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련 Jul 01. 2024

꿈이라서 다행이다

요 몇 주 깊은 잠을 못 자는지 꿈을 많이 꾼다. 자주, 꿈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에서 깬다. 기분 좋은 꿈보다는 그렇지 않은 꿈이 많아서인 것 같다. 나쁜 꿈속의 나는 다양한 장르로 인생 밑바닥까지 간다. 얼마 전에는 얼떨결에 범죄자가 되어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괴로워하다 잠에서 깼다.


창피를 당하거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는 건 부지기수다. 어제는 현장에서 배우들과 리허설을 하는 꿈을 꿨는데, 내 대본 속에서만 자꾸 새로운 단역들이 추가되었다. 캐스팅한 적도 없는 배역이 대본에 나오는데, 나만 대본을 잘 못 본 건지 내가 뭔가 빼먹었다는 듯 다들 이 배우는 언제 오냐고 나만 쳐다보고, 촬영 시간은 얼마 안 남았고, 혼란스러웠지만 애써 태연한 척을 하다 잠에서 깼다. 악몽이라 거창하게 이름 붙이기에는 다소 작은 실수이지만 잠에서 깨어난 순간 꿈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현장에서 바보가 될 수는 없다. 꽤나 디테일한 꿈이어서 잠에서 깨고 나선 한참 동안 멍했다.


사람은 왜 악몽을 꾸는 걸까? 그저 아무 의미 없을 수도 있다. 무의식을 떠돌던 여러 가지 상상의 조각들이 맥락 없이 합쳐진 결과라고 보는 게 가장 유력하겠다. 하지만 어제 오랜만에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다시 본 나에겐, 어쩌면 다른 평행 우주에 그런 길을 간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에 펼쳐질 수도 있었던 크고 작은 불행을 꿈을 통해 보여줄 테니 까불지 말라고.


지금의 삶은 여러 갈래 길 중 하나이고, 게임에서 죽으면 다시 과거 저장된 어느 지점으로 가듯, 꿈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금 여기에 깨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는 정신 바짝 차리고 같은 실수 하지 말고 똑바로 살아 보겠다. 나쁜 꿈을 꾼 아침에는 그런 생각을 하며 힘을 내야지.

작가의 이전글 신뢰 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