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지 않고 싶지만 자지 않아 괴로운 시간을 이겨내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재생한다. 올해의 비극은 무더위, 하기 싫은 일을 또 반복하고 마는 것. 선풍기의 날개는 두 번이나 부러진다. 삐거덕대며 시원한 바람을 내지 못하며 덜덜거리는 선풍기를 켜고 만다. 고작 며칠의 불안함일지도 모른다. 이 불안함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꿈 마지막엔 항상 바퀴벌레가 나온다. 나의 불안은 바퀴벌레로 둔갑한다. 나의 방 벽과, 천장, 바닥 너머에 바퀴벌레가 득실거릴 거라는 상상 혹은 착각. 나의 정육면체 공간이 불안으로 둘러 싸인 것일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내 불안을 널뛰게 한다면 이어서 재생하는 아멘은 나를 달래 보는 음악. 그러고 보니, 가수는 여전히 은둔하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목소리가 밝아 보였다. 그리고 활동 계획은 없다고 답한다. 가수의 라이브를 보러 간 것은 정말 잘한 일. 내 인생의 희극이다. 불안에 덜덜덜 떨다 보면 그 불안의 실체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불안을 불안해하지 않기. 아, 실체가 없다기보다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거나, 식단이 엉망이라거나, 운동을 하지 않았다거나, 하지만 무엇보다 답은, 몸 한구석의 불편함을 모른 척했던 것. 손을 떨어 불안한 걸까 불안해서 손을 떠는 걸까, 답은 손을 떨어서 불안했다는 것. 아, 그렇다면 해결도 간단하지. 병원에 가자. 막연한 상상이나 계획을 구체화해 보자. 병원을 가고 건강해지자. 운동을 하고 건강해지자. 버겁다는 느끼는 살을 덜어내고 건강해지자. 글을 보고 이미지를 읽어나가자. 숲을 가꾸자. 막연한 숲을. 우리의 세상은 이상하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세상이 미쳤다고 했는데 가장 미친 시대는 언제인 걸까. 그저 지금이 가장 심난하고 가장 밝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숲을 가꾸면 바퀴벌레 꿈을 꾸지 않게 될까.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새벽의 쏟아지는 비는 불안함의 아주 적절한 배경 효과다. 세상이 망하지 않을까 걱정하다 순탄하게 돌아가는 아침을 볼 때면 그 불안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 늘 마음의 대비를 하기 좋은 거니까 불안은. 거리축제에서 벽을 타는 사람들이 나오는 공연을 집중해서 보던 아이는 어른들과 힘차게 박수를 쳤고, 끝까지 보지 못한 채 엄마의 손에 이끌려 구역에서 벗어났다가 궁금함을 참지 못했는지 다시 돌아와 커튼콜까지 야무지게 본다. 그 풍경을 눈에 깊이 심는다. 예술을 본다는 것. 예술을 보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게 나에게 예술을 보는 의미. 9월이 어찌 이리 덥냐며 사람들은 놀라고 있지만 그 더위 속에서 예술을 보며 예술을 행하는 사람들을 본다. 예술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곳곳이 무대였던 그날의 서울은 불안하지 않았다. 더웠지만 시원했다. 말을 탄 사람이 계속 달린다. 박수를 치며 손바닥이 끈적했지만 모두 열심히 박수를 쳤다. 퍼포머는 얼른 이 더위에서 빠져나가라며 손짓하며 관객들을 내보낸다. 모두가 땀을 흘리는 공평한 공연. 관객도, 퍼포머도. 나의 연인은 병이 났고, 함께 하지 못해 아쉬운 시간이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이 내리던 비가 잠잠해졌다. 지구는 힘이 약해졌나 보다. 늙어버린 걸까. 그렇지만 지구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지. 지구는 괜찮다. 우리만 고통스러워질 테니까. 비가 미친 듯이 내렸던 20년도의 여름을 기억한다. 처음으로 와닿았던 환경의 공포였으니까. 좀 더 나은 삶의 방식을 모색하지만 나약한 나는 다시 편한 삶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인간은 그렇다. 올해 같은 최악의 무더위가 고통스러웠다 한들, 에어컨을 끄지 못할 것이고, 고기를 끊지 못할 것이고, 골프를 끊지 못할 것이고, 소비를 멈추지 못할 것이고, 편리함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렇다. 에어컨을 끄자고 말하고, 고기를 그만 먹자고 말하고, 숲을 파괴하지 말자고 외치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을 살자고 말한다. 내 불안은 비극 속에 있을까 봐 가 아니라, 비극을 당연하게 생각할까 봐 일지도 모르겠다. 삶을 흐르는 대로 두라고 하지만, 나의 흐름에 나의 의지가 없을까 봐, 그 흐름에 아무 생각을 못 할까 봐.
“필요 없습니다. 엄청나게 긴 여정이 될 것이니 가는 도중에 무언가를 얻지 못한다면 난 분명 굶어 죽을 것입니다. 준비가 날 살리진 못하지요.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 여행이야말로 정말이지 엄청난 여행이란 것입니다.” <돌연한 출발> / 프란츠 카프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