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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몽드 Jul 12. 2023

08. 악인가 선인가

인간이란,


동물은, 선하다.

인간은 악한가 선한가.


30년을 살았다. 만으로 28년을 산 셈인데, 최근 최악의 인간을 만났다. 최근이랄 것도 없이 3년 전 전회사를 입사하면서부터다. 그는 대표였고, 20명 남짓한 직원이 있는 중소기업의 대표였으니 매일 한 번은 마주쳐 인사를 나눴다. 대표이기에 그에 대해서는 '바쁘다, 부지런하다, 의사결정이 빠르다' 등의 표면적인 이미지만 가득했다. 그의 인간성을 볼 기회는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원치 않게도 그의 인간성을 보았다.


작년 말부터 회사 경영 악화로 6개월 치 임금이 밀렸다. 주변에서는 '미련하다' 말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 당시 회사 주력 프로젝트를 나 포함 둘이서 기획하여 론칭까지 한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몸을 갈아'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 때문인지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이 깊어 쉽사리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다. 다행히도 당시 모아둔 돈이 있어 생활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울적해져만 가는 팀 분위기, 0에 수렴하는 통장잔고까지 정신적 스트레스는 잔고에 반비례해 차곡차곡 누적됐다.


그렇게 장장 6개월을 참고, 올해 5월 31일 자로 퇴사했다. 대표는 "좀만 기다려, 줄게"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남겼지만 퇴사 후 한 달이 넘어도 내 통장 '입금 내역'은 공란이었다. 그렇게 노동청에 임금 및 퇴직금 체불 진정을 넣었고 그날은 대표와 노동청 담당관 그리고 내가 삼자대면하는 날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대표의 대리인이 참석했고, 대리인을 통해 대표와 통화를 했다. 그때 대표가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너는 대체 뭐가 문제길래 신고를 하냐?"

"내가 네 삼촌이었어도 신고했냐?"

"내가 앞으로 벌 돈에 비하면 네 돈은 진짜 적은 돈이다"

"7월 첫째 주까지 모두 정리해 주겠다"


이게 말로만 듣던 가스라이팅인가. 울컥 눈물이 났지만 울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말에 대답은 불필요하다 생각했고, 말한 날에 입금하면 진정 취하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끝냈다. 역시나 7월 첫째 주에 돈이 입금되지 않았다.


기억은 미화되는 거라지만 '살면서 이렇게까지 나쁜 인간이 내 곁에 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 기준 나쁜 사람이라 함은 남의 것을 탐하는 사람,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등이다. 하지만 대표는 나쁜 사람이 아닌 악한 사람에 가까웠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 그것도 모질라 남의 권리를 침탈하는 사람. 그렇게 성악설에 마음이 홀려 인간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있을 때였다.


트위터에서 한 썸네일이 눈에 띄었다. 비를 맞고 중계를 하고 있는 기자, 그의 곁에 다가서는 눈에 띄는 형광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남성. 속으로 스쳐간 생각. '왜 방해하는 거야? 역시 인간은 악이다' 하지만 악한 건 나의 마음이었다. 그 남성은 비를 맞는 기자가 자식 같아서, 감기 걸릴까 안쓰러워서 우산을 씌워줬다 했다. 영상을 재생해 보니 그는 방해꾼이 되지 않기 위해 화면을 보지 않고 측면으로 서서 기자의 곁을 지켰다.


출처 : 채널 A '뉴스 A'

사람에게 마음을 다친 터라 해당 영상을 보고 또 봤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래... 인간은 선이야...' 마음이 왔다 갔다 혼란스러웠다. 대표는 본인이 대표가 되기 전에는 규칙과 규율에 따라 선하게 살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이 법이자 통치자가 되는 순간 본성인 '악'이 드러낸 것은 아닐까. 형광 티셔츠 아저씨는 자연스레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동해 우산을 선뜻 씌워준 걸까. 그렇게 맹자를 따라야 하나, 순자를 따라야 하나에 대해 아직까지 홀로 고군분투 중이다.


최근 악한 인간이 또 한 명 나타났는데. 그건 나중에 다루겠다.


그나저나 대표님.

이제 그만 돈 주세요.

노동청 출석, 민형사 고소, 간이대지급금 이자....


지겹지도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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