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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희 Aug 14. 2020

01. 하늘이 노랬고 그렇게 난 너를 만났지

시작은 미약했으나.

하늘이 노랬다. 전날 비가 왔었던가? 아님 다음날 비가 올 차례였던 건가? 아무튼 하늘은 만면에 노란 빛깔이었다. 예뻤고 기분이 센티해졌다. 그래서였을까.
“야, 성대로 오라니까 수원을 왜 가 있냐..”카페 사장님은 누군가에게 답답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내가 일하던 카페는 서울의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대학교 앞에 위치한 카페였다. 나무로 된 2인용 테이블이 5개 정도 들어가는 매우 작고 아기자기한 카페였는데, 젊은 사장님은 어려서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막대한 유산을 조금씩 쪼개 먹으며 사는 삶을 살다가 그 무료함에서 벗어나고자 이 작은 카페를 차린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러한 이력은 비밀인 듯 비밀 아닌 듯, 사실의 그의 입을 통해 더욱 빈번히, 공공연한 비밀로 카페 단골들에게 구전되었는데 사장님의 입이 싸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카페는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스러운 다락방의 느낌을 물씬 담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어쩌면 그 비밀스러움 때문이었을까.
전화를 끊은 사장님의 상황 요약은 아는 동생이 카페 구경 온다길래 성균관대 앞으로 와서 전화하랬더니 수원에 가있더란다.

왜 하필 수원?
“수원에도 성균관대가 있다는 걸 나도 깜박했네. 역에서 내려서 한참을 가도 허허벌판 같기만 하고 대학교가 안 나와서 이제 와서 나한테 전화했대.” 사장님은 답답한 건지 미안한 건지 전화기 속 누군가에 대한 감정이 정리가 안된 얼굴로 다시 컴퓨터 속 고스톱의 세계로 들어갔다.
“진짜요? 와,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고스톱 치는 사장님의 뒤통수 쪽 허공을 향해 몇 마디를 분사시키고는 나는 다시 바닥을 쓰는 데에 집중했다.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대를 가려면 지하철로는 혜화역에서 내려야 했으니 초행길인 사람에게 성대를 오게 하려면 서울인지 수원인지 명확히 밝힐 필요가 이제 있음을 아주 잠깐 동안 유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내 기억 속에서 깔끔히 잊혔다. 잊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혼자서 하루종일 일하는 직업이다보니 천성적으로도 외로움이 많은데 직업도 참 외롬외롬한 직업에, 그 직업에서 돈을 버는 능력이 미약해 더더욱 외롬외롬한 이 카페 알바를 해야만 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다름 아니라 서른이 넘어 먹고사는 분야의 길을 바꾸었는데 그 반경이 ‘사회과확 분야’에서 ‘예술분야’로의 대규모의 각도조절이었고, 가족들의 ‘쟤를 어쩌면 좋을까’하는 한탄과, 친구들의 ‘쟤처럼 하면 저렇게 된다’는 경각심의 아슬아슬한 사잇길을 두쪽 다 조심성 없이 마구 밟으며 걷고 있던 중이었다.
논어에도 서른 넘으면 이립이라 하여 뜻을 세우면 된다 했는데 나는 그때, 세운 뜻을 바꾼 대가를 깔끔한 통장잔고, 인간관계의 단일화, 사용하는 생필품의 노후화,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써의 추가적인 노동인 카페 알바로 치르고 있던 것이다. 외로움이 극에 달해있던 길 잃은 미어캣같은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날 카페에 그가 왔다. 눈이 안 좋았지만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젊고 생생한 남자다.
당시 내가 보는 남자라 함은 고스톱을 치는 그분의 뒷모습이랄까, 혹은 술을 무진장 자시고 2인용 테이블 의자를 이어 붙인 채 한잠을 주무신 후 끼익 거리며 일어나 고스톱을 치시는 그분의 뒷모습이랄까, 아니면 새로운 손님이라도 왔다 하면 오랜만에 순한 얼굴을 하고 슬픈 과거 이야기를 하는 그분의 뒷모습이랄까 그 정도였는데, 그는 너무나 오랜만에 싱그러운 바깥의 공기를 아직 품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남자였다.  아마도 그래서였나 보다. 그가 테이블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를 할 때 그 내용이 다른 누구와 싸웠다는 내용이라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은. 내가 테이블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뭐 그렇게 깔끔하게 해요” (깔끔하게 하지 않았는데도)라며 웃는 모습 속에서 그가 했던 ‘뭘 그렇게 깔끔하게’라는 말과 그 기묘한 억양이 아니라 웃는 이미지만 내 가슴에 남겼던 것은.
그가 그때 하늘이 노랗던 날 성균관대 오려고 하다가 수원 갔다는 그 칠뜨기였을 줄은 그건 내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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