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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Nov 09. 2024

토미카 덕후 탄생기 (3)

아들의 토미카에 빠져버린 아빠 이야기

6. 특이하게 생긴 자동차들


 장난감인데 실제 차처럼 평범하게 생기면 재미없다. 묘한 생김새 때문에 계속해서 바라보게 되는 토미카들이 있다. 어느 시구절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쁜' 게 아니라 그냥 봐도 예쁜 차들이다.


 곰돌이 푸 모양의 토미카는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 ㅇ의 엄마에게 선물 받았다.


 ㅇ은 아이가 제일 좋아했'던' 여자아이다. 그 아이의 눈이 예뻐서 좋다 그러고, 만나면 서로 안아주며 사랑한다 말하고, 둘이 맨날 손 잡고 다니고, 난리도 아니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지만 지금은 애정의 대상이 바뀌었다. "어린이집에서 누가 제일 좋아?" 하고 물어보면 ㅎ의 이름을 댄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며 배시시 웃는다. "뭐가 생각났길래 그래?" 물었더니 머릿속에 ㅎ이 떠올랐단다. "왜 자꾸 생각나지? 우히히힉." 이러면서 본인도 이상해한다. 길을 가다 마주치면 아이는 "ㅎ아!" 하고 큰소리로 외치며 그녀에게 달려간다. 종종 ㅎ네가 밤 산책을 하다가 2층 우리 집에 불이 켜져 있으면 "진아!" 하고 부른다. ㅎ이 부르는 소리에 아이는 눈을 번쩍 뜨며 창가로 달려간다. 그리고 한참을 이야기한다. 매일같이 어린이집에서 만나는데 뭐가 그리 반가운지 모르겠다.  


 이렇게 되니 ㅇ에게 미안해진다. 한때 죽고 못 살던 사이였던 . 그 아이가 남긴 흔적인 토미카를 보며 나는 괜히 옛사랑을 떠올린다.




 던 크라이 포 미, 아르헨, 아니, 턴테이블. 아이를 낳기 전 나름의 취미였던 LP 듣기는 끝장난 지 오래다. 아이가 자동차를 굴리는 트랙처럼 쓰고 있어서다. 어차피 듣지도 못할 거, 개중에 그나마 제일 안 듣는 빌 에반스 퀸텟 앨범 하나를 제물로 바쳤다. 아이는 이 LP판을 신나게 굴리면서 갖고 논다. 엄청 긁히고 찍혀서 훗날 틀어봤을 때 소리가 날지나 모르겠다. 상처투성이 LP판을 보니 눈물이 찔끔 난다. 아빠도 아빠이기 이전에 취미생활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육아는 지극한 기쁨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내 삶을 온전하게 누리지 못하게도 한다.




 이건 감자튀김을 싣고 다니는 희한하게 생긴 트럭이다. 이스즈 기가 감자튀김 트럭. 감튀에 햄버거가 빠질 수 없지. 도요타 타운 에이스 햄버거 트럭도 있다.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웠다면 후식으로는 케이크를 먹자. 스바루 삼바 케이크 트럭. 이 차는 케이크를 씌우는 케이스도 딸려있다. 탈부착이 가능하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참말로 디테일한 구성이다.




 하지만 케이크 케이스는 어디로 갔는지 행적이 오리무중이다. 훗날 이사하다가 소파나 침대 바닥, 냉장고 밑, 장롱 옆의 틈 같은 데서 발견되지 않을까 싶다ㅡ라고 포기한 지 며칠 안 돼서 케이스를 찾았다. 장난감 상자 가장 밑바닥에 꼭꼭 숨어 있었더랬다. 아이의 물건은 마술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나타나고 다시금 사라지곤 한다. 언젠가 이사 가는 날, 냉장고나 소파 바닥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의 물건들이 나타날는지.




 경찰차와 택시도 있다. 경찰차는 도요타 크라운을 베이스로 했다. 이거 되게 예쁘다. 같은 차종의 택시도 있다. 왼쪽 뒷문을 여닫을 수 있는 게 근사하다. 경찰차보다 더 예쁘다. 그러니까 예쁜 아이 옆에 예쁜 아이, 그 옆에 또 예쁜 아이가 있는 모습이다. (올바른 표현은 아니겠지만) 요새 걸그룹들의 외모를 말할 때 그렇게 표현하던데.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걸그룹 누나들이 성애의 대상이었다. 그녀들을 생각하며 달뜬 얼굴로 잠 못 이루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돌을 바라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예쁘고 잘생긴 이들을 보면 '우리 진이도 저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훗날 데려 올 여자친구가 저렇게 예쁜 아이면 좋겠다' 같은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나도 나이가 들기는 했나 보다.




 이스즈 엘프 교량점검차. 아이는 이 토미카를 보더니만 말했다. "우리 집 창 밖 감나무에 감이 열리면 이거 타고 올라가서 따면 되겠다." 올해는 감이 풍성하게 열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태 전 대풍작 이후로 감이 제대로 열리지 않고 있다. 열려봤자 겨우 서너 개. 그나마도 익기 전에 떨어져 버린다. 때문에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 까치나 참새들이 와서 주황빛 감을 쪼아 먹는 장면을 보는 재미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수목 소독을 지나치게 하는 건지, 감나무가 지난번에 너무 힘을 써서 몇 년째 휴지기를 갖고 있는 건지, 서울의 대기와 미세먼지에 지쳐 더 이상 열매 맺기를 포기한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음번에 마트에 갔을 땐 아이가 아니라 나를 위한 토미카 하나를 살 예정이다. 토미카는 매월 세 번째 주 토요일에 신상품을 출시한다. 지난 10월에는 영화 <백투더퓨처3>의 드로리안이 새로 나왔다. 기대감에 부풀어 매일같이 달력을 보며 날짜를 세었더랬다. 아이처럼 기다리는 걸 보니 나도 어느덧 토미카에 스며들었다.  






7. 롱다리, 아니, 롱토미카들


 롱토미카라는 게 있다. 연번으로는 121번에서 150번까지의 번호가 부여된 차들이다. 이름 그대로 1~120번까지의 스탠더드 토미카들보다 더 기다랗다. 가격도 4, 5천 원 정도 더 비싸지만 색다른 맛이 있는 녀석들이다.


 요즘에는 아이에게 버스 롱토미카를 사자고 계속해서 꾀는데 넘어오질 않는다. "진아, 저거 오사카 시티버스, 앞뒤 문이 열린다는데. 신기하지 않아? 한번 사 볼까." 하지만 아이는 제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단호하게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이번에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번에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열차를 제대로 구현한 롱토미카가 새로 나왔던데 나도 하나 살래." 아내 역시 절레절레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아니, 아이 것만 사지 말고 내 것도 좀 사자.


 우리 집에도 롱토미카가 몇 개 있다. 음메에에에. 검은 소, 흰 소 각 네 마리씩 싣고 가는 연번 139번 가축소 운반 트럭. "이보게, 흰 소와 검은 소 중에 누가 더 일을 잘하는가?" 내가 황희 정승이 아니라서 그런지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소들을 줄 지워 트럭에 태우고 내려봤다.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차를 굴리기도 하고. 아이가 자기 물건을 못 만지게 하니 낮잠 자는 동안 몰래 이러고 논다. 자기 것에 대한 욕심이랄까 집착이랄까, 내가 제 물건을 만지면 정색하며 "내 거야!" 하고 소리 지르는 탓에 같이 갖고 놀 수는 없다. 이런 걸 보면 녀석이 손해 보며 살 것 같지는 않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해 본다. 제 것을 친구들에게 계속해서 양보하는 아이가 있고, 절대 뺏기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제 것을 꼭 움켜쥐는 아이가 있다. 뭐가 나쁘고 뭐가 좋다고 평할 수는 없는 성격의 문제. 다만, 어린아이가 양보만 하는 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은 제가 가진 것이 있어야 남에게도 여유가 생기고, 욕심이 있어야 발전하는 법이다. 육아서에서도 그렇게 가르친다더라. 아이에게 '양보'보다 먼저 가르쳐야 하는 건 '소유'라고. 욕심이 과해 남의 것을 뺏으려고 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131번 미쓰비시 카캐리어 트럭 롱토미카. 아쉽게도 조그마한 까만 차들은 탈부착까지는 안 된다. 본체와 트레일러 분리까지는 가능하다.




 코마츠 중장비차도 한 대 마련했다. 나름 중장비답게 블레이드 좌우 기동이 가능한 녀석이다. 노오란 것이 어디에 두더라도 눈에 확 띈다.


 노란색을 보면 아내와 연애하던 때가 종종 생각난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자주 입던 나이키 노란색 카라 티가 있었다, 한참 후에서야 아내가 얘기했다. 네가 입은 노란색 옷을 보고 기겁했다고. "어떻게 저런 색깔 옷을 입을 수가 있지."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옷들은 죄다 검은색, 회색, 흰색 같은 무채색이었다. 아내가 내 노란색 옷을 놀리듯이 나도 아내가 옷을 살 때마다 놀린다. "이번에도 수녀복 살려고?" 아이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엄마 옷은 왜 색깔이 다 어둡냐면서.




 실은 저 중장비 토미카, 코마츠 모터 그레이더 GD675-6 모델은 구하기 힘들었다. 고양 스타필드 토이저러스 유리장에 진열돼 있던 자태에 반했던 날. 사진을 찍은 후 이미지 검색을 해 봤더니 140번 토미카란다. 하지만 매장에서 판매하는 140번 차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 이름을 보니 미쓰비시 폴 트레일러라는 적재물 수하 트럭이다. 연유를 알아보니 예전 거는 이미 단종됐다는 것. 아아니이이이, 그러면 전시를 해 놓지 말든가, 사람 마음만 동하게. 이렇듯 토미카는 영구결번이라는 개념이 없다. 알고 있던 차가 사라지고 새로운 차가 그 번호를 차지하고 있을 때가 있다.


 한동안 잊고 살다가 어느 날 아이와 함께 동네 무인 문방구에 들렀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구경하다가 뜻밖에도 예전 140번 토미카를 발견했다. 한참 동안 팔리지 않았는지 오래된 재고가 딱 하나, 켜켜이 먼지가 쌓인 채 남아 있었던 것. 아이와 함께 기뻐하며 허겁지겁 결제를 했다. 떨어뜨리기라도 할까 봐 두 손으로 고이 모셔들고 집으로 가져왔다. 어렵게 구한 토미카라 그런지 아이는 한동안 하루 온종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며칠 전에 결국 아이를 꾀는 데 성공했다. 연번 129번 이스즈 오사카 시티버스를 샀다. 요 녀석은 박스에 동봉된 스티커를 붙여줘야 완성. 민짜일 때는 영 태가 안 나던 것이 스티커 몇 장에 몰라보게 예뻐졌다. 토미카의 세계에서 패션의 완성은 얼굴, 이 아니라 스티커다.




 앞으로 롱토미카는 몇 개를 더 모을 수 있으려나. 일단 은하철도 999 열차부터 다시 한번 아내에게 졸라봐야겠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한다고 아내에게 허락받고 사야 하는 거지? 유부남의 삶이라는 게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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