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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Oct 12. 2023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나는 옛날 사람이다. 처음부터 순순히 인정한 건 아니다. 케케묵은 생각에 길들여진, 새롭지 못한 구식의 사람. 나이 들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 들 때다. 그렇지 않은 척 젊은 세대의 생각을 엿보고 그들의 행동 방식에 감탄하는 건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을 뿐, 그들의 취향에 적극 동의하는 마음은 아니었던 거다. 남편의 고리타분한 말에 슬그머니 꼬인 마음이 드는 것도 역시  깊은 곳에 숨겨둔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추석이라 아이들이 왔고 시어른을 포함해서 시댁, 친정 식구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었다. 반가움 뒤에는 어떤 먹거리를 준비해 놓아야 할지 추석 즈음부터 고민이 컸다.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거한 밥상을 차려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간소하게 다과상이나 술안주를 준비해야 하는 일에도 신경은 온통 장 보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시아버지를 생각하니 간단한 전이라도 부쳐야 할 것 같고 아이들을 생각하니 고기라도 사둬야 하겠고, 조카들을 생각하니 디저트 케익도 멋지게 하나 만들어 두고 싶었다. 


 혼자 마음이 바쁜 내게 남편은 야속하게도 돌직구를 날린다. 못 먹는 세상도 아닌데 옛날 사람처럼 왜 먹는 거에 안달복달하며 신경을 쓰는 거냐고. 나가서 사면 뭐하나 없는 게 없는 세상인데 할머니들처럼 기름냄새 맡아가며 전 부치는 일에서 왜 해방되지 못하는 거냐고. 당신 부모님이 서운해할까 봐 전을 부친다고 말을 하려고 입을 오물거리다 아차 싶어 멈췄다. 그건 그냥 혼자만의 구린 내 생각이었을까. 으레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마음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괜히 보골이 났다. 누군가를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은 그저 구닥다리 아줌마의 구태의연한 행태인가에 생각이 멈췄다.


 얼마 전 읽은 강창래 작가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라는 에세이가 떠올랐다. 부엌일에 서툰 중년 남성이 이런저런 요리를 시도해 보며 적은 에세이라 술술 읽혔다. 혼자 다양한 재료를 벌려두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내 서툰 손이라도 보태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책의 중반을 넘어가니 금세 부엌일에 익숙해져 전문가처럼 이리저리 요리 과정을 설명하는 그의 재주에 감탄이 늘어난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그가 서툰 솜씨로 음식을 만드는 목적은 잘 먹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서였다. 암 투병 중인 아내는 제대로 음식을 소화할 수가 없었고 작가는 아내에게 뭐라도 먹이고 싶었다. 식욕이라는 게 생겨 뭔가를 원할 때 바로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이 작가의 손길에 담겨 있었다. 자극적이지 않아야 하고, 부드럽게 소화가 잘 되어야 하며 좋은 재료로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음식을 위해 그는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요리책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며, 아내 투병의 슬픈 에세이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소중한 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해주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였다. 건강 음식인 야채스프를 만들 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난데없이 탕수육이나 짬뽕을 먹고 싶어 하는 아내를 위해 매운 육수를 끓이고 돼지고기를 튀겨내는 작가의 정성에는 할 말을 잊게 했다.  아주 적은 양을 맛볼 뿐일 텐데 기쁘게 감탄할 아내를 위해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불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내가 그의 곁에서 숨을 쉬고 맛볼 수 있다는 것이 하루를 살아가는 동력인 것 같다. 


 작가의 글은 담백하다. 눈물이란 단어도 슬픔이란 기분에 대해서도 작가는 기록하지 않는다. 지금 해야 할 일을 기록하고 아내의 반응을 남길 뿐이다. 책 말미에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혼자서도 밥 굶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제야 아내의 의중을 알게 되었다고. 혼자 남게 된 자신이 스스로 밥을 챙기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던 것 같다고 했다. 아내를 위해 밥상을 차리던 작가는 오히려 요리가 그녀로부터 받은 선물이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를 위하고 싶을 때 무엇을 먹이면 좋을까를 떠올린다. 솜씨는 없지만 요리조리 준비하며 기쁘게 먹을 누군가를 떠올리면 마음이 화사해진다. 구식 사고방식이라 마음 편히 내세우지 못했는데 강창래 작가의 글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옛날 할머니들이 귀한 주전부리를 몰래 숨겨뒀다가 이쁜 손자에게 내놓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지금의 내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추석날, 기어코 재료를 준비해서 부침개를 부쳤고, 아들들을 위해 고기를 재웠고, 그리고 조카들을 위해 케익을 구웠다. 해 주고 싶어 하는 마음에 당당하기로 한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방점을 두기로 했다. 추석은 순조로웠다. 음식에 크게 연연해 하진 않았지만 서로를 기쁘게 해 주고 싶었던 그 마음이 기름 냄새에 배여 기름지게 오갔다. 올해도 추석의 크고 밝은 대보름달이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내 마음을 두둥실 환히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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