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 Aug 12. 2024

심장 박동수는 똑같아질 수 없다

처음에는 혼자였고 올해부터 둘이 되었다. 남편이 나를 따라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분을 잔뜩 머금은 공기 때문인지 요즘 속도가 안 난다. 남편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뛰다가 어느 순간 발이 점점 느려져 걷게 된다. 남편은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왜 그러냐고 묻는다. 해가 저문 밤인데 내 몸은 태양의 열을 흡수한 것 같다. 숨을 고르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횡격막이 아픈 건 아닌데 점점 다리가 무거워져."


    "그럴 수가 있나?" 남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랑 속도를 맞추려고 걷는다. 대체 언제부터 나보다 빨라진 거지. 처음부터 잘 달렸던가. 하긴 몸통이 얇실한 남편은 한눈에 보기에도 잘 뛰게 생겼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 각자 귓구멍에 다른 음악을 튼다.


    온몸이 축축하다. 뛰기 전부터 땀구멍에서 땀이 솟아났다. 손목에서 초단위로 심박수를 체크하는 워치도 거슬려서 집에 풀어놓고 왔다. 옆에 있는 남편이랑 계속 일정한 속도로 뛰어야 하는 것도 불편하다. 무념무상 혼자 느렸다가 빨랐다가 나만의 리듬으로 뛰고 싶다.  


    반은 각자 뛰고 반은 함께 뛰자고 제안했다. 만나는 장소는 여기서 가장 먼 곳, 달리기 코스의 중간 지점이다. 나는 가던 방향으로 남편은 반대 방향으로 갈라졌다. 혼자가 되고 나니 다리가 가벼워졌다. 고막을 울리는 비트에 몸을 맡겼다.


    약속한 지점이 가까워지자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아차차 여기는 혼자서 오지 않는 곳이다. 공원 끝자락이고 길은 좁고 어둡다. 하필 오늘은 달도 뜨지 않았다. 시커먼 하늘 아래 거친 호흡음은 내 것인데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남편은 어디만큼 왔을까. 맞은편에서 남편 얼굴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땀이 식으면서 체온이 떨어졌다. 약한 바람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남편은 어디만큼 왔을까. 전화라도 해볼까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공포에 대한 반응속도는 두 가지다. 멈춘 듯이 느리거나 동물적으로 빠르거나. 동물적으로 반응하기에 이미 늦은 나는 느릿느릿 고개를 돌렸다. 웃음기 어린 남편의 얼굴이었다. 남편을 보고도 소리 지를 뻔했는데 참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남편이 미워졌다. "자기 혹시 밤에 뒤에서 누가 쫓아올 것 같아서 무서운 적 없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하며 남편 눈은 반달 모양이 됐다. 따라서 미소 지을 수 없었다.


    "나 밤길 무서워해. 다음부터는 앞에서 나타나. 내가 앞에 가고 있으면 나를 앞질러서 뒤를 돌아봐 줘." 남편은 내 얼굴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혼자 뛰고 싶다고 해서 보내줬더니 무섭다고 부루퉁해진 나를 그냥 외우기로 작정했을 것이다. 근거 없는 공포심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길없다. 그래도 남편이 내 마음을 온전히 알아주면 좋겠다. 갑자기 쓸쓸해진다. 이미 머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건 환상이라고. 사는 동안 우리의 심장 박동수가 똑같아질 수 없는 것처럼.


    남편은 내가 붙잡고 있던 팔목에서 내 손을 떼어내어 잡아줬다. 남편의 손바닥은 따뜻했다. 별말 없이 그렇게 집까지 걸어왔다. 풀숲에 숨어서 우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음악 삼아, 둘이서.





사진: Unsplashsq li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