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부러진 간호사
어쩌다 가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국민학교 이학년쯤 피리독신을 처방받아 육 개월인지 일 년인지 꽤 오래 먹었다.
키가 작고 똑부러진 성격의 그녀는 아는 후배의 어머니였다.
알토란 같은 이미지의 그녀는 늘 머리를 뒤로 쪽지고 안경을 쓴 사감 선생 이미지였다. 일에 대해서만큼은 헌신적이었다. 딸 하나와 아들을 두었다. 딸은 또래 남학생들에게 제법 주목받았다. 아들은 어딘가 병약했다. 진료소(그때는 결핵원이라 불렀다)는 늘 환자들로 붐볐다. 언덕배기 중턱에 있었던 그곳은 화강암 돌담 안에 자리한 벽돌 건물이었는데 커다란 나무 출입문이 달려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그곳에 가서 진찰받게 했다. 약을 먹고 병은 나았지만 뢴트겐 사진에는 폐 한쪽에 콩알만 한 크기의 병흔이 남았다.
배정받은 중학교가 진료소에서 멀지 않았다. 자전거로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병이 나은 뒤로는 그곳에 갈 일은 없었다. 그래도, 그녀가 이웃 동네에 살다 보니 이러구러 마주치는 일은 간혹 생겼다. 그녀에게 흰머리가 돋아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빈번함이었다. 어머니는 그녀와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내가 세 살쯤 아래의 그녀의 딸을 좋아하는 것이나 아닌지 신경 썼다.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전도사와 결혼했다.
대학교 때인지 졸업 후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시장에서 마주쳐 그녀에게 인사했다. 제법 흰머리가 늘었지만 금테 안경 너머의 눈매며 선명한 말투며 몸놀림은 젊은 시절 그녀에서 한 치도 달라짐이 없었다. 그녀의 환자들은 제대로 관리받고 있을 터였다. 어머니는 일흔둘에 홀연히 소천했다. 생존한다면 그녀도 지금 쯤 여든에 가까운 나이일 것이다.
진료소는 이제 기독교 역사박물관으로 변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