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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Sep 02. 2024

두려운 건 미지의 존재

벌레를 좀 과하게 무서워한다. 이 글을 쓰느라 '벌레'라는 단어를 많이 입력했다가, 알고리즘이 내 관심사를 착각해서 벌레 관련 콘텐츠를 보여줄까봐 걱정되기까지 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만약 내가 혼자 집에 있는데 갑자기 바퀴벌레가 나온다면 집을 그에게 넘기고 가출하겠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하는데, 사실은 굉장한 진담이다. 몸집으로 치자면 벌레와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내가 유난을 떨고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서 좀 창피하기도 하지만,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뇌가 정지되는 걸 어쩌란 말이냐.


최근 집에서 천장을 날아다니는 벌레 한 마리를 마주했다. 잘은 모르지만 대충 보기엔 무척 큰 개미(?) 같았다. 날파리나 작은 벌레에는 그래도 좀 익숙해졌지만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벌레가 날아다니는 건 언제 봐도 면역이 생기지 않았다. 잡거나 내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데다가 마침 약속도 있어서 일단 방문을 다 닫은 후 그를 거실에 남겨두고 집을 나왔다. 나도 모르는 어느 틈을 잘 찾아 알아서 잘 나가 주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니면 부엌에 있는 벌레 퇴치기에 잡아먹히기를 빌었다, 제발.


그리고 외출에서 돌아오니 그는 정말로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창가 한 구석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아마 벌레도 나가고 싶어서 창 근처를 맴돌다가 죽었겠지. 그는 죄가 없었다. 나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벌레를 마주할 때마다 항상 하는 생각은 정말로 그와 협상을 하고 싶다는 점이다. 나에게 큰 피해가 없는 한 원하는 걸 주겠다. 상대가 모기라면, 내 피를 좀 나눠 줄 의향도 있다. (단 바이러스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거라.) 우리 집에 잘못 들어온 날아다니는 왕개미라면, 공손하게 나가는 문을 열여주고 덤으로 과자도 좀 줄 수 있다. 예예 살펴가세요. 죽은 벌레도 잘 못 치워서 매번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런 쓸데없는 인간 중심적인 상상만 한다. 그러나 현실 속 그들은 늘 낯선 궤적으로 웅웅 거리고 뭘 원하는지 여기서 왜 이러는지는 끝내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낯설고 모르는 건 일단 좀 두렵다. 사실은 벌레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때때로, 크게 확장해 보면 다소 비슷할 경계심 같은 게 들곤 한다.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처음엔 도대체가 알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엔 상대의 삶과 감정과 바람을 들을 수는 있다. 어떤 방면으로든 외면하지 말고 바라봐야지. 진짜를 들으려고 애쓰다 보면 그래도 낯선 어둠 속에서 서로 기꺼이 들여다보고 싶은 무언가가 보인다. 그것이 우리를 둘러싼 웅웅 거리는 무수한 존재들 속에서 그래도 서로가 귀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겠지. 그 쉬운 걸 여전히 자주 잊는다.


아무튼 알고리즘아, 나 그래도 벌레 싫어해. 제발 아무것도 보여주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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