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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 Jun 28. 2020

오빠 후배

생각해보건데 그나마 나에게 특정한 어떤 동기가 있었다면, 오빠, 나의 하나 뿐인 친오빠가 한 부분일순 있겠다 싶다. 지금까지도 (오빠한텐 말한적 없지만)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제일 두뇌가 비상한 (다른 모든게 비상하지는 않다), 세상에 천재가 있다면 저러지 않았을까 싶은 (천재들에 대한 모든 스테레오 타잎, 예를 들어 잘하는 것 외에는 바보다, 등등을 포함해서) 나와 두살 터울인 오빠는, 어렸을때부터 얄밉게도 공부를 잘했다.


누구냐...넌....


그것도 나는 무언가 소위말하는 '엉덩이로 공부하는 스타일', 즉, 될때까지 일단 버티고 하면 되겠지 하는 무식한 스타일이었다면 우리 오빠는 그야말로 효율적인, 나보다 공부시간은 절반인데 성적은 더 잘나오는 그런 타잎이었다. 후에야 오빠의 공부방식을 넘겨 배워서 누구보다도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그게 얼마나 억울하던지.


아무튼 운명의 장난으로 모두의 사랑을 받던 그 -어렸을땐 심지어 예쁘장하게 생기기도 했고, 양가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른들 말씀을 잘 듣는데 이런 저런 희한한 자기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심지어 밴드 앨범을 낸 적도 있다)- 의 동생으로 태어나서, 지금 와 고백하자면 어떤 형태의 열등감 같은 것이 나한테 있었나 싶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고 같은 동네 학교에 배정을 받았으므로 당연스럽고 자연스럽게, 오빠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내가 이어다니고, 오빠가 다니던 중학교에 내가 갔는데 (고등학교만 다행스럽게도 오빠는 과학고 나는 여고에 간 관계로 이 연결고리가 잠시 끊겼었다), 입학을 하는 그날부터 그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 가라사대,


아 니가 xx이 동생이구나, 너도 잘해야지!


딱히 뚜렷한 장래희망 같은 것은 없었던 나에게(라고 쓰고 매년 바뀌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당시 유일한 미래의 목표는, 저 말을 반대로 만들어서 오빠가 어디갔을 때 ‘니가 xx이 오빠구나’ 소리를 듣게하는 것이 되어있었더랬다.


나야 나. 나라구.


나는 또 나름대로 적성검사를 하면 ‘경쟁심’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항상 등장하는 인간 유형으로, 중간 고사 기말고서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반친구들이 아니라 오빠한테 먼저 ‘오빠 성적 어떻게 나왔어’를 묻곤했었다.


오빠가 과학고에 입학하자 나의 적성이 전혀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학고에 가겠노라고 준비를 하다가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에 생긴 천만다행한 일중의 하나이지만) 인생 첫 고배를 맛보기도 했다.


다행히 적성대로 문과 트랙으로 서울대 경제학부에 합격하던날, ‘예전 시골에서는 서울대 공대는 몰라도 상대갔다하면 잔치했다’시던 아버지의 말씀과 표정을 아직까지도 기억하는걸 보면(들었니 오빠야?), 오빠의 성적과 진학이 그리고 그렇게도 지기 싫어했던 내 성격이 ‘서울대’를 원하게했던 주 요인 중 하나인건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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