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언제나 항상성을 추구하고
요즘 입맛이 너무너무 좋다. 거의 매일 '계시'를 받는다. 불현듯 아주 구체적으로 먹고 싶은 게 떠오르는 식이다. 롯데리아 불고기버거에 치즈스틱 추가! 지코바 순살양념치킨 순한 맛!! 양배추 많이 넣은 카레!!! 계시는 내가 그 음식을 먹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설 연휴라 비싸서 못 먹은 샤인머스켓의 음성이 며칠째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대신 비슷하게 상큼한 키위를 사다 먹었는데도, 샤인머스켓은 샤인머스켓인 모양이다. 오늘은 이모네 가서 소고기를 배 터져라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뜬금없이 누드 빼빼로의 계시를 받았다. 결국 한 통을 다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조금 후회했다. 왜 이렇게 미련하게 먹어버린 거람.
사실 지난 몇 달간 입맛이 없었다. 일이 바빴다. 언제 갑자기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모를 때는, 어떤 상황이 와도 일할 수 있게 몸을 바짝 긴장시키는 편이 좋았다. 그러기엔 아무래도 적당히 허기진 상태여야 했다. 배가 부르면 졸리고 왠지 흐물흐물 늘어지니까. 정신없이 바쁠 때면 뭔가를 먹어야 하는 행위가 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동료들이 다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자고 할 때도 별 의욕이 없어 몇 번을 거절하곤 했다. 모니터 앞에서 대충 샌드위치나 김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촬영차 장거리 이동을 할 때는 갑자기 배탈이라도 날까 더더욱 안 먹었고, 밤에는 푹 자고 다음 날 열심히 일 해야 하니까 최대한 안 먹었다. 돌아보면 제법 건강한 듯 불건강한, 의도치 않은 단식 생활을 한 셈이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며, 내가 드디어 바라던 대로 소식을 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싶어 잠시 설렜다. 그러나 집 나갔던 입맛이 다시 돌아온 건 아주 정확히, 바쁜 것들이 끝나고 예측가능한 나날이 시작되고나서부터였다.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몸의 능력은 이토록 놀라운 것이었다. 몇 년을 유지하던 몸무게에서 4kg쯤 빠진 채로 몇 달을 그대로이길래, 이것이 나의 새로운 기본 몸무게구나! 하며 기뻐했었는데, 여유가 생기자마자 놀랍도록 입맛이 돌아오고 빠졌던 몸무게가 빠르고 정확하게 원상복구 되고 있다. 몇 달을 묵혀둔 보상심리가 뒤늦게 발동하듯, 그동안 거절했던 무수한 식사 제안과 먹지 못한 마지막 한 입이 이제야 생각난 듯 신명 나게 먹고 있다.
날렵한 턱선이 생겼던 건 좋았는데, 그렇다고 항상 전투태세를 갖추느라 입맛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기도 하다. 적당한 입맛과 적당한 평온을 유지한 채로 딱 좋은 건강한 숫자를 발견할 수는 없는 걸까? 몸 안에서 뇌랑 위랑 기타 관계 부처들이 알아서 합의 보고 알려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