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돌 Oct 28. 2024

토미카 덕후 탄생기 (2)

아들의 토미카에 빠져버린 아빠 이야기

4. 세단이냐 SUV냐


 아이를 낳을 때 즈음, 주변에서 이런 말들을 했다.


 “애 낳게 되면 디젤 suv 못 탈걸요? OO 씨, 분명히 조만간에 차 바꾼다.”


 그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하지만 태어난 지 이틀 된 아이를 바구니 카시트에 실어 의자에 고정하고 운전을 시작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길러 본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이와 함께 차를 타는 게 처음인 우리는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 


 디젤 차는 덜컹거림이 심했다. 갓난아기의 머리가 흔들려고 부딪쳐서 어딘가를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차도 차거니와 서울 시내 도로는 시골길이 아님에도 왜 이 모양인지. 길 한복판에 움푹 파이거나 끊어진 곳도 있고, 과속 방지턱은 왜 쓸데없이 높은지, 도로 위에 떨어져서 치워지지 않은 작은 돌멩이며 알 수 없는 물건까지 모든 것들이 페달을 밟고 있는 발끝에 느껴진다. 분명 자주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오늘만큼은 처음 들어선 낯선 길 같다. 그리고 뒤에서 바싹 붙어 따라오는 차도, 앞에서 급정거한 택시도, 우리 옆을 지나가는 커다란 버스와, 먼지를 흩날리며 지나가는 트럭까지,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위협적이다. 극도로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는데도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고작 10분을 운전하면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어쩌면 주변 사람들 말마따나 차를 곧 바꿀지도 모르겠다. 


 ...라는 기록을 4년 전에 남겨 놨는데, 어찌어찌 차를 안 바꾸고 잘 타고 다니고 있다. 하지만 10년 정도 탔더니 소리도 시끄럽고 진동도 심해진 것이 몇 년 안에 새 차를 살 것 같기는 하다. 고민된다. 이번에도 SUV인가, 아니면 세단인가. 혹은 가솔린차냐, 전기차냐, 하이브리드냐, 하이브리드라면 마일드냐 플러그인이냐. 대체 뭐가 좋으려나. 아이의 토미카 세단과 SUV들을 보고 있으니 자라나는 생각들이다.




 현대차에 비교하자면 소나타급이라는 도요타 캠리. 빨간색 캠리는 실제로 본 적 없지만 토미카 빨간 캠리는 나름 매력적이다. 운전하면서 본 캠리들은 죄다 검은색이라 그런가. 왜 세단은 다들 검은색이거나 은색인 걸까. 차로 점잖을 떨 것도 아니면서. 아이는 빨강 외에도 흰색 캠리도 갖고 있다. 일반적인 캠리는 아니고 캠리 스포츠라는데 암행순찰차 버전이라 빨간 사이렌이 지붕에 붙어있다.




 이거 되게 예쁜 SUV다. 미츠오카 버디. 옆에 같이 서 있는 컨버터블 차는 코펜 GR이다.




 모래놀이터에서 도요타 센추리의 수난극이 벌어졌다. 고오급 세단께서 흙바닥에 구르고 물벼락을 맞을 줄 누가 알았겠나. 아이는 새로 산 토미카를 꼭 모래밭에 굴리곤 한다. 그나저나 이 차 되게 마음에 든다. 예전 각그랜저 느낌이 나서 아련한 맛도 나고, 왠지 회장님 같은 분이 타실 것 같은 차다. 영화 <기생충>의 박 사장님이 커피잔을 들고 뒷좌석에 앉아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클래식한 맛이 있는 지프차인 도요타 랜드크루저. 이건 스탠다드 토미카가 아니라 프리미엄 라인이라 모델명에 별도의 연번 '04'가 붙는다.




 스즈키 짐니도 참 멋진 SUV다. 생김새가 꼭 예전 갤로퍼를 생각나게 한다. 그러고 보니 갤로퍼의 원형이 당시 미쓰비시 파제로였단다. 당시 현대차는 기술력이 딸려서 미쓰비시의 파제로 1세대 모델을 라이선스 생산했었는데 그게 바로 갤로퍼였다고. 그리고 파제로에서 파생한 파제로 미니는 스즈키에서 나온 소형 SUV인 짐니의 라이벌 차였다. 파제로와 짐니, 라이벌끼리 서로 닮아버린 모양새다. 아이폰이 갤럭시처럼, 갤럭시는 아이폰처럼 서로 닮아가는 것처럼.




 피아트나 미니쿠퍼 같은 작은 차들은 어떨까.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제 작은 차는 이제 꺼려진다. 아들이 캠핑이라도 가자 그러면 아무래도 SUV를 계속 타야 할 것 같다. 그렇잖아도 지난 주말에는 북한산카라반 캠핑장이라는 곳에 1박 2일로 캠핑 다녀왔다. 카라반 안에 모든 게 구비되어 있어서 짐을 별로 챙기지도 않았는데 이것저것 주워 담으니 양손 가득이었다. 여기에다 킥보드며 돗자리며 캠핑 의자 같은 것까지 챙기려니 차가 작으면 안 되겠다.




 토미카를 하도 봤더니 다음 차를 뭘로 결정할지 고민만 더해졌다. 결정은 몇 년 더 유예해 보기로 한다. 지금 타는 차를 적어도 10만 킬로미터까지는 타야겠다.






5. 세트 컬렉션. 람보르기니와 소방차들


 토미카는 단품이 아니라 세트도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다. 햄버거집에도 단품 버거에 프렌치 프라이와 콜라를 함께 먹을 수 있는 세트 메뉴가 있고, 옷가게에도 상의에 어울리는 하의도 패키지로 팔고, 편의점에서는 수입 맥주도 4캔을 묶어 만 원에 파는데 토미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장난감을 바라는 아이의 마음은 다다익선, 낱개보다는 여러 개가 끌리는 게 당연지사. 아이는 어느 날부터 여러 개가 모여있는 세트 상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른이고 아이고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나가 생기면 둘을 바라고 둘을 가지면 셋을 원한다. 욕망의 기관차가 폭주하려는 순간, 적절한 때에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하나씩 사다가 한 번에 여러 개를 샀으니 당분간은 토미카를 사지 않기로 아이와 약속했다. "대체 이게 몇 대야? 세트 하나에 들어있는 게 하나 둘 셋넷다섯... 적어도 두 달은 토미카 사 달라고 하지 마. 알겠지?" 아이는 당장의 욕심을 채웠으니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이래 놓고서는 다음번에 마트에 오면 또 토미카 코너로 쪼르르 달려갈 테지. 




 아이가 좋아하는 색색깔의 스포츠카와 빨간 소방차들이 한가득이다. 람보르기니 4종과 소방차 컬렉션 세트. 




 람보르기니가 달립니다. 부르르르릉. 초록색의 이름은 우라칸인데 우리 집에 이미 주황색이 두 대나 있다. 우라칸만 3대를 보유하고 있는 집이 됐다. 마치 故 이건희 회장이 된 기분이다. 생전에 이 회장은 스포츠카 마니였다고 한다. 삼성 소유였던 에버랜드에 트랙을 만들어 놓고 달리는 게 취미였다고. 다만, 그 냥반은 진짜 차였고 나는 장난감 차라는 게 다를 뿐이다. 어쨌든 사소한(?) 차이는 있지만 둘 다 차는 차니까 비슷하다고 치자.




 이렇게 깜장과 분홍 두 대가 줄지어 달리면 '블랙핑크'? 이런 개그를 계속하다 보면 MZ가 아니라 AZ(아재)가 되는 것.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주의해야 한다. 회사를 오래 다녔더니 아래로 띠동갑인 친구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말은 줄이고 지갑은 열도록 하자.




 이번에는 소방차 4형제. 왼쪽에서부터 사다리차, 순찰찰차, 구조공작차, 조명차. 뒤쪽에 엄한 혼다 시빅 타입-R이 서 있는데 당연히 세트 구성품은 아니다. 어쩌다 우정출연했다. 




 불 끄러 갑니다. "빨간 자동차가 애앵애앵. 불났어요 불났어요 애앵애앵. 내가 먼저 가야 해요 애앵애앵."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노래다. 소방차 토미카들은 집에 있는 소방서 세트와 찰떡같이 어울린다. 왜냐하면 이 소방서도 토미카에서 만든 거니까. 맥북을 가지고 있었는데 에어팟을 추가로 구매한 느낌이랄까. 이렇게 하나 둘 사다 보면 나도 애플/토미카 생태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렸다. 


 소방차와 구급차들을 한데 모아봤다. 토미카와 토미카 아닌 차들까지 모두 모아서. 불을 끄는데 토미카, 비토미카 구분할 필요 있나. 다들 힘을 합쳐야지. 그러고 보니 이거 어디서 들어 본 말 같은데. 갑자기 故 노회찬 의원이 생각난다. 그는 서로 정치적 노선이 달랐던 이들이 야권연대로 야합했다는 비난을 받자 이런 대답을 했더랬다. "한국과 일본이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서 이건희를 생각하다가 이제 노회찬을 떠올리는 걸 보니 둘은 역시나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가 보다. 이승에서는 악연으로 얽혔지만 거기서는 잘들 지내고 계십니까.




 람보르기니든 소방차든 뭐든, 아이의 손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신고식을 당한다. 너네도 모래밭에 한번 뒹굴어봐라. 물벼락도 맞아봐라. 험한 곳에서 굴러도 봐라. 역시나 이번 세트들도 모래밭에서 한참을 굴렀다. 새로 산 장난감인데 왜 이렇게 막 다루는 거지, 소중하게 아껴야 하지 않나, 싶다가도 장난감이라면 응당 이렇게 갖고 놀려고 사는 거지, 장난감 나고 사람 났냐 사람 나고 장난감 났지, 하며 당연한 거라는 생각도 든다. 장난감에 흠이라도 날세라 애지중지하지 않고 장난감답게 갖고 노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어째 너무 재미나 보여서 나도 같이 놀았다. 아이와 함께 모래 놀이터에 퍼질러 앉아 한참을 자동차를 굴리고 있으니 아내가 야릇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말은 안 하지만 눈빛을 해석하자면... 남자들은 애나 어른이나 똑같구먼, 이라는 듯? 

매거진의 이전글 토미카 덕후 탄생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