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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몽드 Aug 06. 2022

01. 도둑질

온기를 훔치는 자

이름이 궁금한 아이


난 도둑질을 한 적이 없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딱 한 번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것이다. 그날도 피아노 학원에 가기 위해 거실에 가방을 던져두고 집을 나왔다. 하지만 발걸음은 학원이 아닌 상가 1층에 있는 문방구로 향했다. 딱히 살건 없었다. 학원이 가기 싫었던 모양이다. 전곡을 치지도 않고 선생님이 그려준 동그라미에 거짓 사선을 긋기는 싫었던 것이다.


문방구 입구는 두 개였다. 인도와 연결된 문은 A, 상가 계단과 연결된 문은 B라고 하겠다. 난 그중 B를 좋아했는데, 첫 번째 이유는 불량식품 가판대와 가까웠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A문이 카운터와 마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인아저씨와 마주치기 싫었다.


인사성이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다만 아저씨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무섭게 생겼었다. 내 기억으론 그는 나훈아를 빼닮았다. 검게 탄 얼굴과 하얗게 샌 머리들.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표정과 한 손에 든 담배. 초등학생에겐 피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B로 들어갔다. 손님은 없었고 담배를 태우시는지 주인아저씨의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TV 소리만 들렸다. 마음이 편안했다. 목적 없이 들렀지만 알아주는 군것질쟁이였기에 새로운 불량식품은 없나 살폈다. 아쉽게도 신상은 없었다.


목적 없이 방황했다. 불량식품을 들었다 놨다 했고 가끔 아저씨가 자리에 있는지 살펴봤다. 어느새 아저씨는 등을 보인 채 TV에 푹 빠져있었다. 안심하고 또다시 앉았다 섰다, 불량식품을 쥐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학원에 가기가 싫었을까. 의미 없는 행동을 나열했다.


체감 상 5분이 지났을까. 왜인지 학원에 가야겠다 싶어 문방구를 나왔다. 그런데, 문을 나서자 주먹을 살포시 쥔 손에 딱딱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내가 돈을 쥐고 있었던가? 펼쳐보니 손엔 100원짜리 불량식품 초콜릿이 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피아노 학원으로 내달렸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도둑질이다. 그 후로는 문방구 앞을 지나치지도 못했다. 혹시나 엄마아빠가 알게 되면 어쩌지, 나훈아 아저씨가 나를 가게 앞에 두고 벌을 세우면 어쩌지, 경찰서에 잡혀가 학교에 도둑이라고 소문이 나면 어떡하지. 10살짜리 아이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그 뒤로 절대 내 것이 아닌 건 탐내지 않겠다 다짐했다. 정당하게 대가를 치르는 것만이 내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또다시 도둑질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최근의 일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밤. 집 안의 큰 창문을 열고 책을 읽고 있었다. 적당한 온도의 바람, 살포시 흔들리는 머리칼, 가벼운 백색소음. 그때, 맞은편 빌라에서 한 아이의 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왔다.


“아빠~~ 귀에 물들어 간다고오!”


4살쯤 된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아빠는 미안하다며 허허 웃었다. 그리고는 물소리만 졸졸 들렸다. 아이를 빨리 씻겨야겠다는 아빠의 다짐을 알 수 있는 소리였다. 그 후로도 아이는 눈이 따갑다, 물이 뜨겁다며 갖가지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미안하다며 허허 웃었다. 독서에 집중할 수 없었다.


소란스러워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행복을 빼앗고 싶었다. 나에겐 없는 또는 멀리 있는.


그때까지 자신을 이방인이라 생각했다. 내 의지로 상경했고, 사투리를 버리진 못했지만 나름 서울 토박이에게 맛집을 추천해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1년 만에 간 고향에서, 서울에서는 느끼지 못한 안정감을 느꼈을 때. ‘난 서울에 ‘사는’ 것이 아닌, ‘생존’하고 있구나'라는 차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겹도록 혼자구나.


이방인은 항상 긴장 상태다. 어떻게든 그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2년에 한 번은 이사하고, 가족들의 재잘거림이 사라진 적막함 속에 살고, 연고 하나 없는 곳에서 마음 붙일 사람 하나 찾기 위해 이 친구 저 친구를 만나고, 그러다 보면 마음엔 외로움만 남는다.


결국 본인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으로 만든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방인이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에서 천운의 운을 타고나 생명을 가지게 되었고, 길어야 100년, 지구에 잠깐 살다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모두 공허함이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난 자신을 비련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급기야 이웃의 행복을 도둑질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또다시 10살 때의 끔찍한 실수를 반복하고자 한 건 결국 내 마음의 문제 아닐까. 인생을 너무 팍팍하게 살아온 건 아닐까. 산책길에서 본 꽃에 시선 한번 주지 못할 만큼 서두르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직 행복을 찾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닐까.


내가 이방인 같다 느껴질 때, 외로울 때면 생각을 바꿔봐야겠다.


“어? 뭐지 나 주인공인가?”


결국은 고난을 이겨내고 입이 찢어지게 웃는 주인공처럼, 그렇게 또 잠깐의 고독함을 이겨내고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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