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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짜글쟁이 Dec 27. 2023

 우리 아빠는 공돌이

   아빠의 업

 우리 아빠는 공돌이다. 공장에 다녀서 공돌이. 대구 한쪽 끝자락, 공장이 잔뜩 몰려 있는 ‘성서’라는 동네의 어느 중소기업에서 아빠는 40년을 넘게 쇠를 깎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빠는 지각하거나 결근하는 일이 없었다. 엄마의 생선구이를 매일 아침으로 드시고, 화장실에서 신문을 보신 다음, 언제나 7시 20분에 집을 나가셨다. 우리는 잠을 자다가도 아빠가 출근할 때는 모두 현관으로 나가 “안녕히 다녀오세요.”를 외쳤다. 엄마는 그것이 밖에서 고생하는 아빠에 대한 예의라고 하셨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남들보다 몇 년 늦게 학교에 입학한 아빠는 부산의 기계 공업 고등학교를 나오셨다. 졸업과 동시에 입사한 회사에서 아버지는 40년을 넘도록 근무하셨다. 아빠는 유독 승진 운이 없었고, 대학을 나오지 않은 탓인지 기능장 그 이상을 넘어설 수 없었다. 아빠는 평소에 말씀이 거의 없으시다. 어떤 불평불만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 그런 우리 아빠가 딱 한 번 술을 마시고 목청을 드높인 적이 있다.    

  

“공돌이 하지 마라.”      


 공돌이. 그때의 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고, 공돌이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자신은 어떻게 해도 공돌이일 뿐이라며 가슴을 치는 아빠의 말에는 무언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있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아빠의 그 한 마디가 자꾸만 메아리를 치며, 가슴을 후벼 파곤 한다.      


 진흙에 빠진 듯 바닥으로만 내리치던 올봄,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내게 아빠가 말했다.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둬라. 몸 상하면 안 돼.” 이겨내라, 그거 아니면 뭐 할래, 참고 견뎌라 등.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빠는 학업을 그만두라고 하셨다. 그만둬도 된다는 아빠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가슴이 턱 막혔다. 견디고 이겨내라는 응원보다도 그만두어도 된다는 말이 더 큰 힘이 되다니. 나는 형용할 수 없는 아빠의 마음을 받아 들고 한참을 엉엉 울었다.      


4년 전, 평생 쇠를 깎다가 퇴직하신 아빠는 생기를 잃은 사람 같았다. 엄마의 말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구셨다. 한 번은 식사 중에 “내가 돈 벌 때, 그런 말 안 했잖아.”라며 울컥하시기도 했다. 그렇게 아빠는 매일 안마 의자에 시체처럼 누워계셨다. 1년이 지나자 아빠는 사람인 사이트에서 구인 공고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빠는 옛 회사 분에게 계약직 일자리를 제안받았다. 공장의 기계를 관리 감독을 하는 일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쇠를 깎는 일을 많이 하지 않다 보니, 아빠만큼 기계를 잘 다루고 섬세하게 부품을 깎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공장으로 돌아간 아빠는 예전의 활력을 되찾으셨다.      


 세상이 평가하는 업의 기준에 허우적대던 나는 아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지 못했다. 교수 아빠를 둔 친구, 변호사 아빠를 둔 친구, 의사 아빠를 둔 친구들을 한없이 부러워했다. “우리 아빠 교수님이야.”라고 말하는 친구 앞에서는 괜스레 주눅이 들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공돌이’라는 아빠의 업을 나 역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문득 우리 아빠만큼 성실하고 기계를 고치는 데에 전문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드컵이 열 번 열리는 동안 아빠는 한 회사에서 근속하셨다. 척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찾아내어 기계를 고치고 부품을 깎는 우리 아빠, 집안 곳곳의 크고 작은 공사를 뚝딱뚝딱 완벽하게 해내는 아빠, 아빠야말로 내가 가장 존경하고 본받아야 할 전문가 아닌가. 그래, 법무부장관 딸 아니면 어떠냐 우리 아빠는 쇠 깎는 장관인 걸.


 성실한 아버지를 둔 사실이 자랑스럽다. 쇠 깎는 공돌이의 딸이 무턱대고 들어온 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쇠를 깎는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 험난한 학위 과정과 그 후에 놓인 무수한 역경을 모두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아빠는 법무부 장관도 보건 복지부 장관도 아니다. 그러나 성서 공단에선, 없어서는 안 될 쇠 깎기 장관이다.


자랑스러운 나의 뒷배,  

우리 아빠는 공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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