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소리, 사이프러스 나무, 그리고 라벤더
스위스 제네바에 살면서 이웃나라인 프랑스를 수시로 들락거리고 프랑스인들을 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서 깊이 빠져들었다.
거의 한 달에 한두 번꼴로 프랑스로 여행을 가는데 아직도 못 가본 곳이 가본 곳보다 많다는 사실에 설렘을 느낀다.
유럽에 살기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파리가 다인줄 알았던 나다. 파리만 갔다 오면 프랑스라는 나라를 다 본 줄 알았다.
파리하면 엷은 갈색을 띤 통일된 스타일의 우아한 건물들, 온갖 브랜드들은 다 찾을 수 있는 쇼핑의 천국, 유명한 예술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뮤지엄들, 무수한 공연과 전시회들, 그리고 파인 다이닝까지. 대도시의 혜택을 다 갖고 있으면서도 시크한 파리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수 있다.
분명 파리지앵들은 공감하지 않겠지만 내가 여기서 만난 프랑스인들은 파리는 프랑스가 아니라고 농담조로 말한다. 말인즉슨, 파리 바깥에 볼 것이 더 많다는 이야기이다.
뉴요커들이 뉴욕은 미국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치다.
내가 파리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으나, 나에게 파리는 대도시가 주는 혜택이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고 공연과 전시의 쉬운 접근성, 그리고 쇼핑) 도시자체의 아름다움보다 더 크고 강한 거 같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가본 프랑스 곳곳의 작은 마을들이 나에게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매력을 더 느끼게 하고 흥미롭다. 특히나 프로방스에 위치한 작은 마을들이 그렇다.
프랑스 동남부에 위치한 프로방스에는 제네바에서는 차로 4-5시간 걸리는데 올해만 벌써 4번 갔다 온 거 같다. 따뜻한 햇빛과 좋은 음식, 편한 휴식이 필요할 때면 가서 며칠 조용히 쉬다 온다. 몇 번을 가도 아직 안 본 마을들이 많고 또한 계절에 따라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에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곳이다.
올해 7월 초에는 라벤더도 볼 겸 제네바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커플에게 프로방스도 구경시켜 줄 겸 다시 놀러 갔다.
프로방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Laurier- rose 한국말로는 협죽도, 이 꽃나무가 흰색, 분홍색, 자주색 곳곳에 피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Cypress tree (사이프러스 나무 - 길쭉한 상록 침엽수), 올리브 나무, 그리고 나폴레옹이 자기 병사들이 시원하게 쉴 수 있도록 심었다는 platanus (플라타너스)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자연환경에 너무나 잘 어우러진 프로방스 스타일 집들도 쉽게 보인다.
프로방스에 가면 그 조용하고 슬로우한 라이프에 나도 같이 온몸이 나른해진다. 특히 매미 우는 소리는 이 풍경에 너무나 어울리는 배경음악이다. 그냥 나무밑이나 수영장 옆에 누워서 로제 와인이나 홀짝거리면서 하루종일 누워있고 싶어 진다.
프로방스에 사시는 분들께 여기의 삶은 어떠냐고 물어보면
‘날씨는 항시 따뜻하고 풍경은 아름답지만 여기 프로방스 사람들은 정신자세가 안되어있다. 너무 게으르고 느리다.‘ 하신다.
이 말을 들으면 나의 한없이 게으르고 싶은 마음을 들킨 듯 뜨끔한다. 나는 사실 여기 사는 사람들이 게으르고 느린 것이 이해가 아주 잘 되기 때문이다.
원래는 7월 중순이 라벤더 시즌이라는데 날씨가 더워지면서 점점 기간이 당겨졌다. 7월 초인데도 이미 어떤 라벤더 밭은 수확을 한걸 볼 수 있었다. 차를 타고 프로방스를 돌아다니면 여기저기 쉽게 라벤더밭을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Valensole이라는 라벤더로 유명한 작은 마을이다. 그쪽으로 가는 길은 끝없는 라벤더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연보라색꽃과 같이 수놓아져 있다. 사진에서만 보던 그 끝없이 펼쳐지는 보라색 라벤더밭을 실제로 보니 너무나 황홀했다. 그리고 그 라벤더를 손으로 문지르면 진한 향이 손끝에 남는데 온몸이 릴랙스 되는 느낌이다.
연달아 Oh my goodness, It’s magical, dreamy, unbelievable, beautiful, c’est magnifique, incroyable 등등 아는 영어 불어 온갖 감탄사를 외치면 이미 가장 유명한 라벤더필드에 도착해 있다. 도착해서 보니 이미 몇몇 사람들은 사진사까지 대동해서 포즈를 잡고 있었다. 그것도 하얀 드레스를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 그리고 양산까지 들고 말이다.
끝없이 펼쳐진 라벤더 밭, 특히 우리가 차를 세운 곳은 언덕이 있는 필드였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일어나는 라벤더 물결, 그 위에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라벤더 필드 옆으로 보이는 밀밭들과 뜨문뜨문 떨어져 있는 나무들. 그 공간에서의 경험이 너무나 강렬해서 아직도 그때 느꼈던 감정과 이미지가 머리에 맴돈다. 5월에 놀러 갔었을 때는 Poppy (양귀비) 꽃들이 빨갛게 펼쳐져있었는데 몇 달 사이에 이렇게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Valensole을 가기 전 Gorges du Verdon (베르동 협곡)을 들려서 뱃놀이를 했다. 작년에 놀러 왔을 때는 심각한 가뭄으로 강의 밑바닥이 다 드러났었다. 또한 협곡사이에 흐르는 강의 수심이 깊지가 않아서 배를 타는 것이 금지되었는데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다행히 보트를 탈 수 있었다. 베트남을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왠지 사진에서만 보던 베트남에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절벽으로 둘러싼 곳에서의 뱃놀이였다.
보트를 타기 전에 간단하게 바게트와 고트치즈, 파테, 그리고 맥주를 미리 근처 슈퍼마켓에서 사 와서 보트에 실었다. 우리가 보트를 렌트하러 갔을 때는 그중 사이즈도 가장 크고, 안에 테이블도 있는 나름 가장 팬시한 보트 한대만 당장 렌트가 가능했다. 이 보트를 운전해서 협곡으로 향하는데 남들보다 좀 더 큰 보트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이목이 느껴졌고 종종 카누를 타는 학생들이 자기도 같이 맥주 하면서 보트 타면 안되냐고 장난 삼아 물어오기도 했다. 그 전날 Saint Tropez (상트로페) 갔는데 거기서 본 어마어마한 슈퍼요트들과 그 선박 위에서 사람들이 파티를 하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친구들과 ’이래서 사람들이 큰 요트를 타나 보다‘ 하면서 깔깔거렸다. 사실 우리가 빌린 보트는 그런 슈퍼요트에 딸린 비상용 배쯤 밖에 되지 않지만 말이다.
두시간 정도 보트 위에서 먹고 마시고 놀다보니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보트는 다시 선착장쪽으로 달리지만 마음은 아직도 강에 둥둥 떠있는 거 같았다.
같이 간 친구커플도 너무나 즐거워했고 이날 하루 가이드를 한 우리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같이 공유할 수 있어서 기뻤다. The more, the merrier 말처럼 말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밤새 울던 매미소리와 길가에 심어진 사이프러스 나무들, 그리고 라벤더 향기가 그리워진다. 9월에 가족들과 다시 프로방스를 놀러 가는데 9월의 프로방스는 어떨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