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버스가 도착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차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처진 어깨 뒤 배낭에서 형광색 오리발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뜨거워진 태양을 피해 수영장 안으로 속속 들어가는 모습은 영락없이 소풍 전 들뜬 초등학생들 같다. 삼삼오오 깔깔거리기도 하고 서로 먼저 가려고 슬그머니 새치기도 망설이지 않는다. 걸어가는 뒷모습만 보아도 어느 부위가 불편한지 짐작이 가능하다. 무릎이 불편해 한 발에만 힘을 주는 할머니. 허리가 잘 굽혀지지 않아 가슴을 젖힌 채 살금살금 걸어가는 할아버지, 그리고 이미 허리가 굽어 수영이 가능할까 걱정되는 할머니도 있다. 오후 세시, 실버 수영단의 입장 모습이다.
동네 구민 체육관이 생겼다. 깨끗하게 단장된 수영장에 강습비도 저렴하니 수강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새벽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매시간의 강습 스케줄은 늘 만원이어서 로또의 추첨 행운이 따라야 등록이 가능했다. 어렵게 등록하게 된 수영 강습시간이 오후 세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 수영반이었다. 한 달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등록했는데 의외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하는 수업이 내 삶의 활력이 되고 있다.
입수 전 샤워를 마친 수영인들은 이슬을 맞은 새벽 풀처럼 한층 더 싱그러워진다. 단단하게 죄여주는 수영모 덕분에 얼굴 주름은 정수리로 올라붙어 십 년은 족히 젊어 보인다. 수퍼맨 옷을 장착한 히어로처럼 당당하게 수영장으로 입수한다. 불편하던 다리와 허리는 물의 힘을 받아 부드러워지고 몸은 땅 위의 내 것과는 다르게 한결 가볍다. 무거운 걸음걸이를 벗어두고 마치 우주인이 된 듯 몸을 구르기도 하고 폴짝폴짝 뛰어도 본다. 단 한 시간 어린이의 몸이 되는 마법의 문을 통과한 것 같다.
십분의 준비운동이 시작된다. 가벼워진 관절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불편했던 몸을 달랜다. 하늘을 향해 팔을 벌렸다가 아래로 치면서 물을 첨벙거린다. 물을 치며 기뻐하는 아기들처럼 서로 물장구를 치며 키드득거린다. 젊은 선생님이 앳된 얼굴로 불호령을 내린다. 수영장에선 나이가 소용없다. 열혈 강사와 순한 수강생들이 있을 뿐이다. 선생님의 구령에 입수가 시작되었다. 오리발을 장착한 고급반 레인은 쉬지 않고 레이스를 반복하고 초급반 레인의 선수들은 킥 판을 몸에 끌어안고 부지런히 발차기를 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온몸의 근육은 물의 저항과 부력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쉼 없이 활동한다. 25미터 길이의 거대한 수족관에 막 잡아넣은 싱싱한 활어떼들처럼 수영장은 순간 거대한 거품과 활기찬 물소리가 가득해진다. 생명의 움직임이 아름다운 순간이다.
몇 바퀴 레이스가 끝나면 선수들은 거칠어진 숨을 뱉어낸다. 물기 묻은 얼굴에는 어느새 발그스레 분홍빛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간절한 눈빛으로 한 바퀴 걸으며 휴식을 취하자고 강사에게 농을 건네지만 그는 엄한 목소리로 몇 바퀴 더를 외친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표정의 선수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입수하며 다시 힘을 낸다. 오랜 기간 수영으로 단련된 노인들의 폐활량이 놀랍다. 속도는 더디어지더라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은 없다. 사십분의 시간은 마법처럼 흘러가 버린다. 끝까지 완주해 낸 선수들의 모습에는 자신감과 뿌듯함이 넘친다.
강습이 마칠 즈음 강사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일 우린 어떤 훈련을 할 것이며 바깥 더위에 지치시지 말라는 인사를 살갑게 나눈다.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박수를 치며 수업을 마무리한다. 함께 훈련한 동지들의 박수소리가 우렁차다.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힘들지만 함께해 준 동료들에게, 선수들을 지지해 준 강사에게 보내는 즐거운 박수소리다. 비장했던 선수들은 다시 물장구치는 어린이가 되어 서로 영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수다도 떨며 아쉬운 물놀이를 즐긴다. 오늘의 발차기도 성공적이다.
갓 태어난 아기들의 울음소리에서 눈부신 생명력이 샘솟는다고 생각했다.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의 조잘거림 속에서 밝고 아름다운 생명력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어느 에너지가 더 아름답다 우길 수는 없지만 실버 수영단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내뿜는 활기찬 에너지에서 나는 경건한 생명력을 느낀다. 생명력이란 주어진 생명에 스스로의 힘을 내는 에너지가 아닐까. 나의 생명에 환희를 느끼며 살아가고자 하는 힘을 다할 때 생명력은 더 아름답고 밝게 빛난다. 꽉 끼는 수영모를 벗으면서 주름은 다시 내려오고 굽은 관절은 다시 욱신거리지만 물속에서 힘껏 앞으로 나아가던 생명력으로 삶은 계속된다. 꽃무늬 원피스로 탈바꿈한 할머니들이 다시 불편한 걸음걸이로 삼삼오오 집으로 향한다.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렸다. 내가 본 수영장의 히어로들은 꿈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