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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몽드 Jul 10. 2023

07. 후회하고 있어요

인정, 그리고 나와의 싸움

남동생과의 티타임(feat. 대청호)


2년 간 심리 코칭을 받은 적이 있다.


2021년 12월 칼바람이 부는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와 자장면을 먹다가 탕수육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당시엔 살면서 겪어 본 적 없는 답답함과 우울함이 나를 조종하고 있었다. 심리적인 불안함은 라이프사이클을 망쳤다. 퇴근 후에 집에 돌아가면 자극적인 음식과 술로 밤을 보냈다. 다음 날이 되면 부대끼는 속을 안고 출근하여 점심을 거르고 다시 집에서 혼술을 하는 사이클을 반복했다. 그러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서, 눈물을 터뜨린 것이다. 


친구는 서울 부암동에 위치한 <러브티처>를 소개했다. 2021년 12월 30일, 사전 상담을 받고 2022년 1월 13일부터 정식 상담에 돌입했다. 당시 나의 문제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원인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있었고, 핵심 원인을 찾기까지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중 현시점에서 떠오르는 에피소드 한 가지를 말하려 한다.


2017년쯤인가. 방송사 PD를 준비한 적이 있다. 한국의 방송사 PD라 하면 공채 시험을 뚫어야 한다. 소위 '언론고시'라 하는데. 자기소개서-필기시험(작문)-면접 1-면접 2-면접 3...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기에 방송사에 따라 인적성 시험이 추가되기도 한다. 지금의 '언론고시' 동향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엔 상반기, 하반기 공채 통틀어 한 방송사에서 약 1-5명 정도를 채용했다. 하지만 언론고시생은 넘치고 넘쳤다. 나도 그중 하나였고.


3년 간 약 20개의 스터디에 참여했다. 대부분 '작문' 스터디였는데, 미리 주제를 선정하여 써온 글을 스터디원들과 함께 읽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방식이었다. 피드백은 갖가지였다. 글이란 게 취향을 탈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누군가는 호평을, 누군가는 혹평을 늘어놓았다. 수 백편의 글을 쓰고 수 천 개의 피드백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단 한 번도 필기시험(작문)에 통과한 적이 없다. 그러다 2020년 10월 경, PD 되기를 '포기'했다. 비록 꿈꿨던 PD라는 직업은 못 가졌지만 그때의 피드백과 글쓰기 내공이 쌓여 지금 작가라는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리 코칭을 받던 어느 날, 나는 선생님께 울면서 말했다.


"그때가 너무 후회돼요..."


심리 코칭은 지금의 나에게 문제가 되는, 아픔을 남긴 시간을 회상하면서 진행되는데, 그날은 PD 준비에 열성이었던 시간이 떠올랐고 후회된다는 말을 한 것이다. 나의 글을 피드백받기 전, 스터디원들이 내 글을 읽을 동안의 그 공백이 고통스러웠고, 피드백을 들을 때는 3배 더 고통스러웠다. 또 햇살 좋은 날에 사람들과 밖에서 박장대소하며 웃지 못하고 창문도 없는 스터디룸에서 풀 한 조각 보지도 못한 채 하루에 몇 시간을 틀어박혀 있던 것에 후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미래에 도움이 된다,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3년 동안 '현재'를 즐기지 못한 것,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를 산 것에 후회하고 있었다. PD를 위한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평가와 피드백을 받는데 트라우마가 생겼고, 이는 심리적으로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껏 나는 나의 선택에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자존심 섞인 믿음으로 나를 억압하고 있었다.


고해성사 같은 나의 말이 끝난 후 선생님이 말했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고 인정하는 건 힘든 일이에요"


그렇다. 나의 인정은 3년 간의 시간을 부정하는 일이고, 당시의 시간을 어둡게 만든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인정으로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안보다는 밖에서 에너지를 쏟고 인사이트를 얻어야 하는 사람이고, 무거운 분위기에서의 피드백은 나를 작게 만든다, 더 나아가 나를 자책하기까지에 이른다.


이후로 나는 '빠른 인정'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방금 내가 한 말은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한 거야. 사과하자', '그때, 그 경험은 나에게 불필요했어. 다시는 겪지 말자.', '그때 A가 아닌 B를 선택해야 했어' 등 자책이 아닌 미래를 위한 반성을 한다. 최근엔 이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새삼 느끼고 있다. 추진력이 있지만 약간은 게으르고. 외향적이지만 에너지가 빨리 소진되는 사람이 나는구나.


21살 남동생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새롭게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적는 글이다.


그나저나 나이 30에 아직 나를 모른다니.


참, 만 나이 도입됐으니 28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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