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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 Jul 18. 2020

관악의 자존심

대학생이 되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중의 하나는 교환학생이 되어 낯선 나라에서 노랑머리 곱슬머리 파랑 눈 하얗고 검은 피부의 아이들과 공부를 해보는 것이었다. 매우 토종으로 자란 나는 아마도 어렸을 적 아버지가 출장길에서 사 오신 엽서며 사진책들을 보며 외국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 들었지만, 99학번의 그 시절만 해도 서울대는 교환학생 협정이 맺어진 학교가 많지 않았다. 시대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당시의 다른 대학교들과 비교해도 훨씬 더 부족한 수준이었다. 교류가 있는 경우도 보통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나라들의 대학에 소위 말하는 ‘우리의 지식을 나눠주기 위한’ 자매결연 같은 것은 있었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세계적으로 더 알려져 있는 학교들과의 교류는 깜짝 놀랄 정도로 적었다.


이런 그림을 원했던 말이지


그 자세한 사정을 정확히는 알 도리가 없지만, 까놓고 말해 서울대 스스로 우리가 너무 잘났다고 생각해서, 즉 그다지 그렇게 교류를 하지 않아도 우리의 교육이 충분하므로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다는 불만이 학생들 사이에서는 지배적이었다. 국민 모두가 말 그대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민총생산을 세계 10위에 끌어놓는 동안, 나라의 최고 대학이라고 으스대면서도 2019년이 되도록 세계 대학 랭킹의 50위권 안에도 못 들어가는 대학으로서는 심히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간 행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에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가 한국을 넘어서 인기를 얻었을 때, 드라마 내용이 씁쓸한 한편 내심 반가웠던 측면도 있었다. 드라마이므로 많이 과장되긴 했지만,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간 좋았던 학교를, 내가 겪었던 인간미 없는 대입을, 나 대신 설명해주는 드라마였으므로. 한국에서야 서울대라면 알지만, 외국에 살면서 나의 백그라운드를 설명할 때 서울대를 나왔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상관이 없지만 이력서 한 줄을 놓고 경쟁을 해야 하는 프로페셔널한 상황에서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반만 했어도 들어갔을' 다른 외국대학 출신들이 단지 잘못 알려진 네임밸류 때문에 더 우월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 여간 억울한 일이 아니다. 나는 졸업 몇 년 후 미국 학교에서 MBA를 했는데, 그 이후에는 자기소개를 할 때 학교를 설명하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미국 아이비리그 학교 MBA에 가는 일이 서울대에 가는 것보다 열 배쯤은 쉬웠다.


서울대는 사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세계적'일 수 있는' 학교이다. 특히나 교수진의 자질을 보면 '한국에 돌아와 주신 것이 감사할 정도인'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계셔 주시지도 않을' 엄청난 수준의 학문적 업적과 지도자로서의 자질, 그리고 무엇보다도 애국심과 소명감을 갖추신 분들이 많았다. (요즘 논란 많은 그분들도 계시지만 나를 가르쳐주신 스승들에 대한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대입이라고 하는 일차 관문을 끈기 있고 성실하게 통과해 들어온 대부분의 동료 학생들은 지적 수준에서도 학습능력에서도, 심지어 노는 데에서도 빼어난 아이들이었다.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학교의 인지도에도 불구하고도 나중에 유학하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서울대생들을 가르쳐본 외국 교수님들이나 같이 공부해본 경험이 있는 외국 친구들은 아 너 서울대 나왔구나 하고 기대치를 수정하는 경우를 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국립대로서의 지위와 국민들의 세금 덕분에 학비도 싸고 장학금도 많아서 의지가 있는 학생이라면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기반도 갖추어져 있다. 훌륭하신 졸업생 선배들이 많은 덕에 의미 있는 강연도, 멘토쉽이나 인턴 기회 같은 것도 상대적으로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카이캐슬'의 도움이 없이는 학교의 밸류를 설명하기가 어려운 데에는 서울대와 서울대 졸업생들의 책임이 있다.


누군가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서울대생이라면 누구나 가슴 뛰며 자랑스러워하는 말이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특권보다는 무게와 책임을 주는 말로 들린다. 누군가가 그렇게 바라보았을 때 그 위치에 있어야 할 마땅한 모습을 우리는 만들어 가고 있는가. 저 말이 나왔을 때는 한국이 아직 전쟁을 거치고 '잘 살아보자' 노력할 때쯤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2020년이 되도록 여직까지도 새마을 운동적 생각을 스스로의 한계로 정해두고, 한국 일등으로서의 편안한 현실에만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계의 어느 누구도 인류의 미래를 물을 때 관악을 바라보지 않는데 말이다.


이 산의 정상이 길의 끝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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