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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Feb 26. 2024

이게 되겠어? 금지

<닭강정> 예고를 보며

좋은 작품, 잘 될 것 같은 작품을 가려내는 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아직은. 절대적인 근거란 있을 수 없고 감이나 느낌에 많은 부분을 의지해 판단해야 한다는 두려움은 늘 있지만, 그래도 매 순간 결국 믿을 구석은 내 속에 피어나는 작은 확신들이었다. 타율은 나쁘지 않았고 그 경험이 쌓이니 나는 더더욱 의기양양해져 갔다.


그러나 가끔 내 그 의기양양함을 정통으로 배신하는 작품들이 나온다. 원작이나 대본만 보고 ‘이게 되겠어?’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큰 사랑을 받기도 하고, ‘이건 된다!’ 하던 것들이 조용히 망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잠시 또 겸손해진다.


넷플릭스 공개 예정작 <닭강정> 트레일러를 보며 또 한 차례 공손히 손을 모았다. 몇 년 전 언젠가 원작 웹툰의 로그라인을 검토해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닭강정이 되어버린 딸이라니. 웹툰으로는 코믹하게 짧게 보기는 재미있을지 몰라도 드라마로는? 택도 없지. 귀여운 강아지도 아니고, 정 반대로 흉측한 벌레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탐을 낼만한 귀중한 무언가도 아니고, 닭강정이라니? 닭강정은… 너무 닭강정이지 않나? 그 사건이 주인공에게 줄 수 있는 감정이 황당함 말고 있나? 그렇게 터무니없는 상황에 사람들이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을까? 실패한 코미디 영화처럼 결국은 팔짱을 끼고 보게 되지 않을까? 그걸 대체 몇 부작으로 만들 수 있겠냐고! 다양한 이유로 그 작품은 내 마음속에서 빠르게 탈락했고 그렇게 이내 기억에서 지워졌다.


그러다 그 작품의 판권이 팔렸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때도 과연 실제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최근 통통 튀는 예고편이 나왔다. 내가 무시했던 그 황당함이라는 감정을 전면에 내세워 끌고 가는 작품인 것 같아 보였다. 해당 장르에 확실한 강점이 있는 감독과 배우가 잘 맞는 옷을 입은 듯했다. 자존심 상하지만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겼다. ‘chicken nugget’이라는 영제까지도 너무 킹받고 궁금하다. 정말로 재미있을지 아니면 그냥 터무니없는 작품으로 남을지 몰라도 아마 나는 그 작품이 공개되면 재빨리 보게 될 것이다.


어차피 절대적인 건 없다는 걸 다시 배운다. 어떤 조합, 어떤 톤으로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끝까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게 되겠어?’ 하는 사람보다는 이왕이면 남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작은 잠재성을 찾고 또 빛내는 사람이 좀 더 멋진 것 같다. 몇 번이고 실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왕이면 멋진 쪽의 길을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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