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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바람 Mar 24. 2021

회사원으로 살아가기 싫다고 생각했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자 숨이 턱 막혔다.


가뜩이나 과부하가 걸려있는 팀원들에게 업무적으로 더 부담을 지우자는 결정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마 한 마디쯤은 했던 것 같다. 우리들은 지금도 힘들다고, 그리고 다들 열심히 하고 있다고


사실 그런 주장은 결정권자들에겐 늘 듣는 진부한 추임새쯤에 불과하다. 


‘회사가 바빠서..’ , ‘일이 많아서..’ , ‘요즘 같은 때에...’라는 말들이 때로는 비인간적으로도 느껴지는 모든 부당한 일들에 대한 면책조항인 것만 같다.


이제 갓 사회에 발을 내디뎠던 27살. 난 회사란 곳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나에게 어느 날 팀장님이 말했다. 


"모 대형마트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어땠는 줄 알아? 퇴사율이 지금 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높았대. 뭐 하나 갖춰진 게 없었거든. 본사는 신규 지점을 내는 데에만 급급했었고 당연히 인사제도는 뒷전이었겠지 그런 상태에서 복지는 뭐 바랄 수도 없었을 테고.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업무강도에 잘리는 사람도 많았고 퇴사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 와중에 경영진들은 뭘 계산하고 있었는 줄 알아? 모든 지점들의 땅값을 계산하고 있었어 땅값의 상승률만 해도 적자가 나지 않았다는 거야.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위치가 달라지면 눈높이가 달라져 지금 네가 보는 것과 저 사람들이 보는 건 그만큼 큰 차이가 있다는 거야.”


그땐 그렇구나 했다. 


내가 아직 이 정도의 위치여서 이 정도의 사고밖에 못하는구나 했었다.


그리고 서른을 바라보던 29살 난 다시금 팀장님의 말을 떠올렸다. 


‘회사는 사람을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들은 나에게 연봉을 주었고, 계약서에 적힌 그 숫자들은 1년간 나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였다.


‘다음 분기의 숫자는 이번 분기의 숫자보단 커야 한다.’


당연한 공식이었다. 그리고 그 공식엔 나와 우리 팀원들 그리고 회사 전체의 직원들이 들어가 있었다.


그때부터 했던 생각인 것 같다. 


‘회사원으로써 살아가고 싶지 않다.’


회사의 모든 일엔 우리의 흔적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내가 마치 이 일들을 진행하고 있다 라는 착각을 주었다.


사실 우린 회사를 위해 일했고, 임원을 위해 일했다. 


그 모든 일들은 회사에서 진행하는 일이었고 결정권자들이 주체가 되는 일이었다.


우린 그 일을 완성시키기 위한 ‘수단’쯤 되었을까.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도구’쯤 되었을까.


아버지를 도와 공장일을 했을 때가 생각났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보다 더 고됐고 육체적으로 더 힘든 일들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당시에 난 하루하루 일하는 것이 즐거웠던 것 같다.


50이 넘은 아버지의 새로운 도전에 그리고 어쩌면 우리 집안의 가업이 될지도 모르는 일들에 보탬이 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일을 하는 기쁨이구나 하고 느꼈었다.


그때의 나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매일 무엇인가에 끌려가듯 회사에 출근하는 내가 아니었다.


왜 그럴까 생각했다.


그때만큼 힘들지 않은 것 같은데 난 왜 이토록 가슴이 메말라간다고 느끼는 것일까 생각했다.


주체성이 없었다.


내가 쓰고 있는 수많은 보고서들에, 허구한 날 진행되는 수많은 회의들에, 품의서에, 미팅에, 계약에.. 


주체성이 없었다.


난 남의 일을 해주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최소한’ 사람답게 살아갈 만큼의 돈을 받았다.


모든 일의 주체는 결정권자들의 펜 끝에서 나왔다.


그리고 유의미한 의미를 가지는 숫자들도 그들의 펜 끝에서 나왔다.


그들은 유능했고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들이 나와 다르게 느껴진 것은 비싼 차와 비싼 집, 비싼 슈트 따위가 아니었다.


주체성이었다.


그리고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기업에서는 더 이상 많은 수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전처럼 많은 고용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회사의 수익률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더 잘 나가는 회사들도 생겨난다.


어쩌면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기 쉬운 사회가 도래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깜빡이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생각했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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