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됐다. 엄마와 침대에 누워서 참새처럼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는 아이. 아무리 졸려도 잠들기 전 10여 분 정도 '토크 타임'을 갖는다. 내용은 오늘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 내일 하고 싶은 일, 주말에 아빠 엄마와 어디 가고 싶다 같은 것들이다. 그러다가 아이가 갑자기 질문을 하나 던졌다.
"엄마. 나는 어떻게 만들어졌어?"
아내는 속으로 '결국 때가 왔구나' 싶었단다. 다섯 살, 만으로 네 살이면 이런 질문을 할 법하다고. 그렇잖아도 엊그제 어린이집에서 남자와 여자의 몸이 어떻게 다른지 배웠던 아이. 목욕할 때 아빠 고추를 가리키며 "남자는 음경, 여자는 음순이래." 같은 말도 했더랬다. 이제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한 질문도 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미처 마음의 준비를 못했던 아내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아이는 엄마의 대답을 듣기 전에 말을 이었다.
"ㅎ이가 그러는데 하나님이 엄마 배 속에 아이를 넣어준 거래.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졌대."
아내는 순간 속에서 뜨거운 게 치밀어 올랐단다. 멀리서 지켜보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서둘러 대답했다.
"아니야. 진이는 엄마 아빠가 만든 거야. 그런 말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리고 엄마 아빠는 교회 다니는 거 안 좋아해."
나도 아이 침실로 들어와 엄마 말을 거들었다.
말만 그런 게 아니다. 나도 아내도 교회에 발을 끊은 지 오래다. 연애하던 무렵에는 나름 신실했던 아내를 따라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이촌동의 어느 교회에 따라갔다. 입 밖으로 비집고 나오려는 하품을 집어삼키며 찬송가를 부르고 설교를 듣고 기도를 했다. 하지만 아내는 '불신자는 지옥으로 간다', '우상숭배하는 자들은 망한다' 따위 배타성이 가득한설교를 점점 더 못 견뎌했다. 예배가 끝나면 학생회니 청년회니 하면서 원치 않는 인간관계와 사회 활동이 이어지는 것도 지쳐했다. 나는 어릴 적에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지만 소위 '나이롱' 신자였다. 그럼에도 가끔씩 들러 내가 정화되는 느낌은 좋았다. 삶의 때가 가득 차서 마치 막힌 하수구 같을 때 신앙의 힘으로 배관 청소를 했다. 무탈한 삶을 주신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감사도 표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그런 감사의 마음 따위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교회라는 단어에 물큰 느껴지는 화를 억누르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진아, 이런 이야기도 있어. 아기는 다리 밑에서 주워 오거나, 커다란 황새가 물어다 준다고. 진이도 그렇게 우리 집으로 온 건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아이는 그럴 리 없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마 아빠는 그럼 나를 어떻게 만들었어? 혹시 먹는 걸로 만든 거야?"
"아, 치즈나 고기 같은 걸로 조물조물해서 만들었다고? 그럼 진이 먹을 수 있겠네. 고놈 참 맛나겠다."
"아니야, 안 돼 안 돼. 으아아아아. 잡아먹지 마."
아이와 한참을 또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해줬다.
"진아. 엄마 아빠가 사랑해요, 하면서 지내다 보니까 네가 만들어졌어. 하나님이 만든 것도 아니고,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것도 아니고, 황새가 물어다 준 것도 아니고, 먹는 걸 주물러서 만든 것도 아니야."
아내는 혹시나 싶어 아이에게 두 번 세 번 당부했다. 네 친구들은 아직 어려서 세상 일에 대해서 정확하게 모른다고. 이상하다 싶은 게 있으면 꼭 엄마 아빠한테 물어봐야 한다고. 엄마 아빠가 제대로 알려 줄 수 있다면서. 아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리고 걱정된다는 듯 엄마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다음에 ㅎ이가 틀린 말을 하더라도 야단치지 말아 달라고. 그러면 그 아이 마음이 아플지도 모른다고. 친구를 생각하는 착한 마음이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아이를 재우고 나오면서 아내는 화가 맺힌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은 그럴 수 있어.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말하는 거니까. 그런데 교회 어른들은 그러면 안 되지. 자기 생각을 아이들한테 주입하면 안 돼.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단 말이야. 내년에 보낼 유치원도 걱정이다. 안내문에는 인성 교육에 중점을 둔다고 하는데 읽어보니 '순종'이라는 단어가 되게 거슬려. 부모님과 선생님과 어른에게 순종하는 착한 어린이...로 가르친다는데. 이거 너무 교회 용어 아니야? 기독교 재단에서 운영한다던데 일찍부터 아이들한테 세뇌 교육 하는 거 아니냐고.
나 역시 걱정됐다. 빈 도화지 같은 아이들이 하나의 색으로만 물들고 여러 가능성의 세계가 닫혀 버릴까 봐. 어른들의 생각을 자신들의 생각인 양 받아들이면 어쩌나 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교회에서 나쁜 걸 가르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하나의 생각만이 진리라고, 단편적인 세계를 모든 것이라고, 의심하지 말고 순종하며 믿으라고 가르칠까 저어된다.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그때 교회에 제 발로 가 봤으면 한다. 교회뿐만 아니라 성당에도 절에도 모스크에도 가 보고 난 후 본인이 좋아하는 걸 선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의 아직 비어있는 종교, 가치관, 사상, 취향이라는 영역에다 어른의 생각을일찍이 칠해버리고 싶지 않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자신의 세계를 자신만의 색깔로 칠하는 모습을곁에서 응원하는 것일 뿐.
다행인 건 다섯 살 어린이들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자기 판단이 가능한 나이가 된 것. 아이가 요즘 부쩍 친하게 지내는 ㅊ도 옆에서 ㅎ이 하는 하나님 이야기를 같이 들었단다. 그리고 씩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