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시그널 말고 우정시그널
친구들과 후암동의 예쁜 집을 빌려 7박 8일을 함께 보냈다. 이름하야 우정 시그널 하우스! 연애 프로그램 <하트 시그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프로그램과의 공통점은 딱 하나, 입주자들은 한 집에서 같이 살되 출근이든 외출이든 편하게 하고 집으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함께 여행을 가자니 일정을 맞추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그렇지만 같이 모여 노는 걸 포기할 수 없었던 우리는, 그렇게 그냥 집을 하나 빌리게 되었다. 남산 타워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동네였다. 각자의 직장 위치와 교통 등을 고려해 위치를 선정했다. 회식이 있어도, 운동 강습이 있어도, 갑자기 원래 살던 집에 다녀오고 싶어도 상관없다. 모든 게 끝나고 우정의 집으로 복귀하면 된다.
사실 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 한참 전부터 브런치 글 한 편쯤은 맡겨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일주일이 모두 끝난 뒤에도 딱히 떠오르는 글감은 없었다. 함께 살며 친구들의 몰랐던 면모를 알게 되었다든가 유의미한 대화를 나눴다거나 한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한 건 그저 끝없는 보드게임과 실없는 농담뿐이었다. 심지어는 술도 얼마 안 마셨다. 그러나 매일이 평온한 나날이라 그 편안함의 장에서 푹 자고 목 아프게 웃었다.
'여행은 살아보는 것'이라는 에어비앤비의 유명한 카피 그대로의 시간이었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동네 식당에서 김치돈가스를 먹고, 만원으로 한 줄짜리 로또 10장을 사서 그걸 걸고 마치 20억의 판돈을 두고 벌이는 게임인양 치열한 보드게임을 하고, 책을 몇 장 들추기도 전에 낮잠에 빠졌다가 찌개 끓이는 냄새에 잠을 깨고, 혼자서는 못 보던 공포영화를 보고, 늘어져라 다 같이 늦잠을 자고. 30대의 파자마 파티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유치하고 소박한, 그러나 왠지 십 년 후에도 모이기만 하면 이러고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 일주일을 보냈다.
이 관계를 잘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했다. 왜냐면 내년에도 후년에도 또 이런 시간을 보내야만 하니까. 후암동 이층 집을 생각하면 오래도록 뜨끈한 바닥과 웃음의 잔상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음에는 또 어느 동네에서 우정의 일주일을 보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