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께서는 60세에 치매로 돌아가셨다. 80세가 넘으신 엄마도 현재 치매다. 치매 걸린 엄마는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엄마의 치매 증상은 불현듯 시작되었다. 4년 전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려던 즈음이다. 밤 10시, 갑자기 울려 퍼지는 전화 벨소리에 깊은 잠에서 깼다. 이 시간에 오는 전화가 좋은 소식일 리 없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전화기를 찾았다. 아버지의 전화였다.
아버지께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절대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지 않는다. ‘여보세요’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노여움에 찬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니 엄마가 제 정신이 아닌가보다. 누가 뭘 훔쳐갔다고 하루 종일 난리다.
훔쳐갈 사람이 어딨냐고 했더니 대번에 눈물 바람이다.
얼른 집에 와봐라. 내가 못 살겠다.?”
‘이게 무슨 일이지?’
집히는대로 옷을 꿰입고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불호령에 남동생도 이미 와있었다.
외할머니께서는 60세에 치매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 기억을 붙잡고 살았던 엄마는 언제 내가 그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는 걱정을 안고 있었다. 종종 나에게 외할머니가 일찍 치매에 걸려 길도 못 찾고 그랬다고 얘기를 하셨다.
그 불안이 현실이 됐다는 것을 직감한 걸까. 소파 한쪽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엄마가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엄마가 눈치를 보며
“누가 내 돈을 훔쳐갔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도대체 이 집에 누가 들어와 돈을 가져갔다는 거야”며 소리쳤다.
부모님의 성격은 정반대다.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다. 강단이 있으며 권위적이고 조금은 당신 위주이다. 엄마는 느긋하다. 사람들이 순하게 보는 게 싫다고 하지만 겉과 속이 모두 유순하다. 자식들한테도 거의 싫은 소리를 못한다. 엄마의 그간 세월은 남편과 자식들에게 희생한 삶이었다.
동생과 나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이불, 매트리스 아래부터 뒤지고 장롱 안에 있는 것을 다 꺼내서 하나하나 살폈다. 침대에서 돈이 나오긴 했다. 백만 원 정도였다. 엄마는 그때까지 스스로 은행 거래를 한 적이 없다. 돈이 있으면 그냥 여기저기 쑤셔 넣은 듯하다.
돈 나왔다고 하니 그 돈이 아니란다. 정확히 액수는 모르지만 오백만 원 정도 되는 돈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누가 집에 그 정도 돈을 숨겨 놓을까. 엄마가 잊어버린 돈의 액수가 맞기는 할까?’
이미 아버지의 호통 소리에 깨져버린 밤, 몇 시간을 뒤졌지만 돈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또 가서 뒤집었다. 며칠 동안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뭔가 징조가 심상치 않았다. 엄마는 히스테릭하게 화를 내기도 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했다. 어찌할 수 없는 울화인지 울음을 터트리곤 했다.
먼저 가까운 신경정신과에 갔다. 이것저것 묻는 의사의 질문에 너무나 대답을 잘하는 엄마, 의사는 큰 병원에 가서 제대로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그래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대학병원 예약이 석 달 후로 잡혔다. 그 석 달 동안 엄마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요양병원에 가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하고, 잘 울었고, 외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드디어 진료 날, 검사는 세 시간여 진행됐다. 대통령을 묻는 질문에 현재, 전대, 전전대까지 잘 대답했고, 구구단도 막힘이 없었다. 답을 하는 것을 보면 정상에 가까워 보였다.
이런저런 검사가 끝나고 최근 증상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나누었다. 의사는 엄마의 엄마가 치매에 대한 병력이 있어서 좀 더 세밀한 피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일주일이 지나 피검사 결과가 나왔다. 증상으로는 치매 초기이지만 치매 가능성이 높은 유전인자를 보유하고 있어서 지금부터 치매약을 꾸준히 먹어야 한다고 했다.
초기에는 엄마의 증세가 꽤 심했다. 집 대문 비밀번호를 잊기도 하였고 자주 가는 길을 몇 시간을 헤맨 적도 있다. 장 본 것을 맡기고는 그냥 집으로 오고,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의심하고 누군가 집에 들어와 고추장을 가져간다고 화를 냈다.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데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우리는 엄마에게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엄마가 화를 내면 달랬고, 길을 잃으면 모시러 갔고 장바구니를 놔두고 오면 같이 찾으러 갔다. 아버지도 함께 노력했다. 가끔 욱하는 성격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점차 엄마에게 화를 내는 횟수가 줄었다. 아버지는 “니 엄마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말을 수시로 한다.
점점 상황이 좋아졌다. 이제는 엄마 스스로 “내가 약을 먹었냐?”고 묻고는 매일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대문 비밀번호를 잘 기억하여 집에 들어오는 데도 문제가 없다. 의심의 씨앗이 있기는 하지만 뭐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덜 한다.
엄마는 갈수록 행복해 보였다.
지난 설날에 온 식구가 다 모였다.
엄마가 손녀를 보고 “좋은 대학 가야지”하며 덕담을 건넸다.
“엄마 세연이 이미 대학생이야”
“아, 그래”
“넌 세연이니 소윤이니?”
“얜 소윤이야”라고 엄마가 물으면 10번이라도 답을 했다.
그동안은 세뱃돈을 준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손자 손녀들에게 오만 원씩 척척 쥐어 준다.
다 큰 자식들에게도 세뱃돈을 준다.
“내가 너한테 세뱃돈 줬냐”
나는 일부러 “엄마 난 안 줬어” 하고 떼를 쓴다.
“준 것 같은데...”
“아휴 더 받을 수 있었는데 안 속네”
‘내가 모를 줄 알았지’라는 표정으로 웃음짓는 엄마, 엄마가 행복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