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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운 Sep 23. 2022

보통의 평범한 날, '평일'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베란다에 나가 몬스테라 화분에 물을 준다. 아침 공기가 코끝을 지나 몸속으로 들어와 온몸을 시원하게 해 주고 몬스테라의 진한 초록색 잎은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창밖으로 새파란 가을 하늘과 흰 구름 몇 점이 ‘오늘 날씨 맑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상쾌한 가을 아침이다.


  주방으로 가서 오븐에 식빵을 데우고 빨간 사과와 노란 배를 얇게 썰어 한 접시에 담는다. 소스 그릇에 딸기잼을 담고 손잡이가 달린 가벼운 컵에 우유를 따른다. 그 사이 아이들은 양치와 세안을 하고 거실로 걸어 나온다. "오늘 아침 뭐야"라고 묻는 아이들의 얼굴이 말갛다. 각자 방에서 밤잠을 자고 아침에 거실에서 만나는 순간은 매일 새로이 반갑다. 오물거리며 재잘대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침 식사를 앞에 두고 앉아 있는 시간은 온 우주에 우리뿐인 기분이 든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사랑으로 충만한 시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사랑으로 마음을 채운 아이들과 집을 나선다.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그리고 나는 도서관으로. 


  도서관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태블릿과 키보드를 꺼낸다. 천오 백자 정도 글 한편을 쓴다. 쓰는 내내 생각한다. 도서관만큼 글쓰기가 힘든 곳이 있을까. 눈에 보이는 건 온통 책이다.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양이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쓸 게 아니라 읽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내가 쓰는 문장보다 유려한 문장들이 있는 책을 집어 들고 허겁지겁 읽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오른다.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동안 머리는 끈질기게 한 줄 두줄 글을 뽑아내고 있다. 목표한 분량을 다 쓰고 나면 내 글에 스스로 취해서 '쓸만하네'라고 중얼거린다. 어쩌면 나는 글보다 작가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뿌듯한 마음으로 도서관 옆 공원 산책을 하며 집으로 간다. 로봇청소기가 구석구석 먼지를 빨아들이고 걸레질을 해놓은 말끔한 방바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물 한잔 마시고 운동매트를 꺼낸다. 목 어깨 무릎 발목 스트레칭을 하고 가슴 등 엉덩이 허벅지 근력 운동을 한다. 스트레칭으로 관절이 시원해지고 근력운동으로 온몸이 뜨끈해진다. 점심으로 닭가슴살 한 덩이와 양상추 샐러드를 뚝딱 먹는다.  


  드디어 할 일을 모조리 마쳤다. 뿌듯함과 홀가분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자유를 만끽하기에는 독서가 제격이다. 특히 소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나 전자책 리더기 킨들로 엘리자베스 길버트 <시티 오브 걸스>를 느긋하게 읽는다. 순수한 재미로 잘 쓰고 싶은 욕심으로 읽는다. 


  잎모양이 멋져서 좋아하는 몬스테라, 재잘거리는 아이들과 식사하는 아기자기한 아침, 내 시선으로 기록한 일상의 글쓰기, 믿을만한 세계를 만들어 놓은 완성도 높은 소설과 함께 보낸 나만의 소중하고 평범한 날, '평일'. 주말의 반대말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라는 뜻의 평일을 아낀다. 평일의 평평함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사소하지만 확실한 디테일에서 온다. 


  제법 쌀쌀해져 가을이라 대놓고 부를 수 있는 오늘, 롤랑 바르트가 이야기한 '소설적인 것'들에 더 확 기대 볼까 한다. 바르트는 소설적인 것은 "일상적 현실, 인물들, 삶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에 대해 성실하게 메모하고 관심을 보이는 방식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우리 집 소파에 뒹굴고 있는 피카츄 피규어, 짝이 안 맞는 양말, 과자 부스러기도 소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몬스테라 화분에 더디지만 곧 나올 것 같은 새 잎의 낌새도 내가 알아차리길 기다리고 있는 행복 한 조각이다. 그걸 알아채서 기록하고 더욱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들 수 있는 평일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특별하지 않은 사물의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세계를 알아차리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평범해서 더 소설적인 것'을 찾아다녀야겠다.






Photo by Guzel Maksutov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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