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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희 Dec 23. 2020

07. 나의 그리운 도시 서울

새로 그리는 하늘

나의 그리운 도시 서울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내가 나 이도록 도운 모든 것들의 총합을 나는 서울에 두고 대구에 왔다. 그 많은 이들의 친절, 엄마의 이를 악문 모성, 아빠의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았던 부성, 그리고 나의 숱한 일상들이 남겨놓은 추억들, 나는 그것들을 나를 이루는 복잡하고 깔끔하지 않은 감정의 잡동사니라고 생각했고, 그 부잡스러운 잡동사니들이 귀찮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삿짐을 챙겨 서울을 떠났다. 이삿날 그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지만 그 눈물이 사랑과 애정은 분명 아니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대학시절 나는 술을 잘하고 싶었다. 술을 잘할 수만 있으면 내 앞에 앉은 그 누군가와 더 오래,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의 눈을 더 오래도록 보고 싶었다. 타인이 나를 보는 그 호기심 어린 눈빛이 좋았다. 알딸딸하게 취해 밤이 깊도록 어느 술집 낡은 소파에서 나른하기도 하고 몽롱하기도 한 상태로 친구들과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뿌옇게 안개가 내려앉은 내 시야에는 나만큼이나 두 볼이 빨갛게 상기된 그들이 있었다. 쉴세 없이 재잘 되는 걸 바라보기도 하고 내가 더 큰소리로 취기를 이용해 진심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다 엄마한테 전화가 오면 버스도 끊긴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금방 들어갈 거리고 둘러대던 그런 날들이었다. 덕분에 다음날 수업을 못 가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났고 나의 학점은 겨우 학고를 면하는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나는 내 20대를 보내는 방법을 그것 밖에는 알지 못했다. 나의 이십 대에는 사방으로 방사되고 있는 서울 지하철의 노선도 같았다. 앞으로 내가 헤매야 할 길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 지루하고 두려웠다. 너무 많이 남은 나의 청춘과 너무 심하게 부족한 자신감, 그 사이에서 서울은 나에게 한없이 지루하고 두려운 도시였다.

아무런 이정표를 제시해 주지 못했던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나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어 거리를 헤매곤 했다. 종로를 서성이거나, 외대 앞을 방황했다. 홍대 앞에서 부조리한 세상을 한탄하다가 청량리역에 오면 정신을 차리고 겨우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갈아탔다.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도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지 못하는 듯했다. 손가락 마디에 관절염이 있는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하루 종일 운전대 앞에 있어 소변을 보지 못하고 있는 택시 운전수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거대한 서울의 에너지 앞에 무릎을 꿇고 하루를 견디는 듯 보였다. 나는 너무 젊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많지 않아 보였다.

나는 이 삶이라는 전쟁에서 유리하게 싸울 수 있는 무기를 하나도 획득하지 못한 채 졸업이란 것을 했다. 줄곧 과외로 학비를 벌었지만 전문과외교사가 되기에는 어쩐지 창피했다. 누군가 먹물의 막장이 강사라 하지 않았다 해도 나는 어쩐지 생존이라는 게임에 실패한 느낌이 들었다. 취업 원서는 족족 떨어졌어도 서울 4년제 대학 졸업생이라면 능히 이 정도는 가야 한다는 대기업 이외의 회사에는 원서 조차 넣지 않았다. 가지지 못한 것을 너무나 간절히 원하면서 나는 여의도를 서성이며 맞은 뺨을 이태원에서 풀며 시간을 보냈다.

그림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나는 성수동에서 나의 30대를 보냈다. 꼭 그림작가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것과 같다. 어떤 것을 해봐야겠다는 결심은 지푸라기를 잡는 물에 빠진 생쥐의 심정과 같다. 성수동을 기반으로 나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작업실에서 밤을 새우며 내 삶의 길을 설정했다. 구의역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기운을 차리고 강변역 테크노 마트에서 내가 사지 못할 사치품들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나중에, 꼭, 나중에, 이런 것들을 망설이지 않고 사야지.
욕망을 다스리며 작업을 하고 또 작업을 했다. 혜화동으로 길동으로 과외를 다니지 않았다면 버틸 수 없는 생활들이었다.

첫 그림책이 나왔다.

합정에서 출판사 미팅을 했다.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드디어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친구의 생일날이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지인의 결혼식이 두렵지 않은 것이다. 조카의 성장이 기쁠 수 있는 것이다. 돈을 번다는 것은 속옷을 입는 것이다. 외출을 할 때 엄마나 언니의 옷을 빌려 입을 수는 있지만 속옷을 입지 않은 사실이 껄끄러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이제 더 이상 들지 않는 것이다.
전시회를 무사히 마치고 그림이 팔려 그림값을 받았을 땐 종각에서부터 종로거리를 뛰다시피 다니며 전화를 돌렸다.

어떻게 지내? 한번 만나자. 사당 좋지.  

사람은 태어날 때 각각의 하늘이 있다고 한다. 별이 반짝임이 다르고 달의 위치가 다르고 태양의 광채가 다르다고 한다. 그 각각의 하늘이 각자 어떻게 반짝였는지에 따라 각자의 인생이 다르게 펼쳐진다고 한다. 나의 서울 하늘은  어둡고 축축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사방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오는 카페에 앉아 서울을 돌아보려니 사실은 비가 촉촉이 내려 연회색 구름이 조금 끼어 있긴 해도 바라보기에 꽤 괜찮은 하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향수병을 앓느라 다시 돌아보게 된 서울의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줄지어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들 같은 별들이 아마도 자기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나는 대구에서 새로운 하늘을 그려 보려고 한다. 버스카드를 찍기도 전에 출발해 버려서 바짝 긴장한 채 타야 하는 대구 시내버스에서도, 아주 작은 귀여운 꼬마 아이의 입에서 들리는 생소한 사투리를 들을 때에도, 기가 막히게 맛있는 대구 막창을 먹을 때에도 하늘에는 그 나름의 별이 빛나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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