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집에 대하여

시골집 중의 시골집

by 고지

내 기억의 첫 집은 지붕만 현대식인 초가집이었다.

거실이 없는 대신 바깥공기를 바로 마주할 수 있는 대청마루가 있었는데 이 마루를 통과해야 안방이나 작은 방에서 부엌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루에서 신을 신고 조금 옆으로 가면 들어갈 수 있는 사랑채가 있었다. 이곳이 어린 나와 동생들, 엄마, 아빠가 자는 공간이었다. 솥이 있는 아궁이방도 있었는데 솥 밑에 불을 지피면 작은방과 안방이 따뜻해졌고, 사랑방은 따로 연탄을 때워야 했다. 안방 문은 사극 드라마에나 나오는 창호지 문. 몇 번 구멍을 냈다가 증조할머니였는지, 할머니였는지 아무튼 호되게 혼이 나고 나서 그 후로 건드리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소가 지내는 작은 외양간이 사랑방 건너편에 있었고, 외양간 옆에는 장독대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화장실은 외양간보다 더 떨어진 곳, 큰 마당을 거쳐서 가야 있었는데 물 내리는 기능 따위 없는 푸세식이었다. 1톤 트럭 하나 주차하면 그득하게 차는 큰 마당 가장자리엔 밤나무와 살구나무, 앵두나무, 동백꽃이 있었고, 큰 밤나무 밑에는 판자로 대충 만든 개집과 지박령처럼 그곳에 늘 묶여있는 시고르자브종 개가 있었다. 나의 시골집. 그야말로 옛 청취가 물씬 나는 시골집 중의 시골집이었다.

내가 여섯 살이 됐을 때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시골을 떠나 읍내로 이사를 했었다. 4층까지만 있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작은 빌라였지만 처음으로 진짜 현대식 집을 살게 된 것이었다. 보일러도 처음이었고, 물을 내리면 응가와 바이바이할 수 있는 변기가 있는 화장실도 처음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조금만 옆으로 가거나 계단으로 올라가면 다른 식구들이 줄지어 사는 신기한 구조의 집이었다. 게다가 같은 유치원에 이어 초등학교까지 함께 다니던 친구들이 그 빌라에 꽤 살고 있었더랬다. 방과 후면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놀다 다 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재미에 그 집을 무척 좋아했었다.

하지만 읍내에서의 달콤했던 생활은 내가 열 살이 되던 해에 시골로 돌아가며 끝났다. 처음엔 우리 집이었다가 한동안 할머니네 집이었던 그곳으로 우리 가족은 다시 간 것이다. 그 사이 시골집은 구조적으로 꽤 큰 변화를 겪었는데, 워낙 낡고 오래된 집이었기에 대대적인 보수와 개조를 감행했었다. 당시 정정하시던 할아버지와 아빠가 함께 직접 개조하셨는데, 아궁이가 사라진 자리엔 보일러가 들어갔고 아궁이방은 벽을 세우고 문을 달아 욕실로 탈바꿈했다. 대청마루는 진짜 거실이 되었다. 사랑채로 가는 길목까지 하나의 실내로 만들기 위해 마루 바깥부터 벽을 세우고 창문을 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사랑채도 거실에서 맨발로 갈 수 있는 곳, 엄연히 한 집안의 방이 되었다. 이리하여 집이 한층 넓어졌다. 마루에 있던 나무 기둥과 장독대, 흙마당, 외양간, 푸세식 화장실 등 여전한 것들이 많았지만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집이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개선된 시골집. 그러나 빌라에서 살던 때보다 편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조금만 날씨가 따듯해지면 사방팔방 날아다니는 파리와 모기들 때문에 쾨쾨한 모기향과 천장에 대롱대롱 달린 파리끈끈이는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항상 기본값이었다. 종종 천장 위로 ‘두두두두’ 소리가 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천장을 주먹으로 툭툭 쳐줘야 했다. 다름 아닌 쥐를 쫓기 위해. 또 부엌 싱크대 구석 밑에 놓은 쥐끈끈이엔 가끔 내 주먹보다 큰 쥐가 붙곤 했는데, 도대체 사방에 널린 뱀들은 이런 좋은 양식(!)을 안 잡아먹고 뭐 먹고사나... 생각하곤 했었다.

무엇보다 시골집의 난제 중 가장 난제는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편하고 깔끔한 현대식 좌변기의 맛(?)을 봐버린 나에겐 푸세식 화장실은 매번 용기를 요구하는 도전 과제였다. 특히 밤마다 신호가 오면 난리였다. 가로등은 신장로 쪽에만 조금 있었던 데다가 시골집은 거기서도 꽤 거리가 있었기에 해가 저물면 사방이 금방 칠흑 같은 어둠에 깔리곤 했다. 그런 깊은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화장실의 전구 불빛이 하필 매우 진한 빨간색이었다. 적외선 마사지기에서 나오는 그 새~빨간색 말이다! 그런 빨간색 전구를 왜 단 건지, 다른 색은 정녕 없었던 것인지... 지금 와서 생각해 봐야 하등 쓸모없지만(부모님께 언젠가 꼭 물어봐야겠다) 여하간 이런 화장실이었기에 밤이면 꼭 동생을 데리고 다녔고 반대로 동생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땐 내가 함께 가주는 식이었다. 동생들과 나의 유대감이 강해진 것은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렇듯 시골집의 불편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형제들과 으쌰으쌰 해결해 나가며 우리의 어린 시절은 자연스레 청소년기로 나아갔다.




나의 유년 시절부터 청소년기까지, 꽤 오랜 시절을 보냈던 정든 시골집은 현재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다(중간 4년 정도는 빌라에 있었지만).

땅을 파헤치고 다시 메꾸어서 지형 자체가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기존 집의 흔적은 홀연히 사라진 채 전혀 다른 모양의 벽돌집이 세워져 있다. 주변에 있던 다양한 나무들과 작은 마당 앞쪽에 펼쳐져 있던 경사진 옥수수밭도 모두 사라졌다.

그렇다. 이제 나의 시골집은 사진과 꿈에서만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시골집이 사라진 것을 20대 후반이 돼서야 동생들에게 소식을 접해 알게 됐다. 막상 소식을 들었을 땐 별생각이 없었다. ‘아 그래? 그렇구나~’ 이러고 말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게 새로운 가정이 생기고, 새로운 집이 생긴 이후 우연히 티브이 프로그램 속 노래- ‘슈퍼밴드2’에 나오는 김예지팀의 ‘House I Used to Call Home’-를 듣다가 과거의 시골집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노래를 들으면서 가슴이 점점 뭉클하더니 어느새 눈물이 또르르...

어린 나의 수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던 그 시골집. 키가 커질 때마다 연필로 그으면서 높이가 커지는 걸 뿌듯하게 감상했던 나무 기둥과 비가 후두두둑 내리는 날이면 지붕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청량한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던 여름밤, 늦가을 밤을 주우러 나갔다가 뱀을 밟을 뻔해 놀라 집으로 헐레벌떡 뛰쳐 들어왔고, 겨울이면 비료포대를 들고 집 밖으로 나와 듬뿍하게 쌓인 눈밭 위를 가로질러 썰매를 탔던...

지금의 삶이 안락하고 감사하면서도 그때의 나를 무척 그리워하곤 한다. 분명 불편했던 시골집인데도. 현재의 아파트 라이프가 편하고 익숙한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