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희 Dec 19. 2020

06. 이방인이라는 실질적인 현타가 오다.

경계인

처음 겪는 일이었다. 갑자기 똑바로 서있기가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식탁을 잡고 있던 손이 떨려왔다. 허물어지듯 다리 힘이 풀려 땅을 짚었다. 땅이 흔들린다는 것,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은 평소 쉽게 연습할 수 있는 감각이 아니었다.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깨달았다. 지진은 아니다.

결혼 후 얼마간은 나의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분명히 나는 결혼 전에 없던 여유가 생겼고, 바쁘고 허둥지둥거리던 나의 삶 중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작은 집을 쓸고 닦는 재미도 있었고, 살림을 직접 쓰다듬고 관리하면서 가재도구에 애착도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날씨가 맑은 어느 토요일, 그날도 어김없이 나의 루틴들을 다 해내고 나서도 어쩐 일인지 더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으싸 싸. 이불빨래를 널면서 입에서 희망찬 구령도 나왔다. 오랜만에 말할때 터지는 가래가 낀 쇳소리였지만 기분은 좋았다. 집 근처 저수지로 산책을 나갔다. 차르르한 햇빛이 수면에 반사돼 별처럼 반짝거렸다. 아, 이런 날 친구를 만나 한 세 시간 수다를 떨고 들어오면 참 좋으련만.

별 같은 햇살 위를 동동거리면 떠다니는 오리배를 보고 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저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얼굴들이 모두 가벼워 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일었다. 저 대화에 끼고 싶다. 말을 걸어 보고 싶었다. 나도 웃고 싶었다. 혼자 tv를 보며 웃는 나만의 미소가 아니라 웃음을 공유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환히 웃는 입술을 보며 내 이빨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입에 손을 가리고 웃으며 옆사람을 툭툭 건드리고 싶었다. 아마도 그 누군가는 자신을 흔드는 내 손에 몸을 맡긴 채 그 반동과 비슷한 파동의 웃음소리를 낼 것이고, 그러면 나는 가볍게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그 파동을 연장시킬 것이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누군가를 눈치 없이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 시선을 거두고 여전히 반짝이고 있는 물빛을 바라봤다.
아, 친구들이 보고 싶네.
약속을 거창하게 하지 않고 “지금 볼까?”라는 텍스트 하나면 족한 그런 깃털 같은 만남을 하고 싶었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서울에 가는 것이 더욱 부담스러운 시국이 되다 보니 그런 욕구가 더 강해졌다.

삐삐 삐삐.
현관문 도어록 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다. 조용하다.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 하나. 식탁으로 간다. 휴대폰을 식탁에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남편은 오늘도 늦겠지. 대구는 남편이 태어나 자란 곳이라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군대 동기들까지 다양한 친구들이 지근거리에 살고 있었다. 남편이 친구들과 저녁에 잠깐씩 차를 마신다거나, 가볍게 술을 마시고 오는 것, 그가 내가 가진 대구에서의 시추에이션에 크게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은 큰 문젯거리는 아니었다. 나는 원래 집순이임을 자부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하늘 위 양떼구름이 바람과 함께 흘러가다 공기의 멈춤과 함께 한 곳에 뭉쳐버린 듯 윤곽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뭉게뭉게 뭉쳐져 비를 쏟아 내기 직전처럼 축축해져 버렸다.  
집안을 부유하는 고요가 부담스러워서 tv를 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식탁에서 일어나 리모컨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순간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뭐지. 숨을 쉴 수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들이마시는 것이 분명한데 잘 들이마셔지지 않고 내셔 지는 것도 느껴지지만 내쉴 수가 없었다. 절대 타지 않던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퀴즈 맞추기에 실패하면 양쪽에 벽이 움직여 공간이 줄어드는 게임을 한 것처럼 집이 좁아지는 것 같았다. 이곳 맨션에서 아무도 나의 비명을 들을 이는 없을 것이다. 푸슈숙- 내 몸속에 있던 ‘기’라는 것이 내 살갗 백만 개의 구멍을 통해 백만개의 방향으로 새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서둘러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해가 지고 어둑한 밤거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숨을 쉬어야 했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하며 한참을 걸었다. 30분을 걸었을까 한 시간을 걸었을까. 한참을 앞을 향해 걷고 걸어가자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그러고 나니 밤의 불빛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동차들의 라이트들도 보였고 상가의 네온사인도 그제야 시야에 들어왔다. 그때 발 뒤꿈치가 심하게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허둥지둥 집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맨발에 운동화를 신고 나왔고 그 바람에 발 뒤꿈치가 헐어버렸는데 헐어가는 뒤꿈치를 신경 쓰지 못하고 조심성 없이 걸은 탓에 이미 상처가 꽤 벌어져 있었다. 너무나 신기한 건 조금 전까지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던 내가 이제는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의 쓰라림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아. 이건 내가 아는 감각이다. 내 몸속에 체계들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구나. 그리고 나는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인 게 좋아도 고독은 온다. 고독인지 외로움인지 그 구분을 분명히 하지 못한다. 어떤 감정에 휘말렸을 때 이 감정의 원인을 곧잘 찾지 못한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먹먹히 떠돌 뿐이다. 무엇 때문인지, 피할 수는 없었는지 감을 잡지 못한다. 소용돌이를 버틸 뿐이다.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그 구분을 분명히 하지 못한다. a가 싫어 b를 선택했음에도 남겨진 a가 아까워 b를 보류하기도 한다. 선택한 c가 한치의 흠을보일때 유보했던 d를 꺼내 만족해하기도 한다. 최선인지 최악인지 그 구분을 분명히 하지 못한다.

끝 모를 향수병이 나를 끌어내리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05. 나는 당연히 집안일을 잘하는 게 아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