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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Sep 09. 2023

집과 이별하기


 집을 팔았다.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면 불편해도 내 집이 최고라 여기며 계속 살았을거다. 집은 늘 있는 것이었지 옮기기 위해 찾아보고 또 팔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 대해선 무지했다. 팔겠다고 부동산에 이야기해두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을까 짐작했지만 그건 세상 물정 모르는 생각이었다. 팔아야 한다는 이유만 있을 뿐 어떻게 팔아야 할지 어디로 가서 다시 집을 구해야 할지 모호한 플랜은 잡히지 않는 비누방울처럼 내 눈앞에서 톡톡 터지고 있었다.



 봄부터 부동산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집을 팔기로 했으면 집을 보여줘야 하는데 매번 요구에 대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민망한 내 살림살이를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보여주는 일도 어색했지만 외출중에도 전화를 받고 다급히 뛰어 오는 날도 많았다. 구매의사를 품고 오는 이들도 있었겠지만 그저 한 번 봐두자는 마음으로 보는 이들도 많았으니 슬슬 골이 나기 시작했다. 성의 없이 트집 잡는 이들이 집을 볼 때엔 나 역시 꼿꼿한 자세로 우리집을 내놓지 않겠다는 혼자만의 소심한 자존심을 내세우기도 했다. 집을 팔겠다고 결심한 이상 내 집은 나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흥정 아래 놓인 물건이 되고 말았다. 지금처럼 부동산 침체기엔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갑, 팔겠다는 사람이 을이라고 했다.



 집이 마음에 든다고 이사 날짜를 들먹이던 누군가는 부동산을 통해 우리가 제시한 가격에서 턱없는 가격을 요구했다. 그 가격엔 팔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그 대화의 틈에는 무례한 말들이 오가며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다. 팔아야 한다는 마음과 이 가격에 내 집을 내어줄 수 없다는 마음으로 밤잠을 설쳤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나는 슬쩍 내 집을 내어줄 새 주인을 요리조리 마음으로 평가해 보고 있었다. 내 집을 인수할 이는 내 집의 가치를 알고 잘 단도리할 사람이어야 했다. 그 후로도 집을 보여주기만 한 시간이 한참 흘러 종내 적당한 매수자를 찾게 되었다. 한참을 양보한 가격이었지만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그냥 이렇게 팔아야 한다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가계약금을 받던 날, 집을 팔았다는 말을 큰 소리로 말할 수가 없었다. 내 집이 듣는다면 얼마나 서운할까 싶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이 집으로 이사와 우린 십오 년을 살았고 그 꼬맹이가 대학생이 된지도 어느새 두 해가 지났다. 거실의 한 기둥에는 아이들의 키를 재어 표시한 줄들이 날짜와 함께 나무의 나이테처럼 삐뜰빼뚤 그려져 있다. 식탁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면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보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면 귀신처럼 내 아이의 뛰는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이가 혹시라도 엄마를 발견할까 나는 창문을 열어 혼자 손을 흔들어 보기도 했었다. 십오 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이 집에서 일어났지만 그래도 네 명의 식구가 건강하게 탈 없이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집에 감사했다. 그런 집을 날름 팔고 속 시원해 할 수는 없었다.



 계약서를 쓰던 날, 중개사가 안내하는대로 도장을 찍은 직후 남편이 슬그머니 소회를 말했다. 이 집에 대한 애착이 많아 마음이 이상하다고 했다. 남편의 진심이 착잡함으로 몽글거리던 내 마음을 쿡 찔렀다.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집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과 아쉬움의 결정체였으리라. 매수자 역시 아이를 다 키우고 집을 떠나올 때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마음에 공감을 보탰다. 그들의 말이 내 귀에 윙윙거릴 뿐 나는 여전히 내 집이 아깝고 귀했다.



 내게 의식주 중 무엇이 가장 중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도 결국엔 '주'를 말하지 않을까 싶다. 내게 집은 아주 소중하다. 못 먹고 못 입었던 경험이 없어서일지도 모르지만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은 가정에 있어선 그림의 기본 도화지라고 여겼다. 바깥세상이 험난하고 치열해도 내 집안에서는 평화와 안락함이 있길 바랐다. 가족들이 먼 걸음으로 외출을 하고 돌아올때 내 집이 최고라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들어오게 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소중한 울타리를 만들어준 집이 어떻게 그저 하나의 물성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계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현관문에 오랫동안 붙어 있던 종이 한 장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큰 아이가 초등학생 때 한글을 배우고 적어둔 글귀다.

"대가를 바라고 하는 행동은 선행이 아니다. 사랑이란 조건 없이 나누는 마음"

그때의 아이는 이 말이 참 좋았나 보았다. 우리 집을 드나들던 이들은 현관문을 열 때마다 그 글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며 웃었다. 내 집도 그 글을 품고서 우리에게 조건 없이 포근한 보금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을까.



 이사일까지는 이제 삼 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다. 집과의 이별을 천천히 음미하려고 한다. 묵은 짐을 하나씩 정리해야지 생각하며 둘러보니 짐보단 추억의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침대 머리맡 벽에는 유치원생이었던 작은 아이가 벽지를 우주 삼아 태양과 지구 그 주위를 돌고 있는 달의 그림을 색종이로 만들어 붙여 놓았다. 매일 밤 작은 아이 덕에 태양계를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드는 호사를 누렸다. 부엌 다용도실 입구에는 페인트를 사다가 남편과 함께 칠한 스페니쉬 옐로우의 거친 중문이 손때 묻은 채로 버티고 있다. 싱크대 구석에 아이가 몰래 붙여둔 스티커며 어느 한 구석 사연이 없는 곳이 없다.



 추억의 흔적들을 사진과 함께 기록해 보고 싶다. 집의 역사이며 우리 가족의 역사가 될 것이다. 소중했던 순간의 기억을 회고하며 진심을 다해 인사를 건넨다면 집도 우리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 가족의 역사책 한 단락을 마무리하는 기분으로 집과의 이별의 준비하려 한다. 구석구석 집안을 훑어가다보면 보석같은 기억들이 낡은 램프를 문질러 튀어 나오던 지니의 깜짝 선물처럼 터져 나올지 모를 일이다. 마음껏 이별의 선물을 즐기고 기억해주리라. 그 끝에는 집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그리고 우리에겐 또다른 공간의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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