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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 Descansador Jun 17. 2018

1. 멕시코로 향하는 길

El Primero Paso en México

1.


난 여행을 떠날 때마다 빠짐없이 표지 사진과 같은 사진을 잊지 않고 하나 이상씩 남긴다.

항공기 색깔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매번 그리 다를 것 없는 사진인데도 내게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설렘을 이만큼 잘 전달해주는 사진은 없는 것 같다. 


내가 탈 항공기가 도착하고, 이동식 통로(달리 뭐라고 불러야 할 지 잘 모르겠다)가 게이트와 항공기를 연결할 때 비로소 내 출국이 임박했음을 실감한다. 


이런 설렘과 함께 예외없이 떠오르는 장면도 있다.


16살 때 홀홀단신으로 미국으로 떠나는 길. 출국장에서 눈물을 보이는 어머니를 씩씩하게 안아드리고 게이트까지 잘 도착한 나였다. 하지만 보딩을 시작하고 기내 좌석에 앉을 때까지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렸다. 얼마나 서롭게 울었던지 내 옆좌석에 앉은 일면식도 없는 아주머니께서 내 사정을 묻고 나를 위로해주셨다. 감정이 비로소 진정되던 때, 공교롭게도 창가 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창가를 통해 보이는 우리 동네를 보고 2차 눈물을 터뜨렸다. 


그 때만 생각하면 항상 엷은 웃음이 나온다. 

각설하고, 내 최종 목적지인 과달라하라(Gudalajara)까지의 항로는 인천-L.A, 그리고 

L.A-Guadalajara였다. 아,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Los Angeles라는 지명은 스페인어다. 'Los'는 

복수형 관사로 영어의 'The'와 동일하며 Angeles는 모두가 아는 천사라는 의미를 가진 스페인어의 

복수형이다. 스페인어는 자음으로 끝나는 단어의 복수형은 예외없이 -es를 붙인다. 발음은 '로스 앙헬레스'이다. LA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텍사스의 수많은 지명이 스페인어이다.(San Diego, San Francisco 등이 그 예이다) 이는 해당 지역이 예전엔 멕시코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1846년부터 3년간 치러진 멕시코와 미국간의 전쟁의 결과로, 전쟁에 패배한 멕시코는 현재 미국의 영토 상 Arizona, California, New Mexico, Texas, Colorado 일부, Nevada, Utah에 해당하는 지역을 미국 측에 '양도'하게 된다. 이는 당시 멕시코 국토의 55%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한다.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고작 1,500만 달러를 제공했다. 






2.


L.A로 향하는 기내.


기내에서 숙면은 고사하고 조금이라도 '잠다운 잠'을 자는 것은 나에게 항상 참 어려운 숙제다. 

GPS 화면 상 확대된 항로를 지겹도록 바라보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에 스스로를 위로했다. 



비로소 도착한 L.A에서 나는 변함없이 위협적으로 고함치는 미국 공항 직원들과 마주해야만 했다. 

듣기로는 공항 내 테러리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선의의 피해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러한 방침의 일환으로 2명 이상이 모여서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하는 낌새가 보이면 직원이 와서 제재를 한다. 테러 공모를 방지하기 위함이란다. 


공항 직원들은 그저 앞만 보고 뒤쳐지지 말고 걸으라고 위협적인 고성으로 내 귀를 계속적으로 때렸다. 

강한 국가가 Rule을 지배한다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불쾌함은 그저 약한 나라 국민으로서 스스로 

다독여야 하는 컴플렉스와도 같은 것일까. 


미국의 까다로운 세관 정책으로 인해 나는 과달라하라로 향하기 전 내 짐을 찾아 다시 과달라하라로 보내야 했다. 짐을 찾아 직원에게 전달하고, 행선지 확인을 묻는 직원의 질문에 '과달라하라'라고 명확히 답했다. 그 직원은 다소 놀라는 눈치로 왜 그런 곳에 가느냐는 뉘앙스로 궁시렁댔다. 


게이트로 향하면서 이 곳이 정말 미국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스페인어가 들렸다. 허핑턴 포스트 2014년기사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의 약 40%가 라틴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비중은 뉴 멕시코 주 다음으로 미국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라틴계 비중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는 멕시코와 접경하는 주 중 하나인 만큼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멕시코에의 도착이 임박했음을 실감나게 해주는 가슴뛰는 전조와도 같았다. 



강한 국가가 Rule을 지배한다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불쾌함은 그저 약한 나라 
국민으로서의 스스로 다독여야 하는 컴플렉스와도 같은 것일까. 








3. 


그렇게 나는 L.A에서 3시간 30분 정도 비행기를 더 타고 내 최종 목적지인 Gudalajara에 도착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도착한 시간은 꽤 늦은 시간이었다. 드디어 멕시코에 내 첫걸음

(El Primero Paso)을 내딛었다는 생각에 늦은 밤에도 가슴이 진정하지 못했다. 


내 첫 번째 동행은 매우 감사하고도 특별했다. 내가 밤 늦게 도착하는 것을 걱정하신 아버지는 부랴부랴 10년이나 더 된 인연의 비지니스 파트너와 연락을 취하셨다. 그 분께 내가 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아버지를 말렸으나 한사코 괜찮다고 하시며 연락을 주고 받으시더니, 내가 도착하는 날 과달라하라 국제 

공항으로 픽업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셨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분이 사시는 곳은 Michoacán 주의 Morelia라는 도시(편도 3시간 거리)로 단지 나를 픽업하기 위해 그 먼 거리를 와주신 것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차를 타고 가며 오래된 아버지와의 인연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의 대화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가 멕시코로의 교환학생을 결심하게 된 계기, 그리고 

멕시코 사람들의 전반적 문화적 특성, 유명한 국내 관광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 분은 멕시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정이 많고 친절하다고 했다. 나를 픽업하기 위한 아저씨의 여정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그 말이 와닿았다. 대화들이 오가는 중 나는 내가 향후 약 4개월 동안 생활하게 될 

Jardín Real이라는 동네에 도착하였다. 


해당 거주 Community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게이트를 통과해야 했고, 외부인일 경우에는 보안관에게 신분증을 맡겨야만 했다. 그렇게 진입한 주택가는 한 눈에 보기에도 중상류층 이상이 거주하는 동네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진입 후 정확한 위치를 찾는 데 애를 먹긴 했지만, 무사히 도착했다. 

감사하게도 주인집 아저씨, 아주머니는 그 늦은 시간 불을 켜고, 문도 열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 두 분과 함께 출국 전 나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준 우리 학교 동문 친구가 나를 함께 맞아주었다. 


나를 위해 먼 길을 운전하신 아저씨에게 거듭 감사를 표하며, 머지않은 시일 내 Morelia 방문을

약속했다. 그렇게 아저씨를 배웅하고, 현관문은 닫혔다. 나 역시 긴 여정 끝에 나의 새로운 집에 드디어 도착했다. 


방을 안내 받은 후 간단히 짐을 푼 나는 그토록 그리웠던 샤워를 하고,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Mucho Gusto, México.

Buenas No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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