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세 번째 퇴사에 대한 어떤 것(1)

일을 좋아하는 것보다 하기 싫은 일이 더 싫어서


올해 세 번째 퇴사를 했다. 한 번은 아르바이트였으니 정확히 말하면 두 번째인가?


세 곳의 회사는 모두 언론사였다. 맨 처음엔 메이저 일간지의 마이너 부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두어달 뒤 작년 퇴사한 월간지의 부름을 받아 재입사했다. 그리고 들어간 지 3일 정도만에 이전보다 더 별로라는 것을 깨닫고 이직을 준비해 세 번째 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오늘 퇴사했다.


이번 퇴사는 저번(두번째) 퇴사와 아주 다른 느낌이다. 지난 퇴사의 가장 큰 이유가 회사였다면(나중에 별도로 써봐야지), 이번 퇴사의 가장 큰 이유는 나였다.


들고 다니기 아주 무거웠던 노트북도 안녕


작년 퇴사의 여파인지 내 삶에선 균형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해졌다. 기자를, 적어도 이 회사에서 계속한다면 그 균형이 깨지는 것을 넘어서 무너질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예를 들면 술자리. 나는 술을 잘 하지도 즐기는 편도 아니다. 그런데 기자일을 하려면, 특히 ‘잘’ 하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게 내가 겪은 현실이었다. 홍보팀과의 관계든 취재원과의 관계든 기본적으로 기자라는 직업은 인간관계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고, 수많은 기자들 사이에서 정보를 더 잘 얻으려면 취재원과 친해져야 하고, 친해지기 위해선 술자리가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라는 거다. 이런 구조가 잘못됐다 아니다를 따지고 싶진 않다. 그냥 나랑 무지하게 안 맞는 업무 형태라는 거다.


입사 초기(퇴사한 지금보다 더 초기) 부서 회식 비슷한 것이 있었다. 굳이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아서 안 마시겠다고 하다가 사람들의 표정이 ‘싸해서’ 조금 받아 마셨다. 자리가 파하고 지하철역까지 선배와 걸어갔다. 개찰구에서 헤어지기 전 선배는 제법 긴 시간 내게 조언을 해줬다. 중간중간 ‘막내라면 어쩌구’ 같은 꼰대같은 말들이 섞여 있었지만, 결국 술자리와 관련한 이야기의 핵심은 ‘이 바닥에서 일하려면, 잘 하려면, 살아 남으려면 싫어도 술을 좀 마시면서 하하호호 할 줄 알아야 한다’라는 거였다. 점심약속이나 티타임을 잡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고 했지만, 결국 술자리는 해야 한다는 거. 강권하는 분위기가 없다는 회사 회식에서마저도 막상 진짜 술을 안마시면 ‘분위기에 못 어울린다’고 눈치주는 상황인데 취재원과의 술자리에서 ‘술은 안 마셔도 자리는 지켜라?’ 그게 가능하기는 한 말인가 싶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바닥의 이런 분위기(혹은 전통?)가 정상인지 아닌지 평가하고 싶진 않다. 내게 조언해준 선배가 싫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회사에서 가장 많은 것들을 가르쳐준 사람이라 아주 고마운 마음이다. 나는 그저 이런 분위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일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일을 덜 하겠다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 하는 회식이 싫다는 것도 아니다. 업무에 술자리가 자연스럽게 끼어 있는 게 나와 맞지 않다고 내내 생각했다. 내게 조언해준 선배는 잦은 술자리로 인해 지병이 생겼다고 했다. 병이 생길 정도는 돼야 업계에서 인정받을 기사를 쓸 수 있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난 전혀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싶은 사람이지만, 선배의 기준에선 난 애초부터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거다.


이런 판단이 성급한 것일수도 있다. 티타임 위주의 만남으로도 취재원과 친해지거나 다른 방향으로 혼자서 공부를 많이 해서 아주 좋은 기사를 쓸 수도 있다. 짬 좀 차면 술자리를 덜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뎌야 할까? 최소한 이 회사에서 일하는 몇 년 동안은 견뎌야 한다. 물론 그만큼 성장할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좋아하지도, 잘 하지도 못하는 것을 몇 년씩 해내고 성장한 나는 과연 멀쩡까? 얼만큼까지 훌륭하게 성장할 지는 모르지만 업무 방면의 성장과 내가 감당할 수 없는(또한 감당하기 싫은) 술자리로 인해 받을 신체적, 정신적 부담과 스트레스, 두 가지를 맞바꿀 자신이 없다. 도저히 없다.


‘이 회사만 그런게 아니야, 어딜 가든 이런 방식으로 일해’라는 말이 참이라면 나는 이제 정말 기자를 할 마음이 없다. 건강과 집중력과 체력 등등 내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포기할 확률이 높아지는 환경에서 더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만큼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지인이 자신이 언제 퇴사하는지 가늠하는 기준을 말해준 적이 있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될 때’라고 한다. 안 좋은 방향으로 내가 내가 아니게 될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이 회사에 들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지금을 돌아봤을 때 ‘그 회사에서 나오길 잘했어’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리듬, 속도, 박자에 대한 어떤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