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나후아또의 낮과 밤
나에게 여행은 인간에게 정신적 건강이 신체적 건강만큼이나, 아니 종종 그 이상으로 중요함을 명확하게 상기시켜 준다. 성격상 여행 중에도 나는 잘 늘어져 있질 못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자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평소 같았으면 몸살이 나고도 남았을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중에는 늘 다음 날도 일찍 일어나 문제없이 일정을 소화했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는 데에서 오는 정신적 풍요로움이 내 면역력을 강화하고, 신체적 리듬을 평소와 다른 태세로 준비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여행 스타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10명이 있으면 10개의 성격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행에도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평소보다 동행자 간 갈등이 잦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행이 종종 당사자 누구에게나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각자가 그러한 특별한 경험에서 얻고자 하는 상이한 가치가 온전히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장기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닌 한 여행자들의 서로 다른 가치는 조화롭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또한 '특별한 경험'이 내재하고 있는 특별한 기대감은 그 크기만큼 사소한 다툼에도 당사자들의 감정에 더욱 깊은 생채기를 낸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원만한 여행을 위해서라도 혼자서 여행을 떠나보고 자신의 여행 스타일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동행자와 미리 소통하고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한다면 보다 서로에게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아름다운 골목을 비추던 오렌지색 조명의 밤거리를 저녁까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올라오는 찰나, 활짝 연 창문에서는 내가 어제 봤던 알록달록한 건물 색들이 어제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각자의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구름이 가득한 오후를 지나 비가 온 뒤의 다음 날 햇빛이기 때문이었을까. 그 날의 해는 과나후아또의 거리를 유난히도 영롱하게 비추었다.
호스텔 동료들과 함께 했던 아침 식사는 매우 즐거웠다. 동행은 두 명으로 한 사람은 내가 거주하던 과달라하라에서 온 남자 한 명,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멕시코 타지역(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에서 온 여자였다. 내가 로컬 음식을 먹고 싶다는 의견을 이야기하자 그들은 나를 근처 시장으로 데려갔다. 우리가 먹은 메뉴는 Enchiladas Mineras(광부의 엔칠라다)였다. 이 엔칠라다는 과나후아또 정통 스타일의 엔칠라다로 옥수수 또르띠야에 매콤한 살사와 치즈, 양파, 당근 감자 등이 토핑된다. 과나후아또 주변 지역은 예부터 은 광산 지역으로 유명했으며, 식사 시간이 되면 광부의 아내들이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 남편들을 위해 아래와 같은 엔칠라다를 준비했다고 하여 이러한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대부분의 멕시코 음식은 굉장히 자극적이고 그 특유의 맛이 강하다. 살사의 그 매운 맛 역시 한국 사람들이 없이는 못사는 고추장과는 다르게 특유의 자극적이 맛이 있어서, 적어도 내가 먹으면서 늘 했던 생각 중 하나는 '지금 젊을 때나 먹지, 나이 들어서도 이렇게만 먹다간 일찍 죽겠다'였다. 물론 타코를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에 가면 살사의 종류에만 20가지가 넘고, 그들 중에는 아보카도 소스와 같은 매우 건강한 소스들도 있다. 다만 타코와 엔칠라다 등은 모두 기본적으로는 접근성이 높은 서민 음식이기에 일반적인 경향을 말하자면 분명 맛이 너무 강하다. 하지만 그러한 여러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풍요로운 멕시코 음식 문화를 정말 사랑했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맛이 너무나 그립다.
이야기가 좀 빠졌는데, 아무튼 아침으로 먹었던 Enchiladas Mineras는 매운 살사가 있었음에도 내가 먹었던 어떤 멕시코 음식들보다 담백하고 맛있었다. 일반적으로 고기가 들어가지 않고, 야채와 치즈로만 구성되다 보니 소화도 비교적 용이했고 당근, 감자 등의 야채는 자극적은 살사의 맛을 효과적으로 중화해주었다. 내가 먹었던 멕시코 음식들 중 '매일 먹어도 좋을 것 같은' 몇 안되는 음식이었다.
당신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매일 봐왔던건가요?
아침을 꽤 일찍 시작했음에도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커피 한 잔을 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또 늦은 점심을 먹으니 벌써 해가 조금씩 내려가려 했다. 기대했던 것처럼 날이 화창한 대낮에 보는 과나후아또의 골목은 다른 매력으로 나를 다시금 홀려놓았다. 이전에 보았던 한 영상에서 색맹이었던 한 남자가 현대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특수 안경을 끼고 비로소 들판의 색을, 하늘의 푸름과 꽃의 알록달록함, 그리고 무엇보다 보고싶었을 딸의 예쁜 모습을 보고 감정이 북받쳐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영상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진 적이 있었다. 그들은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매일 봐왔던건가요?'
감히 내가 과나후아또의 시민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이런 아름다운 색의 향연에 둘러싸여 있으면 없던 예술적 감각도 되살아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나후아또가 스스로 멕시코의 대표적 화가이자 또다른 대표적 화가인 프리다 깔로(Frida Kahlo)의 배우자였던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출생지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 어찌 예술가가 태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디에고 리베라 박물관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 또한 확인했으나 시간이 다소 애매해 마지막 날인 내일 떠나기 전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밤.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과나후아또의 밤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흥미로운 동료들과 외출을 하게 되었다. 멕시코 동쪽 항구 도시로 멕시코 만과 마주 보고 있는 Verzcruz 주에서 온 두 친구들이었는데 이둘은 한 사람은 기타, 다른 한 사람은 보컬을 하면 음악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국내를 돌아다니고 있는 멋진 친구들이었다.
이런 아름다운 색의 향연에 둘러싸여 있으면 없던 예술적 감각도
되살아날 것만 같았다.
그들과 함께 올라간 곳은 Monumento al Pipila(피필라 기념비)가 있는 과나후아또 시의 언덕 지형이었다. Pipila는 멕시코의 독립을 위해 힘썼던 영웅 중 한 사람으로 Alhóndiga 성문을 불질러 멕시코 독립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Hidalgo 군의 첫 승리를 이끈 장군이라고 한다.
그를 기리는 기념비 아래에는 'Aún hay otras Alhóndigas por incendiar(아직 불태울 다른 Alhóndigas가 남아있다)'라는 의미심장한 글귀가 적혀있다. 위 기념비를 기점으로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과나후아또 시의 야경이 멋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이걸 보기 위해서 내가 이 여행을 오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내가 이 골목 저 골목 뒤지고 다니던 곳인만큼 높은 곳에서 다른 각도로 도시를 살펴보는 것이 더욱 의미있게 느껴졌고, 내가 지난밤, 그리고 오늘 낮에 돌아다닌 골목이 어디었는지 더욱 주의깊게 살펴보고 꼬집어보게 되었다. 나와 동행했던 친구 둘은 마리화나로 보이는 담배를 연신 말아서 피웠는데 그 향이 담배랑은 확실히 다른 것 같았다. 강도가 강하지 않았던 것인지, 그 친구들이 그만큼의 흡연량에는 이미 익숙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별다른 이상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듯이 그들은 그 담배를 말아 나에게도 권유했지만 나는 여행 중에 낯선 사람들이 주는 음식이든, 약을 받아먹지 않기로 결심했기에 완곡하게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마리화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우리가 흔히 마약 갱들의 원조라고 알고 있는 곳은 콜롬비아인데, 물론 그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이 밀유통하는 마약의 최대 수요처이자 목적지는 항상 미국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론 돈이 되니까 암시장이 형성되고 유력한 공급자도 생기는 것이지만, 마약의 유통의 흐름을 뜯어보면 결국 마약을 생산하고 사회가 병드는 국가 따로 이를 불법적으로 소비하는 국가 따로인 자본 예속적인 구조를 볼 수 있다. 멕시코가 활발한 마약 유통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해상 경로를 통해 미국으로 불법 유입되는 마약을 제외하고, 콜롬비아 포함 중남미 국가들에서 생산되는 모든 마약의 밀유통은 미국으로 향하기 위해 멕시코 국토를 거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런 시도를 해본 적도 없지만,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마약을 구하는 건 정말 누워서 떡먹기라고 한다.
어찌됐든, 과나후아또의 야경은 그런 마약의 효능을 빌리지 않고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언덕을 올라올 때는 동행 친구들과 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올라왔지만 이 멋진 야경을 뒤로 하고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또 걸음을 멈춰섰다.
독자 여러분들께 조금이라도 더 그 때의 감흥을 전달드리기 위해 자꾸만 새로운 사진들과 설명을 더해보지만, 역시 그 당시의 벅차오름은 글과 사진만으로는 전달에 한계가 있다. 나는 혼자 와서인지 연인이 너무도 그리워지는 여행이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중에 신혼여행으로 과나후아또를 다시 방문해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학기 중 시간을 쪼개서 했던 멕시코 국내 여행의 경우에는(이번 여행처럼) 한 지역에서 비교적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장소에서도 여러 아름다움을 볼 여유가 있었지만, 학기가 끝나고 콜롬비아를 시작으로 남미 여행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사실 별로 그럴 여유가 없었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싶었던 내 욕심에 비해 내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고, 남미라는 땅은 너무도 광활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여행의 이유나 목적이 어떻든 무조건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경험하는 것만이 능사를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물론 모든 도시가 그렇진 않겠지만, 바쁘게 이리저리 오가는 여행을 할 때면 늘 짧게는 2주, 길게는 2~3개월 정도 거주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도시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만약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행을 하는 분들이라면 꼭 그렇게 해보시라고 나는 적극적으로 추천드리고 싶다. 2박 3일 일정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들이 남미뿐 아니라 세계에도 너무 많은데다, 짧은 기간이나마 '살아보는 것'과 여행으로 '거쳐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도시, 혹은 그 나라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 지역, 문화, 사회, 사람들의 어두운 면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난 믿는다. 그리고 중남미 도시들 중에는 오랜 식민지 역사로 인한 한국의 '한(恨)'과 유사한 응어리진 아픔들과 복잡미묘한 정치∙사회 문제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얼룩진 곳들이 매우 많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이런 역사를 이해하려 하고, 그들을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여행의 수많은 의미와 목적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다음 볼 때까지
Hasta Luego, Guanajua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