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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의뿔 Dec 02. 2024

'공간'이 주는 홀가분함

몸에 배여있는 염려 또는 배려 

하루에도 수 천, 수 만 개의 생각이 스쳐간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애써 잡으려 하지 않는데도 자리를 잡고 깊이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 있다. 그리고는 블랙홀처럼 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생각이 있다. 간절하게 원하거나 기다렸던 것은 아닌데 그 생각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강하게 힘을 발휘하는 생각. 9월 초, 그렇게 스치지 않은 생각 하나를 잡았다. 그리고 지금 미국 펜실베니아주 Langhorne에서 일상 밖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평소 늘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하면 부딪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내 말소리가 타인을 방해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긴장했었나 보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넓어도 이렇게 넓은. 주변에 집이 수십 채가 있지만 집 밖을 나다니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내 주변에 걸리는 것이 없는 여유로운 환경을 편하게 누려도 될까? 


조용하고 움직임이 자유로운 곳에서 지내는 몇 일. 울음으로, 발 구름으로, 뜀박질로, 주변에 대한 과도한 의식 없이 자신을 표현하고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자연스러운 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간 내 몸에 얼마나 많은 긴장과 염려가 쌓였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며 층간 소음에 대한 염려오 까치발을 들고 다녔다. 창문을 열어 놓을 경우, 행여라도 바람에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히지 않을까 항상 무거운 것으로 문을 고정했다. 아이들이 콩콩거리며 다니거나 물건을 던지듯 내려놓을 때 눈살을 찌푸리며 주의를 줬다. 말소리, 음악소리, TV 소리가 다른 집에 방해될까 소리를 작게 하고 가족들의 움직임에 주의를 주고.  


사람이 살아 숨 쉬고 움직이고 소통하고, 그리고 또 아이들이 자라면서 만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소리에 왜 그리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았을까? 알게 모르게 배어 있던 그 긴장을 인식하고는 '휴우~'하고 숨을 내쉰다. 더 이상 긴장하고 애쓰지 않으며 되는 곳, 염려를 '내려놓음'과 '가벼움'을 놓치지 말자며. 순간의 생각을 잡아 먼 곳까지 와서 느끼는 홀가분함, 다시 또 서울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동적으로 긴장을 장착하겠지만, 더 그에 머물고 싶다.

  

2024년 11월 29일 인천공항
2024년 12월 2일 Langhorne, 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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