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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y 22. 2022

여자들은 왜 떡볶이에 환장하는가

아내와 함께 떡볶이집을 찾아다니면서 했던 생각

 아내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아니라 없으면 죽고   정도로 좋아한다. 연애하던 무렵엔 떡볶이집을 질리도록 자주 갔고, 결혼하고 나선 집에서도 떡볶이를 늘상  먹었고, 임신했을  배가 부른  서울 각지의 떡볶이 맛집을 찾아다녔고, 코로나 19 육아 때문에 외출이 어려워진 시절을 마주하자 배달 라이더의 손을 빌어 집으로 떡볶이를 배달시켰다. TV에서 유명하다는 떡볶이집이 나오면 아내는  입맛을 다시면서 말한다. “저기 한번 가봐야겠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내를 만나기  스물몇  동안 먹었던 떡볶이보다 아내를 만나고서부터 먹은 떡볶이가 훨씬  많은  같다.  말을 듣고서 아내는 설마 그럴  없다지만 분명히 사실이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게 떡볶이란 늦은  가끔 야식으로 먹던 음식들  하나였을 . 그마저도, 모든 야식들을 일렬종대로  세우면 저어기 뒤쪽에,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존재감 없는 녀석이었다.


 줄의 첫 번째는 당연히 한국인의 소울 푸드인 치킨, 두 번째는 둘째가라면 서러울세라 피자, 그다음엔 여럿이 있을 때 으레 주문하는 족발이나 보쌈이나 탕수육의 순서다. 아 참, 다음번이라도 하기엔 미안하고 종종 당연하다는 듯 첫 번째에 자리잡기도 하는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 라면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이렇게 기라성 같은 이들이 존재하는 야식의 세계에서 떡볶이 따위는 감히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게다.


 아내는 나와 달랐다. 떡볶이를 야식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술 한 잔 할 때 안주로도 먹고, 한 끼를 해결하는 번듯한 식사로도 대우하는 것 아닌가. 대체 이런 게 어떻게 밥이 될 수가 있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가 유독 떡볶이를 좋아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아내뿐만은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 여자 동기들도 그랬고 회사의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엊그제도 부서 사람들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중 여직원들 몇 분이 이런 대화를 나눴다.


"과장님, OO역 근처에서 떡볶이집을 새로 하나 찾았어요."

"아, 그래요? 같이 가 봐요. 지난번에 갔던 XX보다 괜찮으려나. 거긴 맛이 좀 밍밍하던데."

"여기는 훨씬 더 매워요. 매울수록 좋잖아요."

"그쵸 그쵸. 떡볶이는 매워야지."

"금요일에 거기로 점심 먹으러 갈까요?"  


 그러니까, 여자들은 떡볶이를 좋아하고, 매우면 매울수록 더 좋아하고, 그걸로도 능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모든 여자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여자들은 모두 그렇다. 한 명의 남자로서 가진 괜한 편견일까. 하지만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당장 네이버에 검색만 해 봐도 "여자들은 왜 떡볶이를 좋아하나요?" 같은 물음과 그에 대한 답변들이 주르륵 뜬다. 딱히 만족스러운 해답을 얻을 순 없지만.


 나 역시 그간 추측해 본 바는 있다. 남자들은 운동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혹은 그렇고 그런 델 가곤 하면서 삶의 시름을 푸는데, 여자들은 먹는 걸로 푸는 경우가 많다. 그러려면 슴슴한 것보다는 맵고 달고 짠 자극적인 음식이 제격일 게다. 그에 부합하면서도 가격적으로 부담 없는 음식이 바로 떡볶이라는 것. 마카롱도, 조각 케이크도, 크림치즈도 그래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 아닐까 한다.


 아니면 말고.


 여하튼 최근에 한 떡볶이집을 다녀왔다. 아이를 처갓댁에 맡기고 오랜만에 아내와 둘만의 시간을 가진 날이었다. 이런 날은 날이면 날마다 오는 날이 아니다. 지난 연말 이후 거의 3달여 만에 찾아온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후회 없이 보낼 수 있을까.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아내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냐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이었다. 종로 광장시장에 있는 한 떡볶이집에 가고 싶단다.


 아니, 이 양반아. 지금 떡볶이집이라고 그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봐. 근사한 프렌치나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있고, 이름 있는 호텔의 뷔페도 있고, 한강 야경을 바라보며 차나 술을 마실 수도 있고, 홍대나 연남동이나 성수동 같은 힙한 곳의 가게들도 있는데 고작 떡볶이라고? 하지만 아내는 단호했다. 이미 꼭 가 보리라 점찍어 뒀던 곳이 있다 했다. 떡볶이 색깔로 불타오르는 결연한 눈빛을 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내의 손을 잡고 따라간 곳은 광장시장 어느 구석에 자리 잡은 떡볶이집이었다. 주소는 시장 내 '동부 A 구역 65호'라는데. 번듯한 간판을 내건 것도 아니고 자그마한 포차 형태의 가게라서 찾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같은 곳을 두어 번이나 빙빙 돌다가, 그냥 포기할까,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다들 이런 곳을 어떻게 알고들 오는지 우리 말고도 다른 팀도 함께여서 가게는 만석이었다. 맛이 좋으면 어떻게든 사람이 찾아오는 법인가 보다.


 그나마 남아있는 자리를 잃어버릴까 봐 서둘러 엉덩이를 들이밀어 앉았다. 동시에 메뉴판을 바삐 살핀 뒤 쌀떡볶이, 잔치국수, 마약김밥까지 알차게 한 상 시켰다. 떡볶이가 가장 먼저 나왔다. 고운 빨간색을 몇 입 먹어보니 맛있었다. 기실 나는 떡볶이 맛을 잘 모른다. 먹으면서 이게 쌀떡인지 밀떡인지조차 구분 못한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그렇다면 나는 개만도 못한 사람인가. 정말 맛있는 건가 싶어 아내에게 물었다. “먹을 만해?”


 떡볶이 전문가 아내의 평에 따르면 제법 괜찮단다. 아쉽게도 양이 많진 않지만(그래서 한 접시 더 시켰다) 손이 절로 계속해서 가는 맛이라고. 그렇지만 애써 여기까지 찾아올 만한 맛은 아니란다. 동네의 다른 가게를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우리집 근처에 자리 잡은 모든 분식집에 다시금 순회를 다녀봐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인즉슨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떡볶이를 '자주' 밥으로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 참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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