 노래를 만들거나 듣고, 글을 쓰거나 읽으며, 영화를 본다. 제2 언어 읽기를 공부하면서 몰입 이론(flow theory)이라는 걸 배웠는데, 소설 등을 읽으며 등장인물에 자신을 몰입시키면 글에 쓰인 문장의 언어형식 따위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용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고 한다. 그 경험이 다독(extensive reading)의 즐거움으로, 결국 언어 발달로 이뤄진다. 그곳을 더 동경할수록,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클수록 우리는 이런 음악, 소설, 영화 등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때로는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실천하기도 한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 자신은 과거 그 지식을 모르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인문학, 자연과학 서적을 탐독하기도 한다.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자기 계발 서적을 읽으며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바꿔 스스로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도 같은 맥락이다. 이 모든 활동이 결국 현실의 나를 변화시키고 싶은, 그곳을 향하는 몸부림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절대반지가 자신에게 온 것을 원망할 때, 회색의 간달프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왜 내게 그런 시련이 닥쳤는지 원망스럽구나. 그리고 그런 시기를 겪는 모두이가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러나 그건 그들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일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일 테다.“ 그렇다. 결국 마음의 문제이다.
덧.
‘바람이 불어오는 곳’ 편곡 중에 마음에 드는 편곡이 있어 공유한다.
첫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