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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퇴사에 대한 어떤 것(2)

행사 is 돈


살짝 지난감이 있지만, 언론사들의 포럼 시즌이다.


개인적으로 포럼 열기 딱 좋은 때가 봄과 가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말, 연초는 회사가 내부적으로 바쁘니 행사에 올 수 있는 사람이 적고(예산 몰아쓰기라는 틈새시장을 노리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여름엔 여름휴가가 있는데 회사마다 휴가시즌이 조금씩 다르니 또 애매하다. 결국 남는 건 봄과 가을. 10~11월은 수확의 계절이니 가을걷이 하는 분위기로 포럼이나 세미나 등등을 열기 안성맞춤인 시기다.


그리고 퇴직 전 회사에서 행사 준비하는 것을 볼 기회가 있었다. 다른 언론사는 어떤 지 잘 모르겠다. 또한 다른 부서에서 주최한 행사여서 간접적으로 본 행사였다.


결과부터 말하면, 포럼 내내 아주 이상한 느낌이었다. 알맹이는 없고 돈으로 연결된 관계만 있었다. 좋은 예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포럼에 대해 쓰다가 스타벅스가 떠올랐다. 언젠가 누군가 스타벅스 같은 카페를 두고 커피 비즈니스가 아니라 공간 비즈니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스타벅스에 가는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동시에 공간이 주는 편의와 분위기를 누린다 뭐 이런 식의 맥락이었다.


이태원 스페인클럽에서 먹은 빠에야. 글이 너무 맛없어서 사진이라도 맛있는 걸 넣어봤다.


내가 본 행사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포럼에 온 많은 사람들은 포럼이 전하는 메세지를 듣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주최측과의 관계때문에 온 거다. 애초에 포럼을 준비하면서 부서별로, 기자별로 올만한 출입처 홍보팀을 리스트업하고, 초대장을 돌렸다. 리스트업한 사람들의 수에 비해 행사장 크기나 좌석 수는 아주 아주 단촐했다. 그나마 행사가 시작되고 10분, 20분이 지나면서 빈자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한 시간 정도 지나니까 정말 휑했다) 아예 행사 시작 전에 와서 인사만 하고 가는 기업 관계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렇다는 건 서로 다 알고 있다는 거다. 이 자리는 어떤 주제나 토론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언론사의 수금을 기업이 도와주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와서 무언가 배울 점이나 깨달음은 얻은, 아니 그것보다 강연을 제대로 들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언하건데 행사 기사 작성을 위해 투입된 기자들 빼고 없을 거다.(이마저도 불확실하다) 나조차도 다른 일을 하느라 한 글자도 못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겐 아주 충격적이었던 건,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아르바이트가 투입됐다는 거. 주위에 물어보니 흔한 일은 아닌 듯 하지만 실제로 보니까 좀 충격이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웃긴 건 방청객 아르바이트 분들께 행사 컨셉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는지 포럼 주제가 아주 진중했던 데 비해 아르바이트 분들의 나이대는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고, 옷차림도 원피스나 놀러 나갈때 입는 차림이 많아서 행사와 아주 언발란스하고 웃겼다. 듣기론 일당 5만원이라던데, 두세시간 앉아 있는데 5만원이면 꽤나 괜찮은 알바 아닌가.


가끔 부서 사람들이 내가 전에 다녔던 매체 영역인 월간지나 전문지를 경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곤 했다. 그쪽은 규모나 시장이 작아서 광고나 구독자 수가 아주 중요하고 그래서 기업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지만 여기는 일간지라 다르다고. 나는 겨우 전문지따위에 다녔지만 그 전문지가 주최한 행사에는 행사 시작도 전에 와서 얼굴만 비추고 가는 사람은 없었고 방청객 알바까지 쓴 적도 없었다. 사실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부른 게 되게 돈 아깝다는 생각이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알바를 쓰는 것일텐데, 아무도 보지 않는 행사의 빈자리를 왜 채우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내가 혼란스러웠던 게 이런 점이었다. 언론의 역할이라던가 방향, 기자가 추구해야할 가치와 고민의 방향 등 꽤나 의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가끔은 일간지 부심이라고 느껴질 정도) 현실은 광고 땡겨오기, 포럼 초대하기 같은 구구절절 ‘형님, 한 번만 도와주십쇼’가 뒤섞인 모습을 봐야하는 것. 내가 소위 기자정신이 투철해서 혼란스러웠던 게 아니라(오히려 너무 없어서 문제) 이 바닥에선 이 상황을 다들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져서 당황했다. 다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이 없어 보이지, 언론사라는 이 회사는 무슨 메세지를 사회에 던지고 싶은 거지 등등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


이런 고민이 회사를 그만두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배경에 있기는 했다. ‘전에 다니던(두 번째) 회사에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고민하곤 했다’는 내 말에 ‘기사도 못 쓰는게 무슨 콘텐츠 비즈니스에 대해 고민하느냐’는 비아냥을 들은 적이 있다. 저 말을 듣고 나서 입사한 이래로 처음으로 화가 났다. 내 실력이 부족한 것이나 실수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한 번도 화나지 않았고 오히려 고마웠다. 신입 교육은 아주 귀찮으니까. 그런데 저 말을 듣고는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축구를 못하면 축구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되나? 저 고민을 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닌 건가?


모든 언론이 이런 실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겪은 회사는 이랬다. 일간지 중에서도 약간 하위 티어 정도라 상황이 더 열악할 수도 있겠다. 어쨋든 나는 아직 짬 없는 쩌리고, 나조차도 쩌리인 내가 굳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아마 예전 직장의 동료들과 이런 문제들과 관련해서 꽤나 많이 이야기를 나눴기에 자연스럽게 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다시 글을 읽고 나니 이상하고 편협하고 조금 부끄러운 글이 됐다. 하지만 오랜만에 아무렇게나 쓰니 재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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