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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Jan 28. 2024

우정의 일주일

하트시그널 말고 우정시그널

친구들과 후암동의 예쁜 집을 빌려 7 8일을 함께 보냈다. 이름하야 우정 시그널 하우스! 연애 프로그램 <하트 시그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프로그램과의  공통점은  하나,  입주자들은  집에서 같이 살되 출근이든 외출이든 편하게 하고 집으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함께 여행을 가자니 일정을 맞추는  점점 힘들어지고, 그렇지만 같이 모여 노는  포기할  없었던 우리는, 그렇게 그냥 집을 하나 빌리게 되었다. 남산 타워가 손에 잡힐  가까이 있는 동네였다. 각자의 직장 위치와 교통 등을 고려해 위치를 선정했다. 회식이 있어도, 운동 강습이 있어도, 갑자기 원래 살던 집에 다녀오고 싶어도 상관없다. 모든  끝나고 우정의 집으로 복귀하면 된다.


사실 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 한참 전부터 브런치 글 한 편쯤은 맡겨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일주일이 모두 끝난 뒤에도 딱히 떠오르는 글감은 없었다. 함께 살며 친구들의 몰랐던 면모를 알게 되었다든가 유의미한 대화를 나눴다거나 한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한 건 그저 끝없는 보드게임과 실없는 농담뿐이었다. 심지어는 술도 얼마 안 마셨다. 그러나 매일이 평온한 나날이라 그 편안함의 장에서 푹 자고 목 아프게 웃었다.


'여행은 살아보는 것'이라는 에어비앤비의 유명한 카피 그대로의 시간이었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동네 식당에서 김치돈가스를 먹고, 만원으로 한 줄짜리 로또 10장을 사서 그걸 걸고 마치 20억의 판돈을 두고 벌이는 게임인양 치열한 보드게임을 하고, 책을 몇 장 들추기도 전에 낮잠에 빠졌다가 찌개 끓이는 냄새에 잠을 깨고, 혼자서는 못 보던 공포영화를 보고, 늘어져라 다 같이 늦잠을 자고. 30대의 파자마 파티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유치하고 소박한, 그러나 왠지 십 년 후에도 모이기만 하면 이러고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 일주일을 보냈다.


이 관계를 잘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했다. 왜냐면 내년에도 후년에도 또 이런 시간을 보내야만 하니까. 후암동 이층 집을 생각하면 오래도록 뜨끈한 바닥과 웃음의 잔상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음에는 또 어느 동네에서 우정의 일주일을 보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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