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기다림
아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어릴 적 우리 집이 있었던 봉산문화의거리가 펼쳐지며
멀어서 점처럼 보이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석양에 물들어 거뭇하게 보이는 아빠의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빠가 그렇게 자식들을 골목에서 기다리며 봐주신 것은. 아마도 아주아주 내가 어렸을 때부터였겠지. 하지만 그게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이 사춘기여서 사춘기 때 기억부터 나는 것일 테다.
사춘기 즈음부터는 골목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빠가 부끄러웠다.
친구들하고 같이 하교 하고 있는데 아빠가 불쑥 앞에 나와 있으면 그게 왜 그렇게 싫었던지.
서울로 대학을 간 후에는 대학 생활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고 바빴던지 명절 때만 대구집을 내려갔다.
기차를 타고 대구역에서 내리면 전화를 드리고 집으로 향했는데 대체 언제부터 나와 계셨던 건지,
대구학원을 꺾어 골목으로 들어갔을 때부터 아빠가 집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빠가 저멀리서 손을 흔드는데, 나도 손을 흔들며 화답하자니 뻘줌하고 모른 척 천천히 다른 곳을 보며 다가가기도 뻘줌해서 나 혼자서 진땀이 나기도 했다.
아빠의 기다림이 부담스럽고 무겁게 느껴져서 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대학생이 된 후 부모님 생각에 소홀해진 나를 반성하며 드는 미안함도 싫었고, 오랜 만에 대구에 내려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싶은데 골목 끝에서 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이 대구에 머무는 동안 집에만 있도록 나를 붙드는 멍에 같아서...
결혼 전에 남편과 함께 친정집을 찾았던 그날도 아빠는 골목에 나와계셨다.
내가 일곱 살 때 아빠가 직접 건물을 지어 올려 이사를 들어왔던 대구집 인쇄소 건물. 폐업하여 문닫은 지 한참되어 셔터가 무겁게 내려진 인쇄소 현관문 앞에서 나와 남편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 즈음에 경제적으로 어려우셔서 돈을 아낀다고 겨울에도 보일러도 많이 때지 않으셨는데, 나와 남편이 인사 드리러 갔던 때는 온 집안이 따뜻했지.
어느 덧 나이가 들면서 아빠 생각이 부쩍 많이 난다. 어떤 때는 부끄럽고, 어떤 때는 부담스러웠던 아빠의 기다림. 하지만 이제는 그랬던 아빠의 기다림이 그리워서일까. 부모님의 사랑은 나이가 들어 곱씹을수록 뜨거우며, 그때 내가 드린 사랑이 너무 작아서 당황스러움과 함께 아득함이 든다.
언제고 다시 돌아가는 날, 아빠가 골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다면
그때는 두 팔 벌려 아빠라고 크게 부르며 아빠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