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첫발을 내딛다
그렇게 나는 하루 하루 Monterrey 대학 캠퍼스에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었고, 교내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속에는 여전히 잘 스며들지 못했다.
그보다는 주말에 시간을 내어 찾은 센트로의 광장(Plaza)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 기억 속에 더욱 진하게남았다. 그들은 일관되게 순박했고, 또 친절했다.
일면식 없는 그들과 길거리 타코집 이야기부터, 멕시코 독립전쟁, 한국 드라마, K-Pop에 이르기까지 두서없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듀오링고 이후 쌓인 내 스페인어 역량의 9할 이상은 이런 길거리 대화들 속에서 쌓여갔다.
하지만, 과달라하라의 Centro 또한 반복적으로 가다보니 감흥이 떨어졌고 멕시코의 다른 지역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앞선 포스팅(1. 멕시코로 향하는 길)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1800년대 미국과의 전쟁을 통해 국토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국토 면적이 1,964,000 km²에 달해 남한(100,210 km²)의 20배에 이른다. 행선지를 고민하던 중 차로 약 3시 30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Guanajuato(과나후아또) 주의 수도인 동명의 도시 과나후아또의 밤이 정말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체없이 떠나기로 했다. 일정은 교수님의 사정으로 수업이 없던 금요일과 주말을 붙여 떠나기로 결정했다.
멕시코의 버스는 이용료나 시설에 따라 Grade가 천차만별이다. Gade가 높은 프리머엄 버스 브랜드의 경우 시트의 질, 화장실 유무, 의자 각도 조정, 식사 제공(놀랍게도 장거리의 경우 기내식의 형태와 유사하게 승무원이 동승하여 제대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등에서 중저 등급 버스 브랜드들과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이뿐만 아니라 저가 브랜드의 경우 인터넷으로 버스 일정 확인이 불가능함은 물론, 제대로 된 터미널도 없이 그저 빈 공터에 티켓 부스와 버스들이 무분별하게 서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격 차이가 많게는 절반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은 버스 자체보다는 버스를 함께 타는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자신의 소지품 분실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몇 천원 더 아끼고자 이런 리스크를 무릅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멕시코의 버스 프리미엄 브랜드 중 하나인 Primera Plus를 이용했다. 이 브랜드를 기준으로 과달라하라-과나후아또 버스 요금은 MXN $ 432 (현재 환율 기준으로 약 25,000원)이었다. 한국에서 비슷한 운행 시간이 걸리는 서울-대구 구간의 우등 버스 요금이 25,400원(동서울-동대구 기준, 일반 버스 17,200원)인 점을 고려할 때 실로 매우 '프리미엄'한 가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전 포스팅에서 소개한 것처럼 현재 멕시코 페소는 꽤 저평가된 상황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내가 체류할 당시 환율로 계산해보면 31,000원이라는 금액이 나온다(새삼 아주 억울하다). 소비자 물가가 30% 가량 저렴한 국가에서 지불하는 버스 금액으로서 매우 높은 수준이라는 것에 그 때나 지금이나 생각이 같지만 운행의 정시성(중남미에서 정말 찾아보기 힘든 가치다)이나 시트의 편안함(한국 우등 버스보다 우수하다), 이외 추가적 서비스(일부 터미널의 경우 전용 라운지 운영) 등을 고려할 때 충분히 티켓값을 한다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우여곡절들을 거쳐 도착한 과나화또 시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형형색색'이었다. 터미널에서 내려 마을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시내로 들어가는 풍경이 정말로 예뻤다. 내 기억으로 터미널로부터 시내까지는 불과 10~1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는데, 가는 길이 마치 여러 색의 집과 지붕으로 뒤덮힌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기사님께 중간에 내려달라고 요청을 해서 그 지점부터 시내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지역마다 다소 차이는 있는 듯 하나 멕시코에서는 큰 도시의 경우가 아닌 경우 방금의 경우처럼 임의의 장소에서 하차가 가능하다. 정류장을 뜻하는 'Parada(빠라다)'를 힘차게 외치면 보통 기사님이 그 다음 골목에서 정차를 해주신다. 비교적 작은 도시나 마을에서는 보통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규모의 버스보다는 우리에게 '봉고차'라 흔히 알려진 승합차로 운행되는 경우가 많다. 버스일 경우에는 영어와 단어가 같아 bus(부스) 혹은 autobus(아우또부스)라 칭하고, 이러한 승합차는 보통 micro(미끄로)라고 칭한다. 짐작하기로는 microbus의 약칭이 아닐까 한다. 물론 bus라고 해도 다들 알아듣기 때문에 길을 물을 땐 '부스'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과나화또 시의 또다른 특이한 점은 도시를 관통하는 터널들이 다수 있다는 점이다. 위 사진처럼 보도도 있지만 그 폭이 좁아 다소 위험할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멕시코 곳곳이 보도도 없는 거리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정도는 양호한 수준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터널을 지나면 형형색색으로 자태를 뽐내는 과나화또 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도시의 첫인상과 터널의 존재가 결합되어서인지, 터널을 매개로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센과 같은 기분이었다.
시내로 들어서서 묵을 호스텔 찾는 것 역시 나에게는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요새는 워낙 좋은 숙박 예약 앱들이 수없이 많지만, 나는 이보다 일일이 방을 둘러보고 호스텔 주인과 한마디라도 더 섞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여 한국 귀국 때까지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였다(때론 이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으나).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질 않지만 내가 묵었던 첫 숙소는 1박 가격이 15,000원이 되지 않는 저렴한 숙소였다. 보통 이러한 경우 하나의 방에 이층침대 5~8개가 놓여져 있고, 이 중 하나의 침대를 사용하는 형태이다. 이러한 형태를 스페인어로는 dormitorio(도르미또리오)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와 함께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cama(까마)인데 '침대'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내가 빌리는 공간은 방 하나가 아니라 '침대 하나'인 셈으로 숙소의 가격을 문의할 때 ¿Cuánto es por una noche, una cama/persona? (하룻밤, 침대 하나/한 사람에 얼마인가요?)와 같이 물으면 된다.
짐을 풀고나니 벌써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시 첫 날은 날씨도 흐린 편이라 어둠이 좀더 일찍 찾아온 이유도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도 쏟아지기 시작해서 잠깐 외출을 미루기로 하고 낯선 도시의 비를 조용히 감상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비가 그쳤다.
부푼 맘을 안고 숙소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