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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는, 그냥 듣자.

by 무소의뿔

2014년 5월 어버이 날 이후 몇 일을 잊을 수 없다. 미세하게 종일, 내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빠한테 전화드려. 어서 전화드려.' 어버이날에 짧게 통화했다며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 미세한 소리가 평생 박제가 될 줄이야. 2014년 5월 어느 날 아빠는 다른 세상의 존재가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마음의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심장 주변을 간질거리는 그 미세한 소리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기울여 듣고, 따른다.

2024년 12월 3일, 나는 약 80여일의 여행을 계획하고 한국 밖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내 마음의 소리는 박사과정 중 만났던 소중한 이들을 재회하는 것이었다. 특히, 지도교수님이 살아계실 때 한 번 만나자는 소리. 유튜브로 비상계엄 상황을 접하며 사시나무 처럼 떨리는 몸을 어찌하지 못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순간 간절했던 건, 가족이었다. 내가 다시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돌이켜 보면 얼마나 황당한 생각인가 싶다. 왜 가족을 못 만난다고 생각했을까? 계엄이 해제된 것, 지금 내가 가족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내년 1월에는 조카 둘과 여행을 한다. 이 역시 마음의 소리를 따른 것이다. 곧 성인이 될 이들, 몇 안되는 내 피붙이들과 진한 시간을 갖고 싶다는 간절함. 이 소리는 미세하지 않았다. 크고 절절했다. 다행히도 10대인 두 조카가 내 제안을 수락했다! 요즘 여행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환율, 이거 뭐지? 2024년 12월 환율도 지금처럼 1,500원에 육박했다. 어제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여행을 물려야 할까? 항공권 취소할까? 오늘, 빛의 혁명 1주기를 앞두고 올라온 작년 이 맘때의 감정을 타고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그냥 가자. 이 기회는 또 오지 않을거야.

네가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시간이야.

마음의 소리는, 그냥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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