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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Jan 25. 2024

지구의 아름다운 무늬들

나의 문어선생님

  고요를 깨우는 임무를 띤 듯 새들이 종알대며 아침을 깨운다. 넓은 창에는 어느새 따뜻한 온기와 함께 붉어진 빛이 번져가고 있었다. 태국 끄라비에 머무르는 동안 귀가 행복했다. 깊고 울창한 숲을 가졌으니 들려오는 새소리도 다양하고 울려 퍼지는 메아리도 깊었다. 창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먼 곳 절벽 어디쯤에서 길게 응답하는 새의 노래는 잘 짜인 화음이 되어 평화로움에 활기를 더했다. 숨 쉬고 있는 이곳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터전이라고 생명체들은 그윽한 암시를 내던진다.



 그들의 풍습인지 마을 담장에는 새장을 걸어둔 집이 많았다. 흔히 보던 감옥 같은 철창은 아니다. 나무로 공을 들이거나 자개를 박아 앙증맞게 장식되어 있다. 한두 마리의 새가 그 속에서 우아한 자태로 노래를 부르며 시선을 끈다. 갇혀 있어 가엾은 마음보단 새를 가족처럼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을 떠올렸다. 나태하게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도 목줄이 뭔지 모르는 동네 개들도 종속이 아닌 공존인 듯 자유롭다. 인간도 동물도 서로 무심한 듯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사는 모습이 자연스럽지만 낯설게 느껴진다. 사람이 주인인 듯 사는 삶에 익숙한 탓이다.



 부모님과 함께 한 휴양지 여행이라  오후의 시간은 나른하고 더디게 흘러갔다. 지루해하는 엄마와 함께 볼 영화로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골랐다. 제작자인 크레이그 포스터는  오랜 영화 촬영과 편집일에 지쳐 고향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왔다. 어릴 적 경험한 자연을 그리워하며  매일 프리다이빙으로 바다를 탐험한다. 다시마숲으로 가득 찬 어두운 바다에서 문어 한 마리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개나 고양이가 아닌 문어와의 교감이라니 나의 가난한 상상력을 비웃는 것 같다.



 엄마는 영상의 도입부를 본 후 그 나라 사람들은 문어를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문어와 마주치면 얼른 잡아 데쳐 먹어야지 왜 보고만 있냐고 해서 우린 한바탕 웃었다. 문어에 대한, 아니 사람이 아닌 생명체에 대한 생각은 늘 그래왔다. 인간에게 유용한가 그렇지 않은가, 혹은 먹을 수 있는가 아닌가로 구분되면서 효용을 저울질하는 일에 익숙했다. 그런 관점이라면 문어는 가치 있는 먹거리로 망설임 없이 식탁에 올려야 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런 문어가 우정을 나누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문어와 친구가 되는 것은 인간의 교제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엔 거리를 유지한 채 오감으로 서로를 탐색한다. 해를 끼치지 않음을 확신하면 손을 내밀어 상대를 느낀다. 그 사이 신뢰가 움튼다. 카메라를 떨어뜨리는 한 번의 실수로 문어가 재빠르게 도망을 쳤다. 크레이그는 크게 낙심하며 잃은 친구를 찾기 위해 문어 연구에 몰두한다. 사랑은 관심에서 시작되는 법, 친구의 새로운 은둔처를 찾아내고 다시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문어의 일상은 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위험천만한 순간의 연속이다. 자연의 본능적 일생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가 새로운 친구에게 보여주는 관심, 아름다운 위장과 춤의 향연에 대해선 설명할 길이 없다. 생명체의 소임과 더불어 신비로운 유희가 함께한다. 친구인 크레이그에게 문어는 독자적인 행위 예술을 뽐낸다. 그들에게도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그들의 세상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문어숙회를 떠올린 첫 마음과 달리 우리는 점점 문어를 응원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미처 몰랐던 매력을 발견하고 나니 지금까지 환호하며 문어를 먹은 스스로가 낯설어진다. 가축의 비애를 안 후에도 두 눈을 질끈 감고 먹어온 것처럼 다시 안타까운 마음의 스위치를 내려놓은 채 식탁에 앉게 될 앞으로의 마음이 두렵다. 크레이그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니 다른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존재가 살아가는 야생의 환경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야생에 애정을 품은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의 마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삶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더 확대해 나가는 것이며, 결국 그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푸른 지구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환경을 느끼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소박하지만 내 세계를 넓히는 일이다. 그 시선도 내가 보고자 하는 것에만 머물러 있으니 실상 무관심 속에 묻혀 버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의 모습과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쉽지 않다. 문어를 선생님 삼아 크레이그는 바닷속 생명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인간이라는 옷을 벗고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의 존재로 그들과 교감하니 세상은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다. 바다에서 문어 선생님을 발견하듯 내 일상에선 어떤 스승을 마주칠 수 있을까. 스승이 많을수록 인생은 더 깊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끄라비 비치에서 배를 타고 가까운 섬으로 나갔다. 오염되지 않은 에메랄드빛 비치가 있다고 했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닷속엔 노란 형광빛을 띠는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니고 춤추듯 하늘거리는 해파리들이 나타났다. 그들도 나를 구경하고 나도 그들에게 빠져든다. 한참 바닷속 탐험을 하다 물 밖으로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꼬마 아이 키 정도의 우람한 도마뱀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바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짧은 다리로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긴 꼬리를 우아하게 흔들어댄다.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숲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수영하던 이들도 그의 위용을 경탄하며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의 아름다운 섬을 우리가 잠시 소란스럽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도마뱀이 쓸고 간 모래 자국이 남았다가 파도가 다시 지운다. 그가 나의 스승이 된다면 어떤 숨겨진 비밀을 알려줄까. 도마뱀이 향한  숲을 혼자 떠올려 본다. 그 상상 속에 나의 존재는 그저 지구의 작은 이방인일 뿐이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지구의 아름다운 무늬를 떠올린다. 떠오르는 아침해와 새의 지저귐이 어우러지듯, 문어와 다양한 해조류들이 서로 공존하듯 지구의 다양한 생명들은 여기저기서 조화롭게 화음을 만들어낸다. 그들의 화음에 무심한 지구인이 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나의 선생님들을 찾아내고 싶다. 어깨에 힘을 빼고 지구를 잠시 스쳐가는 나그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지구는 더 황홀하고 다양한 무늬를 우리 앞에 드러내지 않을까. 끄라비의 발랄하고 생명력 넘치던 아침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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