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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 Jul 19. 2020

서울대가 가르쳐주지 않은 것

너는 뭘 좋아하니?


선생님 말씀 어른들 말씀을 찰떡같이 잘 듣고, 선배들 말도 잘 듣고, 학창 시절 내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교과서 구석구석 모르는 게 없었던 나는 저 질문의 답을 알지 못했다.


외국 친구들을 처음 만나 조금만 친해지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묻는 저 질문이 처음엔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모른다. (사실 지금도 다소 그렇다) 그들에게는 ‘오늘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났어?’와 같이 답하기 쉽고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물론 늦잠 자는 걸 좋아하고 김치를 좋아하고 이런 것도 포함이지만 결국 저 질문에 답을 하려면 나는 적어도 이런 것들을 치열하게 고민해왔어야 했다.


‘너’는 다른 사람들과는 어떻게 달라?

‘너’는 어떤 필요와 선호를 가지고 있어? (물론 그걸 파악하느라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을 거야 응?)

그래서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무엇이, 그리고 어떤 순서로 중요해?

너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거지?


앞 글에서 서울대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도 아직 자라고 있는 과정일 것이다. 식민지 시대와 내전을 거치고 정말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문제였던 시절이 불과 60-70년 전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굶어 죽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욕구나 행복 따위가 일차적인 문제였을 리 없다. 할 수 있는 한 균일하고 사고 안 치고 말 잘 듣는 다수의 평균적인 노동자를 빨리 양산해내서 나라 전체의 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려놓는 것이 당시 우리나라에 필요한 교육목표였을 것이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어랏 그러고 보니 이게 다 누굴 위한 거였지 하는 생각이 사람들마다 든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먹고 살만은 해졌다는 얘기일 수 있다.


일단은 먹고 살아야한다


나와 친한 스페인 친구 하나는 내가 회사에서의 고충이나 보스가 나를 불합리하게 대한 일 따위를 얘기하면 이렇게 말한다.


‘니 잡이 널 행복하게 하지 않으면 그만두면 되지’


딴에는 당연한 말이라 처음에는 반박을 못하고 집에 돌아와 왜 저게 맞는 것도 같은데 틀린 말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다음번 비슷한 얘기를 들었을 때는 이리 말해줄 수 있었다.


‘봐봐 너네는 세계에 식민지를 두고 왕정에 머에 잘 먹고 잘 산 게 벌써 몇백 년이야. 막말로 너야 지금 잘려도 너네 정부에서 연금을 줄 거고, 네가 실업수당으로 받는 그 돈이 한국 웬만한 회사 월급보다 많을 수도 있어. 더군다나 너네는 일하다 몇 년 쉬고 여행을 다녀도 그게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힌 경력으로 쳐주잖아. 너야 뒤로 넘어져도 많이 안 깨질걸 아니까 그럴 수 있겠지만 우리한테는 그만큼의 선택권이 없어’


아직은 졸부에 가까운 한국의 현실에서 한번 아차 했다가 일어나기란, 대대손손 부잣집이었던 나라에서 잠시 ‘재충전’을 하고 나아가는 것과는 안타깝지만 차이가 있고, 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단기간에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짠하게도 내내 ‘내가 하고 싶은 일’ 보다는 ‘우리 사회’를 위해 '네가 해야 하는 일’에 가치관이 맞추어진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와서도 모범생의 버릇을 버리지 못한 채로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성실하게 통근버스에 오른다.


나의 외국 친구들은 내가 평균적인 말잘 듣는 인재가 되기 위해 15시간씩 의자에 앉아 언어영역 공부를 하고 미적분을 공부하고 시험을 잘 보는 법을 마스터하는 동안, 바로 저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학습을 먼저 시작했다. 하루 15시간씩을 의자가 아니라 세상과 부딪쳐보면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고 궁극적으로 자기가 누구이고 무엇을 중요시하고 그렇지만 무엇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지를 고찰하는 것이 ‘학습목표’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런 게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포용력을 키우고,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내가 원하는 행복이란 어떤 모습이고 그것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그러려면 스텝별로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파악해 나아간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행복’이 저절로 주어질 리 없다. –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좋은 학교를 졸업하면 행복해진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행복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과 연습과 노력을 거쳐야 그나마 비스므레하게라도 올까 말까 하다. 그나마 그 작은 찬스를 잡기 위해 세계의 경쟁자들은 먼저부터 치열하게 노력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착하게 말 잘 듣는 아이로 자라는 동안.


말 잘 듣는 아이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 길을 잃고 만다.


목적지를 알아야 GPS를 찍지


그래서 나는 이제 곧 우리나라의 교육이 모두가 너무 많이 지치기 전에, 개개인 모두를 소중히 여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갔으면 좋겠다.  ‘이 문제들만 다 풀면 로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보다야, '조금만 더 치열하게 고민을 해보면 내가 조금 더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가 좀 더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는 명제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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