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돌 Nov 03. 2022

국어교육을 전공한 직장인의 슬픔

저한테 맞춤법 좀 그만 물어보시겠어요?



 나는 국어교육학을 전공했다. 딱히 국어에도 교육에도 관심 있진 않았다. 한국의 많은 수험생들이 그러하듯 수능 성적에 맞춰 대학을 결정한 것. 전공 역시 그에 딸린 부속품처럼 딸려왔다. 수능 문제를 풀던 당일날까지도 내가 국어교육과를 다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입학했던 학교는 당시에 과가 아닌 계열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했다. 사범대학 어문계열. 국어교육, 영어교육, 불어교육, 독어교육 4개의 과가 한 계열로 묶여있었다. 그럼에도 과 단위의 유구한 전통이 남아있던 관계로 신입생 OT 이후 반을 선택해야 했다. '반'이 대체 뭘까, 싶었는데 '과'에서 이름만 바꾼 것이었다. 신입생들에게 불어, 독어는 선택사항에 아예 들어있지 않았고 다들 국어냐 영어냐로 고민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래도 남의 나라 말보다는 우리말이 더 낫겠지.' 하는 별생각 없는 생각으로 국어과 팻말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신입생들이 모두 흩어진 후 텅 빈 사범대 내정에는 어두운 표정의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그들은 불어교육과와 독어교육과 선배들이었다. 후배를 한 명도 받지 못한 선배 아닌 선배들이었다.


 얼떨결에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바람에 종종 번거로운 일을 겪었다.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뒤 구청에서 공익 근무를 하던 때. 사흘은 새벽 근무, 이틀은 저녁 근무를 교대로 했다. 저녁 근무 날이면 공교롭게도 KBS에서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그때마다 공무원 아재들은 나를 불러다 옆에 앉혔다.

 "김 이병(공익근무요원은 기실 계급이랄 게 없지만 그렇게 불렸다), 저것 좀 풀어봐."

 "아니, 틀렸잖아. 저런 것도 몰라? 자네 국어교육 전공이라매."

 "S대 사범대 다닌다면서 어떻게 이걸 모르나. 쯧쯧."

 그러니까 풀어도 본전, 못 풀면 망신인 손해만 남는 장사였다. TV를 보면서 생각했다. 저딴 어려운 띄어쓰기와 난생처음 듣는 순우리말은 사는 데 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 걸까. KBS 망해라.


 직장인이 돼서는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고시 공부를 때려치우고 토익 점수를 올리고 이런저런 스펙을 쌓은 뒤 입사한 곳. 여기는 학교도 아니고 학원도 아니고, 내 업무는 예산과 회계니까.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러니까 '국어교육을 전공했다'는 건, 최치원이 아무리 당나라에서 날고 기고 해 봤자 신라에 들어와서는 6두품 출신이라 홀대받았고, 장발장이 과거를 지우고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음에도 자베르에게는 한낱 범죄자로 보였던 것처럼, 내게 깊이 찍어놓은 낙인 같은 것이었다. 동료들은 보고서를 쓸 때 나를 찾았다. 신입사원 채용 필기시험 출제 때도 맞춤법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김 과장, 이거 띄어쓰기 이렇게 하는 게 맞아?"

 "이거 문장이 어색한데 좀 고쳐 주세요."

 "이거 표 아래 주석에 넣을 건데 '인상율'이야, '인상률'이야?"

 대부분의 문제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해결해 줬다. 전공 수업에서 한 번도 A를 받지 못했지만 4년이나 학교를 다닌 게 허튼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종종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맞춤법 검색을 하기도 한다. 졸업한 지 10년이 돼서 그런지 국어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동료들의 반응이 괜찮았던 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율’과 ‘률’을 쓸 때 헛갈려한다. 이를테면 '출산율'이 맞는지 '출산률'이 맞는지 아리송해한다. 그럴 때마다 제가 쉽게 가르쳐 드릴게요, 라면서 알려줬다.

 "간단합니다. 딱 두 가지 단어만 떠올리세요. 안 좋은 거 두 개, 이자율과 이혼율. 둘 다 율을 씁니다. 첫째, 받침이 없거나, 둘째, ㄴ 받침 뒤에 붙는 건 '율'입니다. 나머지는 다 '률'을 쓰는 거예요. 직장인이자 가정 있는 여러분들한테 안 좋은 게 뭐다? 주택담보대출 이자하고 배우자와의 이혼이다, 이겁니다. 아니, 이혼은 기꺼이 하고 싶다고요? 아니, 그건 저하고 상의하실 문제가 아니죠."

 그럴 때마다 직장 동료들은 과연 당신은 국어교육과 나온 사람이구나, 라는 말을 했다. 그럴 땐 씩 웃으면서 서둘러 마무리해야 했다. 거기서 더 나가면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하는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의 구절을 소리 내 외워보라 할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그런 선배가 있었다.


 지난 9월, 전국 모의평가 때문에 팔자에도 없던 충북 진천 출장을 다녀왔다. 교육과는 거리가 먼 일을 업으로 삼았다고 생각했는데 돌고 돌아 결국 여기까지 왔다. 그나저나 진천이라니, 학교 다닐 때 사회과부도를 꽤나 열심히 봤음에도 생소한 지명이었다. 낯선 그곳에는 교육과정평가원이 자리하고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 때문에 원래 있던 서울에서 진천까지 내려오게 된 것. 때문에 나도 물경 두 시간이 넘도록 고속도로를 달려 출장을 다녀오게 됐다. 오랜 시간을 들여 오고가는 것에 비하면 해야 하는 일은 간단했다. 한 교시가 끝날 때마다 시험지와 시험지 및 답안지 파일을 건네받고, 회사로 메일을 보내기만 하면 됐다.


 하릴없이 기다리는 게 지루해서 문제를 풀어봤다. 수험생으로 되돌아간 양 책상에 정자세로 앉았다. 한 손에는 펜을 쥐고 다른 손은 이마를 짚었다. (지나고 보니 수능 따위는 별것도 아니었는데) 인생의 전부가 걸렸다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1교시 국어 문제. 예전보다 지문이 길고 어려웠다. 그래도 그럭저럭 풀 수는 있었다. 시간만 부족하지 않으면 해 볼 만하겠는데? 마, 내가 바로 국어교육 전공한 사람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마음이 장밋빛으로 부풀었다. 하지만 2교시 수학 때는 달랐다. 1번 문제부터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었다. 이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기호란 말인가. 10여 년 전의 나는 어떻게 이런 문제를 풀 수 있었을까. 1교시만 풀어보고 시험지를 덮었으면 수능 다시 봐서 의대를 가 볼까, 하는 헛된 꿈을 꿀 뻔했다.


 전공이고 뭐고, 지금 다니는 회사나 열심히 다녀야겠다.



누가 국어 전공 아니랄까 봐 이런 것만 눈에 들어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자들은 왜 떡볶이에 환장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