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이었을 것이다. 계곡 초입부터 안쪽까지 숲길이 길게 이어졌다. 우거진 숲길은 대낮에도 햇빛이 차단되어 은은하게 어둠이 깔렸다. 산속 깊은 데서부터 단풍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붉게 물든 잎들은 계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땅으로 내려앉거나 혹 불어오는 갈바람을 핑계로 우수수 무더기로 무너져 내렸다. 재잘대는 사람들의 말소리에도 새침해 마지않던 노란 참나무 잎이 낙엽 밟는 소리에 흠칫 놀라 떨어져 내리기 일쑤였다. 들어오는 사람들의 행렬과 빠져나오는 이들의 행렬은 때로는 질서 있게 이어지다가도 어느 틈엔가 꼬여 낙엽처럼 어수선하게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길게 늘어섰다.
"망개에 떠억~! 찹싸알 뜨어억!"
행렬들 너머 어디선가 망개떡장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두리번거렸지만 여전히 모습은 없이 목소리만 수풀 사이로 바람처럼 들려왔다. 망개떡장수라니 마침 시장기가 동하던 차에 잘되었다 싶어 발걸음이 빨라졌다. 얼마쯤 후에 망개떡장수의 모습이 눈에 잡혔다.
그는 손수건을 두른 머리에 낡은 모자를 대충 맨 키가 작은 남자였다. 어깨에는 제법 기다란 장대를 둘러맸는데 장대 양 끝에는 한 말 들이쯤 되어 보이는 유리 상자를 매달고 있었다. 나무로 뼈대를 짜고 유리를 끼워 넣은 것으로 모래시계나 등잔이 담겨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돌들이며 낙엽들이 쌓인 산길을 걷느라 몸이 분주했지만 유리상자는 흔들림 없이 고요하게 공중에 떠있는 듯했다. 유리상자 안에는 명감나무 잎으로 싼 것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아직 오후 한 낮이니 저 위 계곡 위 어디쯤에선가 만들어서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길인가 싶었다.
그를 불러 세우고 아버지는 망개떡과 다른 팥떡을 샀다. 망개떡을 곱게 싼 명감나무 잎을 펼치자 그 안에는 까만 흑임자 가루를 뒤집어쓴 경단이 마치 흑진주처럼 들어앉아 있었다. 달콤했다. 부드러웠다. 살살 녹았다. 망개떡장수는 어느 틈에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양쪽 끝에 유리 상자를 달아맨 기다란 장대에 그가 달려서 날아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흔이 넘어서 나는 경상도 어디서 보내온 망개떡을 맛보았다. 맛이야 나무랄 데 없이 좋았지만 어릴 때 숲 속에서 먹었던 그 망개떡은 아니었다. 경상도 망개떡은 하얀 떡 안에 팥앙금을 담은 것이었다. 까만 경단이 아니었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지방마다 만드는 방법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간혹 내가 사는 집 골목에서도 망개떡이며 찹쌀떡을 사라고 외치는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사러 나가지 않았다. 숲 속에서 사 먹었던 그 망개떡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숲 속의 망개떡장수는 이미 고인이 되었을 것이다. 살아 있다고 해도 더 이상 망개떡을 팔러 기다란 장대를 어깨에 메고 숲 속 길을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해마다 내장산 숲길은 가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나뭇잎들이 우수수 내려앉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