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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issa Sep 17. 2023

20대 그 치열했던 캐나다 대학 생활

제네바에서 다시 만난 나의 대학 동창 C양

작년 이맘때 대학교 동창을 제네바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Thanks to 인스타그램!  졸업 후 거의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이 한 명 한 명 커넥트 되었고, 그중 한 명이 제네바에 출장 온 것을 포스팅으로 알게 되고 급하게 만남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 아내 그리고, 버뮤다 지사 스위스 은행의 CFO를 맡고 있는 C양은 캐나다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 나를 정말 많이 도와줬던 친구다. 이 친구가 없었으면 내가 졸업을 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고마운 친구다. 학교를 졸업한 지 십여 년이 훨씬 지났지만 우리는 만나자마자 마치 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대학생활 때 힘들었었던 것을 토로했다.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졸업한 게 정말 다행이야.”

“그때 정말 졸업 못하는 줄 알았어.”

“그래도 그때 살아남아서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거잖아 :)”


캐나다에서의 대학생활은 기대했던 청춘의 낭만은 없었고, 학기 때는 수업, 도서관, 기숙사 세 곳을 무한 루프 돌았고 방학 때는 인턴쉽을 하느라 바빴다. (워털루 대학교는 방학이 없고 대신에 Co-op 프로그램이 있다. 코업은 돈 받고 하는 인턴쉽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각자 학기 중에 직장을 찾아야 한다.) 학사 4년, 석사까지 합하면 총 5년, 그리고 졸업 후 3일 동안 치러진 회계사 시험까지. 도저히 끝이 안 날 거 같은 그 힘든 시기를 같이 견뎌냈다는 것에 서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캐나다에서 대학교 입학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우나 졸업은 몇 배로 힘들다. 그래서 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려도 제때 졸업했다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없다. 특히 이름이 많이 알려진 University of Toronto, McGill University, Queen’s university,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그리고 나의 모교 University of Waterloo 등, 전공에 따라 공부의 강도와 양은 다르지만 졸업하는 게 쉽지 않음을 알기에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에게 나는 경의를 표한다.

 

그 당시에 내가 자주 부모님한테 했던 말은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한국에서 서울대 갔다 ‘였을 정도로 아침 6시 기상, 새벽 1시 취침을 유지하며 몇 년을 거의 매일을 그렇게 공부했다.


나는 운이 좋게 회계로는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워털루 대학교에 합격했다. 합격한 기쁨도 잠시, 매 학기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했다. 매 학기 평균 75점을 넘지 못하면 유급 처리가 되고, 그것이 2번이 넘으면 전과를 해야 했고,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그런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또 따라가지 못하면 다른 학교로 편입해야 했다. 같이 입학한 친구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나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더욱 커져갔다.


보통의 학생이었던 나에게 평균 75점의 바는 높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사실 영어도 서툴었던 나는 캐네디언들 안에서는 보통도 아닌 뒤처진 학생이었다.  그런 학생이 반평균이 75점이 안되는데, 평균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서 그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려면 정말 죽어라고 공부해야 됐기 때문이었다. 매 학기가 서바이벌이었다.


워털루 파이널 시험은 이 스테디엄에서 다같이 치러진다. 스트레스 때문에 시험 보다가 쓰러져 실려가는 학생들도 많이 봤다. 이 같은 공간에서 졸업식도 한다.




2학년 2학기였다. 평균이 75점이 되지 못해서 학과장한테 경고 이메일을 받았다. 다음 학기에 점수를 높이지 못하면 유급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이민자로서 의사, 변호사는 아니지만 최소 회계사라는 전문직을 해야지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을 터인데  ‘여기서 떨어지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앞이 깜깜했다. 나는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점수가 안 나오니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미래의 대한 불안,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20대 초반 어렸던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이렇게까지 공부해야 돼’ 울고불고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것을 포기할 용기는 없었고 고졸은 되기 싫었다.


이때 나를 잡아주고 도와줬던 친구가 이 친구다. 내가 느리고 부족했던 걸 알지만 항상 그룹워크를 할 때 나를 챙겨주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으쌰으쌰 하면서 같이 공부했다.


그렇게 같이 걸어가는 친구들이 하나씩 생기다 보니 결국 학사, 석사까지 모두 제시간에 끝내게 되었다. 다행히 졸업할 때는 평균이 80점이 넘었지만 겨우 졸업했다가 맞는 말이다. 나에게는 암흑 같았던 대학생활을 포기하지 않도록 같이해 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공부하는 것은 내 몫이었지만 부모님, 친구들, 교수님들의 격려가 나를 지탱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C양은 버뮤다에 위치한 회계법인에 취직이 되어 캐나다를 떠났고 나는 토론토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십여 년이 지난 후 이렇게 스위스 제네바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을까. 그녀는 한 은행의 CFO로, 나는 유엔에서 Budget and Finance Officer로 서로가 꿈꾸던 자리에서 말이다.  제네바 호수옆에서 와인 한잔 하면서 옛날 얘기와 최근 근황을 나누면서 나는 그녀한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고맙다는 얘기를 전했다.


‘네가 그때 많이 부족했던 나를 항상 챙겨줘서 내가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어. 정말 고맙다. 제네바에서 지금이라도 이렇게 너를 대접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그리고 벌써 엄마에 CFO 라니 대단해.’


‘너 항상 유엔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더니 결국 원하던 대로 됐네!’


‘그러게 말이다. 다음에는 또 우리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제네바에서의 우리의 예기치 못한 만남은 예전 추억에 대한 회상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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