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쌓이는 말의 흔적
초등학교 3학년, 내 인생의 첫 전학을 경험했다. 용인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해 1학년과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은 경기도 고양시의 학교에서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 인사한 기억. 그 이후에 내가 어떻게 학교 생활에 적응했는지 세세한 이야기들은 기억에 없다. 짝꿍과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선생님께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반 아이들과 어떻게 지냈는지, 아주 드물게 간간히 기억난다. 그렇게 선명하지 않은 먼 시간의 일인데 유독 잊히지 않는 사건이 있다.
3월 여전히 추운 어느 날. 아침 조회 시간에 선생님은 오늘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할 것이라 했다. 그러니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잘하라고. 오전이었는지, 오후였는지 체육 시간이라 운동장에서 벌벌 떨며 서 있던 중 아주 멀리, 저 멀리 한 무리의 어른들이 학교 여기저기를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키며 "장학사인가 봐."라고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했다. 그들이 우리를 봤을지, 내가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키며 이야기하는 것을 봤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 담임 선생님. 다시 교실로 돌아왔을 때, 담임 선생님은 내 이름을 언급하며 말씀하셨다. 손가락으로 사람 가리키면 절대 안 된다고. 어떤 이유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으나 그녀의 가르침은 내 삶에 깊이 새겨졌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람을 향해 절대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
엄청나지 않은가? 말 한마디의 효과란 것이 말이다. 그런데, 왜 이 기억은 그다지 달달하거나 행복한 맛이 없을까? 살면서 이 사건을 수없이 많이 떠올렸지만 오늘은 작정하고 그 장면으로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 사건의 무엇이 나를 자극하는지, 왜 자꾸 떠오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서먹함이 말할 수 없이 크게 느껴지던 전학 적응 초기,
많은 아이들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사람으로 콕 지목된 나.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
이질감, 소외감, 창피, 억울, 슬픔.
뭐가 많았구나. 놀랍다. 가끔 떠오르는 장면이라, '그런 때가 있었지.' 하며 흘려보냈었다. 그러나 늘 그 사건을 기억할 때마다 내 심장이 쭈그러지는 것 같고, 아리다고 느꼈었는데 오늘 그 이유를 알았다. 이런 감정들 때문이었구나. 기억은 과거이지만, 그 기억을 떠올릴 때의 느낌은 '현재'라는데, 정말 그랬구나....
그래서, 말은 툭 하고 뱉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섬세하게 잘 손질해서 줘야 하는 거구나. 사전 작업을 잘해야 하는구나. 전달할 내용의 맥락을 정확하게 하고, 내가 무엇을 어떤 이유로 말하는 것인지 적합한 단어로 명료하게 표현하고. 아, 그리고 듣는 이의 상태도 살펴야. 나와 그가 맥락을 공유하는지, 내가 다루려는 그 내용에 대해 그의 생각은 무엇인지, 어떤 이유로 그 행동을 했는지 등 말이다. 충분한 사전 작업과 손질이 없는 말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몸과 마음에 원하지 않는 감정을 깊이 새기는 거, 일상에서 너무 잦았다. 내가 무심코 뱉은 말이 어느 누구의 기억과 아린 감정을 소환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 네이버 국어사전에 찾은 뜻
이질감: 성질이 서로 달라 낯설거나 잘 맞지 않는 느낌.
소외감: 어떤 무리에서 기피하여 따돌리거나 멀리함.
창피: 체면이 깎이는 일이나 아니꼬운 일을 당함. 또는 그에 대한 부끄러움
억울: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거나 하여 분하고 답답함. 또는 그런 심정.
슬프다: 원통한 일을 겪거나 불쌍한 일을 보고 마음이 아프고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