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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Apr 01. 2024

사진 정리 언제 하지?

다들 휴대폰 속 사진 정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자주 궁금하다. 주위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보통은 "사진정리? 안 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드물게는 사진을 좀 더 찾기 좋게 정렬해 주는 구글포토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쓴다고 했다. 블로그를 시작한 친구들도 생겼다.


사진첩 속 아무렇게나 끝도 없이 쌓여있는 사진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것들이 끝마치지 못한 숙제처럼 느껴진다. 두세 번씩 찍힌 음식 사진, 의미 없는 캡처, 같은 장소 같은 구도로 찍은 수십 장의 인물 사진들. 그중 남겨야 할 것과 남길 필요가 없는 것들을 분류하는 시간을 가져야 비로소 그 시기가 좀 정리되는 것 같다. 


그래서 보통은 휴가 때 몰아서 지난 작품 사진 정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러면 또 휴가 사진이 남는다. 그건 언제 정리를 해야 하지? 암튼 그래서 대체로는 사진 정리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찍는 속도는 늘 정리하는 속도보다 빠르다. 사진 더미를 한숨 쉬며 바라보다가도 여전히 그날 먹은 점심 같은 걸 관성적으로 찍는다. 나중에 보면 누구랑 먹었는지,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기도 하지만, 지우기는 왠지 좀 그렇다.


내게 가장 확실한 정리는,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거다. 적당히 남들에게도 보여줄 만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고 골라 올리고 나면 지난 그 시간들이 조금은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번 휴가 때는 전 작품 사진 정리에도 실패했다. 여전히 두 개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업무 문서 캡처나 미완성의 포스터 시안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고, 지친 얼굴로 찍은 엘리베이터 셀카 따위도 의미 없이 여러 장 남아 있다. 애써 다시 들여다보며 정리하지 않으면 영원히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사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거슬린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 가장 좋은 것 귀한 것만 고르고 추려 남기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사람도 사물도 추억도. 그런 의미에서 사진첩 정리는 그 과정의 정수 같다. 나중에 보면 삶 그 자체처럼 느껴질, 오래 남기고 싶은 기억 고르기. 어릴 적 엄마가 편집해 준 실물의 성장 앨범 속 추억들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의 기쁨은 그 앨범들 속에 다 있다. 거기 없는 건 그냥 몰라도 괜찮을 정도로. 요즘도 누가 그런 걸 대신해줬으면 좋겠다. 


한 해를 돌아보는 사진 딱 열 장만 고르기, 같은 걸 하고 싶은데, 그래서 그 밖의 것들은 기억 너머로 잊혀도 크게 아쉬울 것 없었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시스템은 없고 옵션은 매일 빠르게 는다. 그런 의미에서는 어째 시간이 갈수록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것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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