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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Nov 13. 2024

토미카 덕후 탄생기 (4)

아들의 토미카에 빠져버린 아빠 이야기

8. 너의 드림카는


 직장 동료들과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 있다. 당신의 드림카는 무엇이냐고.


 다양한 대답들이 나왔다. 벤츠나 BMW 같은 메이커의 최상위 모델, 알록달록한 색깔의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같은 스포츠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대가족용 미니버스(아마도 <마이 리틀 선샤인>을 봤나 보다)나 캠핑카까지. 나는 고심 끝에 테슬라의 '모델 X'라고 답했다. 전기차에 마음이 끌려서가 아니라 차 문이 날개처럼 위로 열리는 '걸윙 도어'가 멋져 보여서였다. 고작 문짝 따위로 드림카를 결정하다니. 이렇듯 사람은 별것 아닌 걸로 별일을 결정해 버리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내와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영화 <트랜스포머>를 보고 온 날이었다. "우리 노년에 스포츠카 타고 다니면 어때. 쉐보레 카마로. 범블비로 변신하는 차 말이야." 백발의 노인 둘이서 노랑 범블비를 타고 다니면 뭔가 힙해 보이지 않겠냐고 했다. 늙었다고 해서 늙게 하고 다니면 안 돼. 몸은 노쇠하더라도 마음만은 계속 청춘이어야지. 우리는 늘그막에 볼품없는 모습이지는 말자. 그렇게 다짐했더랬다. 아이의 하얀색 카마로 토미카를 보니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만 하더라도 노년의 드림카,라는 건 상상도 못 할 만큼 까마득한 훗날의 이야기 같았다. 이제는 해 질 녘 땅거미에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듯 그날이 점점 현실로 와닿는다. 지금 회사를 계속 다닌다면 정년까지는 십 수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 사이에 아이는 자라 성인이 되었을 테고, 어르신이 된 우리는 노후 자금이며 예전 같지 않은 건강을 걱정하고 있을 게다. 이른 걱정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주 이른 것도 아니다.  


 그리고 범블비를 타자던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됐다. 작년 3월, 쉐보레는 카마로의 단종을 공식 발표했다.




 아이에게도 종종 물어본다. 여러 차들 중에서 뭐가 제일 마음에 드냐고. 지난 1년여간 대답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내일 물어보면 또 다른 차를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한때 벤츠 G바겐을 가장 좋아하는 차로 꼽았다. 길을 걷다가 혹은 주차장에서 그 차를 발견하면 큰 소리로 "지바겐이다!"라고 외쳐서 내 얼굴이 홧홧거릴 때가 있었다. 혹시... 사 달라는 건 아니지? 너 왜 아빠한테 부담을 주고 그러냐.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즈음이면 진짜 차를 바꿔야 하나. 요즘 아이들은 "너네 아빠 차 뭐 타냐?" 같은 걸 묻고 답하고 서로 비교하고 그런다던데. 재산 따위로 남을 판단하고, 줄을 세우고, 편 가르기를 하고, 무시하고 괴롭히기도 한다. 이게 다 누굴 보고 배운 거겠나. 아이들은 어른들의 나쁜 것부터 배운다.

 



 아이의 토미카 중에 애스턴 마틴 DBX가 있다. 이 차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었는데 우연히 실제 차량의 가격대를 알아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이런 차가 3억 원이나 한다구. 007 제임스 본드가 타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는 토미카를 유심히 바라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빠, 이거 그려진 모양이 제네시스 모양하고 똑같아."

 "제네시스가 애스턴 마틴 로고를 따라한 거겠지." 아이에게 대답했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거리에서 제네시스를 볼 때마다 "애스턴 마틴 따라쟁이! 따라쟁이 도깨비야."라고 외친다. 어린이집에서 <따라쟁이 도깨비>라는 그림책을 본 후로 더 그런다.


 엄마 아빠를 비롯한 주변 어른들, 어린이집이나 만난 친구들이나, 놀이터에서 마주친 형아 누나들을 따라 하면서 성장했던 아이. 이게 과연 사람인가 싶던 녀석이 타인을 흉내 내며 걸음마를 시작해서 달리기까지 하고, 고사리손으로 수저를 놀리면 밥을 먹고, 제법 다채로운 단어를 섞은 말을 주고받으며 사람다운 모습이 됐다. 그랬던 아이가 이제는 '누군가를 따라 하는' 건 싫다, '내 마음대로' 할 거라는 말을 달고 산다. 이런 모습을 보니 많이 컸다 싶다.




 G바겐에 빠져있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는 렉서스가 좋다고 했다. 렉서스는 어느 나라 거냐고 묻길래 일본 차라고 말해줬다. 지난 광복절,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일본이 우리나라에 나쁜 짓을 했다는 걸 배워 왔다. 그때부터 렉서스는 싫단다. "나는 현대차가 좋아." 그리고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일본은 나빠."


 아이는 제가 좋아하던 렉서스 토미카는 밀쳐내고 현대차 장난감들을 열심히 갖고 논다. i30, 벨로스터, 아이오닉 시리즈. 얘네들은 토미카는 아니고 핫휠에서 나온 다이캐스트 모델이다. 한국이 좋아 일본은 싫어,라고 아재처럼 흥얼거리며 자동차를 갖고 노는 아이. 네가 무슨 독립투사라도 되냐. 너 좋아하는 토미카는 실은 일본 건데. 아이가 아직 모르는 진실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요즈음의 어린이집들은 역사 교육을 확실히 하나 보다.




 토미카 자동차로는 모자라서 토미카 신발까지 샀다. 경찰차 모양으로 생겼는데 걸을 때마다 불이 번쩍번쩍거리는 신발. 아이는 걸으면서 흡족해했다. 특히 밤 산책을 할 때 입꼬리가 더욱 올라간다. 매일같이 어린이집에 신고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도 했다. 그날 이후 불이 들어오는 신발을 신는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괜한 걸 사 주는 바람에 다른 집 부모들에게 불필요한 지출을 하게 만들었나 싶어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비단 토미카뿐은 아니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살 때도 아이는 자동차 책을 어찌나 사는지. 이런저런 책들을 함께 읽으면서 소위 '명품 자동차'라는 것들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됐다. 벤츠며 포르셰니 하는 유명한 메이커부터 람보르기니, 부가티 같은 슈퍼카들, 그리고 그걸 뛰어넘는 성능을 자랑한다는 하이퍼카들까지. 자동차의 세계가 이렇게 넓고도 큰지 미처 몰랐다.


 인생에서 바로 지금이 자동차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아는 때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자동차에 대해서 하나도 관심이 없던 나였다. 직장 선배 K와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이번에 차를 Q5로 바꿀까 해."

 "그게 뭔데요?"

 "Q5 몰라? SUV."

 "혹시 그거 삼성에서 나오는 QM5 아녜요?"

 "아니 아니, 아우디 Q5. 너 진짜 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자동차가 굴러가기만 하면 되죠, 뭘."

 자동차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며 몰뚱하게 대답하던 그때와 비교하면 나도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아이가 언제까지 토미카를 사랑할지는 모르겠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지만 사랑의 대상은 바뀌기 마련이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으니까. 어제가 오늘과 다르고 내일은 오늘과 다를 듯이. 여하튼 오늘까지는 아이가 좋아하는 걸 나도 함께 좋아하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려고 올 겨울에는 일본 여행 가서 한국에 없는 토미카도 몇 개 구해 볼 요량이다. 드림카,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아이처럼 사고 싶은 차가 생겼다.


 새삼 토미카에게 감사하다.  



- 토미카 이야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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