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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Oct 29. 2019

레코드 감상실

D 교수


풍채 좋은 그는 목소리가 걸걸했고 목소리만큼이나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부인은 아담하고 늘 웃는 얼굴의 고운 여인이었다. 어려서부터 보아온 터라 서로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건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 그 부인에게 피아노를 배우러 다시 다니게 되면서부터였다. 어느 날인가 레슨이 끝날 무렵 그는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며 그의 서재 겸 레코드 감상실로 나를 불렀다. 꽃들이 가득한 마당을 둔 일자형 한옥 옆에 네 평 남짓한 별채를 내어 자신만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날 후로 한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별채로 가서 레코드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또 하나의 레슨이 되었다. Walter Carlos의 Switched on Bach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Martha Argerich를 비롯해 많은 연주자들의 피아노 음반과 여러 오케스트라의 음반을 들었다. 별채의 이점 중 하나는 오디오 볼륨을 높여도 시끄럽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한 번에 레코드 서너 장 정도를 골라서 듣곤 했다. 벽면 한쪽을 거의 채운 그의 컬렉션은 주로 클래식 음반이었고 나는 그중 얼마를 들었다. 평소 아버지는 학연과 배경을 내세우는 듯한 그의 태도를 마뜩잖아 했지만, 내가 그의 별채에 드나드는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968년 오리지널 버전의 커버


그는 나보다 두어 살 위의 큰 딸을 비롯해 딸 넷을 두었고 늦둥이로 아들을 얻었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 아들인 나를 마치 아들처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음악을 꽤나 듣는다는 걸 알고 이것저것 자신의 레코드 컬렉션들을 내놓으며 음악적 교감을 즐겼다. 나 역시 그에게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 얼마 후 그는 자신이 부재중이더라도 개의치 말고 들어와서 음악을 들으라며 부인에게 내가 원하면 열쇠를 건네주라 일렀다. 평소에 그는 서재 문에 자물쇠를 채워두었던 것이다. 부인도 피아노를 전공했고 큰 딸도 음대를 나왔지만 그의 집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은 그 혼자였던 것일까? 대학 2학년 때 피아노 독주를 끝으로 나는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자연스레 그의 집에 갈 일도 없어졌다. 대신 나는 시내의 단골 레코드 가게와 음악감상실을 전전했고 나만의 레코드 컬렉션을 늘려갔다.


아버지는 72년 지은 일층 양옥집에 82년인가 83년 아홉 평 되는 방 둘을 이층에 덧 지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서재와 손님방으로 쓸 요량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주로 사용하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방 둘 중 하나는 손님용 사랑채 비슷하게 썼고, 안쪽 방은 내 공부방 겸 음악감상실이 되었다. 컬렉션은 늘어갔다. 나는 친구며 선후배들을 불러들여 그가 내게 했던 것처럼 레코드를 들려주고 감상을 나누며 커피를 마셨다. 한두 번 아버지는 레코드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거들었지만 그뿐이었다. 아버지가 레코드를 들은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주로 재즈였다.


그가 대학을 은퇴한 뒤 나는 거의 그를 만나지 못했다. 여전히 그는 음악 감상을 즐겼을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조문 온 그는 구부정해졌고 잘 걷지 못했다. 손이 떨리니 이제는 아들이 전축에 레코드를 걸어주어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레코드를 듣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에게 한 마지막 말은 건강을 기원한다는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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